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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Aug 04. 2023

콩국수와 커피가 있는 은은한 여름

단순히 덥다. 라고 하기엔 너무나 더운 여름이다. 운전을 하면서도 이렇게 불덩이 같은 차가 용케도 잘 달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덥다.


냉면은 몇 번인가 먹었지만 올해 첫 콩국수를 먹었다. 이른 시간부터 시청역 근처 진주회관 앞은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테이블이 많고 회전이 빠른 편이라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았지만 이따금 이런 여름 특정 음식의(냉면, 삼계탕 등등) 인기엔 매번 놀라게 된다. 겨울이 보면 서운해 할 정도다.


기대한 만큼의 식사를 마치고 차라도 마실겸 비교적 한산한 삼청동으로 차를 돌렸다. 평일 낮의 거리엔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 뿐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주차를 하고 걷다가 우연히 보인 최단 거리에 있는 카페에 더위를 피해 들어갔다. 동행과 나는 순식간의 결정이 어이 없다는 듯이 웃었지만 그런대로 성공적인 첫 인상을 가진 장소였다.


문을 연지는 오래 되어 보이지 않았지만,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었다. 구석구석의 선반에는 오래된 진공관 라디오와 주물로 만든 재봉틀 따위가 놓여져 있었고, 책장에는 유럽과 일본의 예술 서적들이 빛바랜 종이 냄새를 풍기며 쌓여 있었다. 어느 것도 지금 시대의 것이 아니었다.


카페 내엔 아주 어릴적 보았던 고전영화의 사운드트랙이 쉬지 않고 흘러 나왔다. 왠지 지금 부터 무언가를 잡으러 떠나야 할 것 같은 서부 시대 음악부터, 달콤한 사랑 노래 까지 꽤나 폭이 넓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일관성은 있었다.


잡담을 하다 최근의 운동(?) 이야기를 하다 책장에 꽂힌 예술 서적을 꺼내 팔랑이며 역시 이미 수십년 전에 상상력의 대부분은 구현이 되었구나를 새삼 실감하기도 했다.


이따금 일러스트 옆에 작게 붙은 제작년도의 시대가 궁금해졌다. 오래된 건 1930년대, 최근이라고 해도 80년대의 작품들이었다. 일러스트들은 지난주에 나온 것이라 해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았고, 광고 사진들도 그랬다. 오히려 쉽게 가감할 수 없었던 프로세스 덕분에 그 당시의 온기 같은 것도 생생히 느껴졌다.


예술가들은 지금 보다 자유로웠고, 더 고독했지만, 낭만이 있었다.


주문한 커피를 마시고, 남아있는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책을 한참 보다가도 누구도 먼저 나갈 생각을 안 했다. 중간중간 하나 둘 실내로 들어오는 손님의 몰골이 모두 녹아가는 아이스크림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물을 한 잔씩 가져와 마시고 이런 저런 근황을 듣다 다음 일정이 가까워져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은은하게 미쳐 있는 게 아닐까.“


중간에 들었던 이 말은 한참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짧게 몇 컷인가 사진을 찍었고, 안녕을 말하고, 동네로 돌아와 한 시간 정도 수영을 했다. 어지러움도 어깨 통증도 희미해져 있었다. 이런 SNS 밈 같은 말 별로 하고싶지 않았지만,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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