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과 1년 간의 조각모음

by 노엘

며칠 전 5월로 달력이 변한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선 매월 말일에 해야 할 공과금 납부를 처음으로 기한을 놓쳤던 일이 떠올랐고(해외에 있어도 놓친 적이 없었다), 월에 한 번씩 물을 줘야 하는 식물 화분이 다음으로 생각났다. 4월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설렐 틈도 추억할 여유도 없이 내내 달려왔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큰 마감들은 거의 정리가 되어 있었고, 이제 몇 건의 마감만 하면 4월의 일들은 그럭저럭 정리가 된다.


그에 비해서 5월의 시작은 고요했다. 조금 분주했던 건 어디까지나 지난달의 연장선이었고, 한숨 돌릴 틈이 생기자마자 다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잠식해갔다. 어지간히 중심잡기 힘든 마음인 것이다. 가정의 달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어제오늘은 영화 매드 맥스 같은 날씨지만, 그래도 맑았던 날들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휴대폰은 매일매일 지난날들의 추억을 상기시켜준다. 일 년 전의 것부터 10여 년 전의 일들까지, 사진 속엔 많은 장소와 사람들이 그 안에 있다. 새록새록하기도 하고, 다양한 이유로 이제는 만나기 어려워진 사람도 있다. 항상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멀어진 거리들을 보면 가슴 한편이 저릿해 온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팀들과의 이별식(?) 같은 자리도 있었다. 헤어짐의 형태는 중요해서, 어떻게든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영원한 이별일 수도 있고, 다른 형태로 금세 만나게 될 수도 있지만 다음의 일은 모르기 때문에

일터에서만 만나던 사람들을 반쯤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 함께 식사를 했다. 이런 분들과 함께 했음에 행복했다. 다음에도 그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어떤 일이든지 함께 하고 싶었다.


또 다른 자리도 있었다. 역시 현장에서 알게 됐지만, 매번 서로 일만 하고 헤어지던 사이라, 그들에게 무언가 좋은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과음을 하긴 했지만, 일 이야기가 빠진 말들로 채워진 밤은 행복했다. 시간을 내어 누군가의 시간을 채워주는 일은 멋지고 값진 일인 것이다. 다음엔 빈 병 개수를 조금 줄이고 다시 만나고 싶다.


거의 일 년이 지난 필름들을 현상했다. 대학시절 이후에 이런 일로 충무로에 가는 것도 오랜만이었고, 포토피아나 월드 포토가 아닌 요즘 사람들(?ㅋ)이 많이 찾는다는 예쁜 이름의 작은 현상소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평일 낮임에도 몇몇 사람들이 있었고, 필름을 들고 나오는 게 워낙 오랜만이라 왠지 이제 갓 카메라를 사서 첫 필름 현상을 맡기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접수 카운터에선 왠지 쭈뼛거리게 됐는데, 사진 초보가 와서는 헤매는구나 하고 생각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부끄러웠다. 처음은 아니지만 이런 처음 같은 자리는 항상 어려운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 어둡고 동그란 필름 매거진에 있던 추억들은 디지털화되어 단 몇 시간 만에 받아볼 수 있었다. 현상된 필름은 방문하지 않아도 주소지와 배송료를 지불하면 택배로 받을 수 있다. 이렇게나 편리해지고 빨라졌다니, 어휴.


침실 안의 공기청정기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이런 재난 같은 날은 언제부터였는지, 눈도 평소보다 아프고, 왠지 잠도 덜 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창문을 닫는 것만으로는 역시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본가에 전화를 해야겠다. 날이 맑을 때 찾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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