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소년

by 노엘

중학교 3학년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했었다. 지금처럼 스푼 라디오라든가 하는 플랫폼이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채팅과 아바타가 있는 플랫폼(포립) 안에서 윈앰프를 켜고 수동으로 아이피 주소를 넣어야만 들을 수 있는 그런 방송이었다.


꼬마였던 나는 말주변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고, 그저 호기심에 시작했던 방송을 어쩌다 보니 제법 긴 시간 지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것들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노래만 틀기보다 청취자들을 위해 멘트를 하고 싶은 마음에 싸구려 마이크를 샀었다. 간단한 곡명 정도만 소개를 하던 멘트가 점점 길어졌고, 매일의 에피소드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런 지극히 사적인 방송이었다.


인원 제한이 있던 채팅방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항상 찾아와 주었고,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팬이란 것도 생겼었다. 기뻤다. 적잖게 행복했다.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좋아해 주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이 일을 평생이라도 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송을 켜고 새벽까지 음악을 틀었다. 한 사람이라도 듣고 있으면 플레이 리스트 라도 가득 채워두고 잠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이따금 노래도 불렀다.


나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누군가가 내 닉네임으로 방송 준비 중이라며 방을 만들고 기다려 주고 있었다. 현실에 있던 친구들보다 나의 음악과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삶의 전부였다. 아마도 행복이란 이런 감정이었을 것이리라.


그리고 이 무렵 첫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매일같이 나의 방송을 들어주던 팬 중의 한 명이었다.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겨울이었다. 이제 막 열일곱이 되었고, 여자아이는 아직 열여섯 살이었다. 우린 서로에게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손을 잡는 것도, 언제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몰랐던 첫 키스도, 데이트할 장소가 없어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빙글빙글 돌던 것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평화롭고 사랑스러웠고, 행복했다.


너무 많은 것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날카로운 날들을 살고 있다. 그저 작은 관심과 사랑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지도 결코 쉽지도 않은 일이었다.


기적 같았던 나의 지난 시절에 감사한다. 덕분에 행복했고, 나는 아마도 이 기억을 평생 이따금 꺼내어 보며 살게 될 것이다.


이제는 멀어지고 쉽게 말을 걸 수 없는 이들에게도 마음만큼은 여전히 여기에 있다고 외치고 싶다.


모두가 힘들고 고단한 시대를 산다. 하지만 우리 모두 한때 반짝이는 삶을 살았음을, 사랑만으로 충분한 사람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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