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by 노엘

그 겨울은 항상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아도, 집 앞을 나설 때에도 온통 하얀 풍경들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었다. 깊이 숨을 들이쉬면 차갑고 맑은 공기가 온몸을 가득 채웠고, 하얀 입김은 부드럽게 번졌다. 도시의 그림자는 파랗게 빛났고, 언제까지나 이런 날들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눈은 도시의 모든 소리들을 삼켰다. 발걸음 소리도,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 소리도, 우리의 말소리 조차 조심스러웠다.


하코다테역 대합실에서 마주친 여자아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큰 캐리어를 들고 있었다. 심지어 오는 길에 특급열차의 좌석 티켓을 끊을 수가 없어서 입석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투덜거렸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제법 오랜만의 일이었는데, 그것도 이렇게 낯선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여행지에서 원래 딱히 특별한 일정을 정하지 않고 생활을 하는 편이었고, 그녀는 마침 이쪽에 올 일이 있었던 것이다.


만나서 무얼 했는지 사실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도 함께 식사를 했을 것이고, 근처를 둘러보거나 짧은 해가 지고 나면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었겠지.


그럼에도 이상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노면 열차에 내려서 그녀가 나를 찾는 모습이었다. 나는 길 건너에 서있었고, 도로의 섬 가운데 정차한 열차에 내려서는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고 있었다. 때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고, 길 건너의 사람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의 강설이었다. 손을 흔들어 보았지만 아마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어림짐작으로 길을 건너는 모습이 보였고, 거의 눈 앞에 두고서야 서로를 알아봤다.


어딜 가도 우리를 연인 사이라고 생각하며 대화를 걸어주었는데, 사실 우린 이미 헤어진 지 제법 시간이 지난 사이였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분명 귀찮은 말들이 길어질 것 같아서 대부분 적당히 듣고 웃으며 흘러 넘겼다.


며칠인가 동행을 한 뒤에 우린 중간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갑자기 선선해진 날씨 덕분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SNS에는 온통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하늘 사진들이 가득했다. 나도 뭔가 그럴듯한 하늘을 찍어서 올려보려고 했는데,


그보다 가을의 문턱에서 겨울이 조금 그리웠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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