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이 풀린 신학기의 여자아이

by 노엘

과제를 마치고 학교를 빠져나와 지하철 역으로 걷고 있었다. 하늘은 짙은 감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신학기가 시작된 교정은 어딘가 설레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안도한 표정의 사람들, 이제부터 무언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긴장감과 기대감이 달콤한 봄바람에 뒤섞여 있었다.


역에 다다를 무렵 멀리서 봐도 자기 키보다 큰 과제 꾸러미를 든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앞이 보이긴 하는 걸까 싶을 정도의 화이트보드며, 도면 통 비슷한 것들을 양손으로 끌어안듯 들고 조금은 힘겨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질 무렵 그 이유를 알았다. 신고 있는 신발의 한쪽 끈이 풀려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아이는 그저 한쪽 방향으로 걷기만 했다. 왠지 불안한 그 모습에 이끌려서 역의 플랫폼까지 따라 걷게 됐다. 우연히도 방향마저 같았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할까 수백 번 정도 고민하다 결국 어색하게 말을 걸었다. "저기.. 신발 끈이..." 여자아이는 살짝 놀라는 눈치였지만, 이내 곤란한 웃음을 지으면서 과제 꾸러미를 얼굴로 가리켰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신발 끈을 묶어주고 있었다. 남의 끈을 묶어 본 적이 없다 보니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너무 오래 이러고 있으면 이상한 사람 같은데 라는 생각도 들면서, 머리 위의 시선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신발 끈을 묶고 겨우 일어섰다.


이게 뭐라고, 긴장도 되고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설레기까지 했다. 그 무렵 플랫폼에 열차가 들어왔다. 어색한 공기가 길어지지 않아서 안심했다. 과제를 양손에 든 여자아이는 문쪽에, 나는 조금 떨어진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가까이서 본모습은 생각보다 귀여웠다. 몇 번인가 눈이 마주쳤지만, 서로 어색하게 피하기만 했다. 연락처라도 물어볼까, 물어봐야 하나, 어디까지 가는 걸까, 머릿속으로 온갖 망상을 하던 도중에 문이 열리고, 여자아이는 먼저 열차에서 내렸다.


휴- 왠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는 왜 그렇게 긴장했던 걸까. 그리고 그날의 그 순간이, 끈이 풀린 캔버스화를 신었던 여자아이에겐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조금 더 말을 걸었더라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이렇게 신학기 무렵이면 이따금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를 들었던 어떤 여자 후배는 신발 끈을 풀고 다녀야겠다는 소리도 했었는데, 과연 성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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