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기억이 고개를 든다. 최근 꾼 꿈에는 지나간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등장했다. 그 기억들은 몹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련한 모양이었지만 포근한 온기가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나의 선택으로 멀어진 인연들이었다.
사람은 사람의 관심에 항상 목마르다. 형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될 수도 있고, 굴복이 될 수도 있다. 그저 누군가의 시야에서, 기억에서, 오래오래 혹은 영원히 머무르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충족 시켜주었던, 주고 있는 것이 사진이라는 매개체라는 걸 최근에서야 새삼스레 깨달았다.
나는 사진으로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때때로 증명된다. 아마 이 선택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꽤 비극적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 덕분에 행복하고, 한없이 슬퍼지기도 한다.
항상 잘하고 싶지만, 생각처럼 안 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타율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것만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과 마음이 무뎌지는 것을 서서히 느낀다. 과거의 영민했던 영혼이 조금씩 불투명해진다. 날카로웠던 칼날은 오랜 전쟁 뒤의 잊힌 존재처럼 언젠가 무엇도 잘라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아마도 영원히 다시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고, 지나온 아름다움과, 현실의 반짝임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긴 고민과 슬픔을 끌어안고 있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다.
긴 여름이 지난 뒤에는 다시 한번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보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