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시차 적응에 실패한 여행객처럼 기운 없고 멍한 날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제대로 된 몸에 영혼이 들어와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가벼운 기분으로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거실의 가운데에 놓인 책상에 앉았다. 암막 커튼을 열자 흐리지만 희미한 볕이 들었다. 미세먼지 체크를 하고 창문을 열고 세탁기를 돌렸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늘 챙겨 먹는 비타민 따위를 한 줌 먹었다. 오전 일찍 도착한 후반작업 메일을 확인하고 다음 촬영의 미팅 일정을 잡았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다 시간을 보니 월, 수, 금 낮에 한 시간만 할 수 있는 자유수영 시간이 곧 시작될 무렵이었다. 서둘러 드레스룸에 들어가 적당히 바닥에 놓여있는 청바지와 무늬가 없는 흰 티셔츠를 입고 차에 올랐다. 나오면서 베이지색 캡도 챙겼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낮 시간 수영장에도 사람이 제법 많아졌다. 대부분은 여전히 노년의 여성 분들이지만, 못 보던 얼굴들도 이따금 보였다.
수영을 마치고 오렌지색 경고등이 들어온 차에 기름을 넣고, 세차를 했다. 집에 돌아와 주차를 하고 다시 집을 나서서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김치볶음밥이 눈에 들어와서 주문을 했다. 언젠가의 신학기에 후배들과 먹었던 학교 앞 식당의 그리운 맛이 났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엔 아쉬운 기분에 카메라를 꺼내 들고 걸었다. 10년을 넘게 살고 있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골목을 골라 걷다 보니 얼마가지 않아 익숙한 길들이 보였다. 새삼스러운 봄이었다. 이제 막 점심시간이 지난 거리는 한산했고, 고요했다. 사람들을 꽃이 핀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여러 나라의 언어가 부쩍 많이 들려왔다. 여행객들의 표정은 포근했다. 걷다 보니 땀이 배어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 콘을 샀다. 햇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너무 오랜만의 일이라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비싸진 줄 몰라서 깜짝 놀랐다. 처음엔 결제가 잘못된 줄만 알았다. 살면서 가장 크게 직접 체감한 물가상승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싶어서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아이스크림 포장을 뜯어 한입에 물고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햇살은 곧 여름이 다가올 것을 예고했고, 한 손에선 아이스크림이 달콤한 바닐라 향을 내며 녹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