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모양을 한 날들이었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는 파도가 지나간 해안의 모래사장처럼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불규칙하게 잠자리에 들고 다시 불규칙한 식사를 한다. 틈이 나면 낮잠을 자고 게임을 하거나 잠깐 자잘한 업무를 처리한다. 그 외의 틈이 생기면 수영장에 가거나 매트를 깔고 코어 중심의 운동을 한다. 특별한 이벤트는 거의 없다. 루틴이 없는 듯하지만, 반복되는 행동의 패턴들은 열 손가락 안에 들어온다.
사람이 살면서 먹게 되는 음식은 100가지를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100가지도 상당히 많은 편이며, 보수적으로 잡으면 30개 미만이 된다고 한다. 무언가 맛있고 새로운 것들을 찾아 다니는 듯하지만 대체로 실패하지 않았던 것들 안에서 선택하게 되고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는데 확실히 주로 먹는 것과 먹었던 것들을 세어 보아도 그리 큰 숫자로 카운트가 올라가진 않았다.
새로운 경험과 세계를 넓혀가며 살아간다고 믿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가진 영역은 생각보다 쉽게 자라나지 않고 있었다.
낮잠에서 깨어나 집안을 잠시 서성거렸다. 잠들기 전에 켜 두었던 음악은 절전모드에 들어가 꺼져 있었고, 덕분에 방 안엔 정적이 가득했다.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해서 무언가 먹을까 생각했지만 먹고 싶은 음식은 단 한 가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의 공복인 건지 신체의 공복인지도 분간해 내기 어렵다. 결국 물을 한 잔 마시고 꺼져 있던 음악을 다시 켜고, 어두워진 거실에 플로어 스탠드와 캔들워머를 켰다.
이렇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특징 없이 비슷한 모양의 날이 이어지면 늘 불안해진다. 이 순간에도 시간은 성실하게 흐르고 있고, SNS의 세계는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어딘가 자신만이 이 세계와 차단 되어 다른 차원에 고립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인스타그램이 없었던 시절은 아마 이것보다 조금 더 행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데도 공개된 곳에 글과 사진을 올리고 있다. 사람은 알면서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사랑이 그런 것처럼.
루시드 폴이 부른 [사람들은 즐겁다] 라는 노래가 있다. 언제 들어도 금세 부서질 것만 같은 마음의 소리 같은 곡이다. 상당히 좋아하는 곡이므로 가사를 공유해 본다.
이런 인연으로 억겁의 시간도 전에
우리, 사랑했었어. 우린 그런, 사이였었어.
지금 나를 만나 내 모습을 왜 모르는 건지,
왜, 몰라보는지, 왜 그렇게도 까맣게 잊은 건지,
눈을 가리는, 마음을 가리는 세상이지만
나는 이렇게 너무 또렷이도 기억하고 있는데
무심하게도, 그대 눈빛은, 언제나 나를 향하지 않아.
눈을 가리는, 마음을 가리는 세상이지만
나는 이렇게 너무 또렷이도 기억하고 있는데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즐겁다.
사람들은 즐겁다.
고백하자면 지금 보다 어렸을 때는 사랑하는 삶이 당연하게 여겨졌었다. 언제까지나 사랑하며 행복할 줄만 알았다. 그 사이 악의를 품은 시간은 착실하게 흘렀고, 나는 공복과 갈증과 물구나무서기도 구분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언제까지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 때때로 자신이 없어진다. 아무래도 여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