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겠지만 눈을 뜨자마자 환기가 시키고 싶었다. 지난 저녁에 먹은 음식 냄새가 집안에 가득 남아있는 것 같기도 했고, 종일 집에 있었더니 답답했던 기분도 있었던 모양이다. 침실의 창을 열고, 거실과 그 맞은편에 있는 다용도실 창을 열었다. 찬 기운이 금세 집안을 가득 채웠다. 건조한 공기 탓에 이젠 가습기가 없으면 아침에 코와 목이 불편하다. 빨간 불이 켜지면 바로 물을 채워 넣는다. 겨울이면 늘 사용하지만 이게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도 항상 든다. 그러면서도 대안은 없기에 몇 년째 같은 가습기를 사용하고 있다.
수능 날이라고 한다. 수년이 지나도 이맘때면 추워지고, 이런저런 사고와 진풍경이 벌어진다. 고작 단 하루의 시험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의 희비가 엇갈리는(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몹시 가혹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 것에 대한 반발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고3 수능을 치르지 않았다. 물론 이후에 많은 후회와 고민을 하고 결국은 진학을 위해 이런저런 불편을 감수하긴 했지만, 생각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큰 이유는 당일날 친구들을 응원하겠다고 시험장을 찾아갔을 때의 소외감 때문이었다. 세상은 분주하고 성실하게 굴러가는 순간에 나는 멍청히 그 모습을 응원하러 왔다는 그 사실이, 마치 우수 속의 작은 먼지가 된 것처럼 부끄러웠다. 몹시 극단적이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았고, 초라했고, 보잘것없기 그지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 선택으로 인해 아마도 조금은 더 치열하게 부딪혀 왔던 것도 있긴 했지만, 사실은 하지 않았어도 좋은 경험이지 않았을까 싶다. 불행은 쌓여도 무뎌지지 않고, 아픈 것은 몇 번이고 아프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 고요했다. 교통 통제 같은 것도 있고, 출근 시간이 미뤄지기도 한다. 교통편이 늘어나기도 하며, 경찰이 동원되고, 항공기의 이착륙마저 조정된다. 외신들은 이런 진풍경을 토픽으로 보도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국가적 행사인 것이다.
교육열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은 경기 북부의 작은 고등학교 출신의 나는, 스무 살의 내 모습과 미래의 모습이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당시에 빠져 있던 것은 인터넷 라디오 방송뿐이었고(지금 했다면 좋았겠지만) 나의 삶은 대체로 그 방송 시간에 맞춰져 굴러갔다. 집에선 대부분 동생과 나뿐이었고, 부모님은 오전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셨다. 친구들과 만나서 어울리는 것보다는 방송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좋았고, 그것이 아마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대한 기쁨이자 온기였던 것 같다.
스스로가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고 느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중고교 시절의 그 절대적 불안감 자체가 어쩌면 나에게 사춘기였다고 생각한다. 매해 조금씩 마음에 들지 않게 변해가는 모습이나 호르몬으로 인해 생기는 피부 트러블, 어떻게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반곱슬 머리, 한 반에 남녀가 뒤섞여 있어서 느껴지는 긴장감,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제대로 말을 걸 수 없었던 초라함, 주변 친구들에게 호감을 사며 인기를 누리는 나와는 다른 세상의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주인공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어느 곳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학기말의 롤링페이퍼엔 늘 말 좀 하라는 말과 빈 여백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이야 이런저런 말들을 성숙하게 가려서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그럼에도 롤링페이퍼는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솔직하지 못한 말을 그럴듯하게 써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는 상처 받는다. 내가 그랬으니까.
언젠가는 결핍이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지금은 잘 모르겠다. 우울하고 불행했던 시절에 대한 자기 위로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보다는 작은 칭찬 하나 가 훗날 큰 불꽃을 쏘아 올릴 수 있게 해 준다. 단 하루가 앞으로의 모든 날을 결정 지을 수는 없다.
이제는 나와는 조금도 상관없지만, 닮은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마음들이 평안하길 바란다.
빨간 불이 켜졌다. 슬슬 창문을 닫고 물을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