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봄에 관해 생각했다. 그제 있었던 촬영장에서 문득 봄 냄새가 나서 그랬는지 숫자상의 기온은 여전히 겨울인데 옷차림 마저 얇게 하고 집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나만 긴팔 셔츠 한 장에, 봄가을용 밀리터리 코트를 입고 있었다. 밖에 나갈 일이 짧은 일정이라 다행이었다. 걷다 보면 제법 추워서 몸이 움츠려 들었다.
해가 길어진 게 점점 실감이 난다. 이른 저녁 무렵까지 스튜디오 로비에 빛이 들어온다. 데이터 백업을 걸어두고, 전등불을 모두 끄고 창으로 들어온 가느다란 빛줄기가 기우는 걸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1월엔 내가 얼마나 한가하게 시간을 보냈는지 여기저기 신세한탄을 하듯이 떠들고 다녔더니 2월은 놀랍게도 28일까지 휴일이 단 하루도 없는 일정이 이어진다. 고단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일하는 내 모습이 좋다. 내 일도 좋다. 행복한 고민이다.
대학생 시절 동아리 엠티에 갔을 때 2인용 자전거를 타야 할 일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복학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후배들에겐 어딘가 불편한 선배였을 것이다. 둘이 짝을 이루어 타기로 결정이 되고, 랜덤 형식으로 파트너를 정했는데 정말이지 친하다는 말과는 거리가 먼 여자 후배가 내 뒤에 타게 되었다. 특별한 대화도 없이 봄날의 자전거를 탄 장면은 지나갔고, 학교를 졸업하고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여자 후배와 사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조차 지금에 와선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얼마간 아는 사이인지 연인 사이인지 모호한 관계가 이어졌다. 여자아이는 함께 가기로 한 친구가 가지 못 하게 됐다며 몇 번인가 야구장을 함께 가자고 했다. 그렇게 때때로 함께 만나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될 줄 몰랐어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특별히 나와 상관없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말과 함께 얼마 후 여자아이는 사라졌다.
그리고 어제 수영을 하면서 이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기분이 줄곧 맴돌았다. 숨을 참고, 팔을 저어가며, 물속으로 미끄러지는 몸을 상상하고, 언젠가의 봄날에 함께 했던 2인용 자전거와 생소하지만 즐거웠던 야구장, 술에 취해 나누었던 희미한 기억들이 맴돌았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봄날과 순간들에 관해 상상했다. 언젠가 이 그리운 기분들을 형상화할 수 있다면 무척 멋진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