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여름

by 노엘

1:38 AM, 이 시간에 깨어있는 건 오랜만이다. 늦다면 늦고 보통의 밤이라면 밤이지만 최근엔 거의 6~7시쯤 저녁을 먹고 밤 10시 무렵이면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간 못 본 척하고 있던 후반작업이 있었고, 드디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왔다. 그것에 리듬을 맞추다 보니 마무리된 시간이 자정 무렵이었다.


긴 시간 모니터를 보고 나서 그런지 왠지 답답한 마음에 집 앞의 세븐일레븐에 다녀왔다. 주말 밤이라 그런지 가는 길목의 공원 벤치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있었다.


편의점 안은 졸린 얼굴의 점원이 둘 있었고,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딱히 식욕은 없었지만 뭔가 먹을까 잠깐 둘러보다가 포기하고 낮에 찍어두었던 증명사진을 프린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밤의 짧은 산책이었다.


지난주만 해도 밤이면 쌀쌀한 기운이 있었는데 며칠 사이에 여름이 가까워진 듯 해가 저물어도 춥지 않다. 이따금 바람에서 여름 냄새가 났다. 마트에는 어느새 수박이 보이기 시작했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최근 아이스크림도 두 번이나 먹었다.


맑은 날이면 집 앞의 공원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기분이 된다. 모니터 안의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펼쳐지는 녹음에 잡음은 사라지고, 불안했던 마음도 평온해진다. 바람과 새 소리가 시간을 붙잡고, 몇 번이나 봐 왔던 계절이지만 새삼스레 경이로움을 느낀다.


언젠가 느꼈던 그리움과 온기 같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부드러운 아지랑이가 손바닥 위에서 아른거린다. 두 뺨엔 해 질 무렵의 노을이 가득하고, 어색하게 말을 놓았던 순간이 다가온다. 우리는 영원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너무 아름다웠다.


오늘 본 사진 속의 나는 어디를 보아도 이제는 중년의 아저씨였다. 여전히 많은 것들을 그리워하고 기억하고 있지만, 시간은 착실하게 흘렀고, 나의 겉모습도 변했다. 조금 울적한 기분도 들었지만 지금 하고 싶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음에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는 청춘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지만, 아마도 영원히 나는 그날을 그리워하고, 또 오늘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워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 간다는 것만으로도, 작지 않은 행운일 것이다.


어디까지 보고 경험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함께 하는 사람이 있고, 무모해 보이는 목표도 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펼쳐지겠지만, 나의 삶을 살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한다.


많은 얼굴이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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