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조각 모음

by 노엘

그날 밤에 눈이 내렸었나? 너와 함께 있어서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사실 그때가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는지 네 생일이 가까웠던 이른 봄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반짝이는 홍대 뒷골목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었다. 무언가 기념하려고 했던 자리였던 것 같은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가게 앞의 노란빛 크리스마스 전구들과 아직은 입김이 나올 만큼 추웠지만 온기로 가득했던 목재로 만들어진 실내의 분위기와 냄새만큼은 여전히 떠올릴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무얼 먹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도, 네가 웃었는지 울었는지 조차 떠올릴 수 없다. 그렇게 지금의 나는 사진을 찾아보지 않고는 네 얼굴을 기억해 내는 일에도 제법 긴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되었다. 눈이 내리는 도시의 밤 풍경 일러스트를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


해가 저문 뒤의 바람이 시원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열대야가 있는 계절에 살고 있었다는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오빠는 은근히 화려한 사람을 좋아한다니까?"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잠깐 돌이켜 생각을 해봤다. 기본적으로는 상냥하고 섬세한 사람이 좋은데, 통계적(?)으로 보면 제법 화려한 외모의(혹은 옷차림)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아닌 적도 있지만, 으음, 이런 건 항상 어려운 일이다. 잘하거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마음껏 고를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초식동물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최근 가끔씩 한다. 이렇게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과 온기가 있다면 나의 삶이 더 가치 있고 빛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나이가 든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를 기혼자에게 하면 다들 그렇게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된다고 우스개 소리를 한다. 정말 그런 걸까?


만들어 놓은 결과들을 다시 돌이켜 보면 늘 부족한 점만 보인다. 이런 종류의 직업은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 어쩌면 다행이기도 분하기도 하다. 나이와 경력이 관계없이 천재적인 능력들을 보여주는 이들은 늘 동경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력은 필요한데, 얼마 전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그가 가장 처음 일본을 떠나 미국 시장을 개척하던 에피소드에 관해 읽었다. 지금이야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또한 국내에서 수상을 하고 알려졌음에도, 스스로를 알리기 위해 멘땅에 헤딩하듯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군분투했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여기저기서 모셔 간 것이 아니다. 결국 나를 알리는 건 나 밖에 할 수 없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삶의 흑화 된(ㅠㅠ) 버전이지만, 이럴 거라면 차를 바꿀까 하는 생각도 최근 자주 한다. 이것도 계기와 원동력이 될 수 있을까, 그냥 지출 부담만 늘리는 일이 되려나, 잘 모르겠다. 자주 길을 잃는다. 좋아하는 차도 너무 많다.


술에 약해졌다. 식단을 바꾸게 됐고, 외식과 배달음식을 현저히 줄인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집에선 맥주 500ml 캔 한 두 개면 충분히 취한다. 한창 많이 마실 때는 4캔으로 부족해서 더 사 오던 적도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물론 사람과 만나서 다른 장소 다른 분위기라면 변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한 달에 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가을의 창경궁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가고 싶다.


연말에 있었던 파티들을 준비하는 과정이 사실 제법 고단한 일이라, 할 때마다 고민을 했었는데(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잊을 수 없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던 날들이 너무 그립다. 엉망이 되어도, 지나간 뒤에 눈물이 날 만큼 공허할지라도, 쉽게 용기를 낼 수 없는 나는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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