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가득 막혀버린 하수구처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감정들이 머릿속을 맴도는데 기록하려 고민할수록 그건 점점 더 손에 닿을 수 없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피로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진 건가 싶어서 긴 잠을 자 보아도 특별히 변하는 건 없었다. 나른함 만이 몸 구석구석 쌓인 먼지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노을빛에 관한 묘사가 있는 소설을 읽었고, 시간 차이는 있었지만 누군가의 그래픽 작업 영상에 하루의 해가 지고 저무는 장면에서 빛이 기우는 모습과 붉게 변해가는 색채에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쿵 하고 방아쇠처럼 당겨졌다.
가장 처음 기억하는 노을의 기억은 중학생 무렵의 일이다. 조금씩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먼 곳에 대한 동경하는 마음이 자라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왠지 전부 시시하게 느껴졌다.)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즐거웠고, 당시엔 정식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일본의 문화가 새롭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주변에서 보면 나는 고립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점점 팽창해 가고 있었다. 어딘가 늘 막연히 먼 곳을 생각했다. 살고 있던 시골의 아파트 옆길 조그만 공원을 지날 무렵, 때마침 해가 저물고 있었다.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던 하늘이 온 동네를, 거리를, 세상을, 내 몸을 감쌌다.
흙냄새가 났다. 바람에 날리는 풀잎 소리가 모든 소리를 삼켰다. 마른 낙엽 냄새가 났고, 붉은빛은 동공을 통과해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을 찔렀다. 이 순간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감지하는 그 순간이 경이로웠고, 앞으로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 무렵부터 나는 노을빛이 드는 순간이면 저주가 풀린 어떠한 존재처럼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매일이 비슷하지만 결코 같은 날은 없었다. 오래전의 시간과 현재가 유일하게 이어져 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약한 소년이었고, 여전히 나약한 한 명의 성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주변에서 바라보는 사회적 기대감이라는 불필요한 짐을 여기저기 쌓아두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팽창되어 가던 세계는 다행히 폭주하지 않은 채 조금씩 안정되어 가고 있고, 그 대신 어디까지 더 갈 수 있을지는 늘 불안하다.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에 비치던 노을빛이, 붉은 뺨이, 처음부터 나의 것이었더라면, 나의 삶은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었을까.
여전히 가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오늘을 산다. 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