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첫 서킷

by 노엘

"규태야 사진 찍을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학생 정도 되는 사람도 있을까?”


문득 걸려온 진표형의 전화였다. 당시의 나는 갓 독립을 했었고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다만 이런저런 정황을 들어보았을 때 결국 예산의 문제인 것 같았다.


“제가 할게요. 하고 싶어요.”


그렇게 금호타이어 엑스타레이싱팀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막연히 차를 좋아하긴 했지만 내가 아는 것은 어린 시절 보았던 애니메이션 사이버포뮬러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사실상 모터스포츠와는 어떠한 인연도 없었다. 덕분에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팀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었다.


팀이 참가하는 클래스는 슈퍼 6000이었고, 국내 경기에선 가장 상위클래스였다. 처음에 피트에 들어갔을 때는 적잖게 놀랐다. 생소한 환경이기도 했지만 ‘차에서 이런 소리가 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느껴지는 고막을 찢는 듯한 큰 배기음에 적응하는데에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소음 규정이 생기면서 갑자기 얌전해진 고양이가 된 것처럼 박력이 없어진 느낌이라 가끔은 그때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아쉬운 기분도 든다.


모터스포츠는 막연히 생각하던 것과 많은 부분이 달랐다. 뜨겁고 거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어떤 스포츠보다도 섬세해야 했고, 냉철한 판단력이 없으면 결과는 쉽게 무너졌다.


미케닉과 감독, 드라이버간의 신뢰관계를 비롯한 멘탈적인 요소도 매우 중요했다. 각 드라이버의 감각에 맞춰진 차를 만들어 레이스에 나간다는 건 하나하나 세공하여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과 비슷했다.


창단 초반엔 팀 내의 갈등도 적잖았다. 특히 일본인 드라이버인 이데유지의 차량에서 비슷한 형태의 엔진 트러블이 발생했고, 시즌 초반 몇 번이나 리타이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서로에게 불신이 생기기도 했다.(엔진이 몇 번이나 깨지는 바람에 기념으로 그 조각을 하나 가지고 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나는 이런저런 기술적 문제점들을 통역을 하느라 따로 타이어나 차량에 대해서 좀 더 공부를 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이후엔 촬영도 하면서 거의 이데유지의 전담 통역사처럼 함께 다녔다. 비밀이지만 몇 번인가 매체의 질문지를 적당히 대신 써준 일도 있다. 가까이서 듣는 베테랑 드라이버의 이야기들은 와, 정말 다 쓰면 크게 이슈가 될 것이 너무 많은데 프라이버시는 지켜주도록 하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팀은 점점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갔고, 2022년도 까지 두 번의 챔피언을 달성했다.


모든 순간 나는 카메라의 뒤에 숨어서 셔터를 눌러서 그런지 팀이 첫 우승 할 때도 촬영장에서 예쁜 모델 앞에 있는 것보다 표정이 밝지 않다고 진표형이 놀리는 말을 했었는데, 사실은 무척이나 기뻤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팀 성적에 따라 집에 돌아가는 기분도 늘 달랐다. 팀이 첫 우승 하는 그 순간 카메라 같은 건 던져두고 함께 소리 지르고 끌어안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김진표 감독은 팀에서 공식 감독직을 내려놓았고 팀의 명예 감독이 되었다. 슈퍼레이스 팀에서 유일하게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창단 초기만 해도 팀 내에 포토그래퍼가 있는 팀은 엑스타레이싱팀이 유일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팀이 포토그래퍼를 기용해서 아카이빙을 한다.


그와 함께 시작되었던 나와 모터스포츠와의 첫 인연도 시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종료가 되었다.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9년이란 시간을 함께 해 왔던 것이다.


오랜 시간 함께 해준 수많은 인연들에 감사드리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김진표 감독님, 드라이버와 미캐닉분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가끔 여름날의 그을린 오일 냄새가 그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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