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얼마간 머릿속이 맑아진다. 복잡했던 것들이 조금은 물속에 녹아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놀라울 만큼 해가 짧아져서 저녁 수영을 가면 더는 노을을 볼 수 없게 됐다. 주말이라 서둘러 일을 마치고 일찍 수영을 다녀왔고, 오랜만에 수영 이후의 하늘을 봤다. 차에서 노래를 크게 틀고, 선루프와 창문을 모두 열고 바라보는 돌아오는 길의 하늘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좋다. 도시의 소음과 바람이 뒤섞인 주말의 한적한 도로는 평일의 전쟁 같은 정체가 있기나 했었냐는 듯이 평화롭다.
사진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스튜디오를 셰어 해서 1년 정도 생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비용은 내지 않았는데, 대신 내가 가진 스킬을 스튜디오를 위해서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흔쾌히 수락했고 생활을 이어갔는데, 매번 문제가 생기는 지점이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일이 없으면 스튜디오에 나가지 않는 타입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일이 없어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라는 방식을 고수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너는 직접 임대료를 내지 않으니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그때는 뭐라고 반박할 수 없었다. 임대료를 실제로 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참고 듣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면 그의 생각이 틀렸다. 지금은 당시의 스튜디오보다 어림잡아도 열 배 가까운 임대료를 내면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이 없을 때는 출근을 하지 않는다.라는 방식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일이 없는데 불필요한 에너지는 사용하지 않는다. 당신의 생각이 틀렸어요. 그냥 방식의 차이였는데, 차마 그때는 말하지 못한 게 가끔씩 생각난다.
추석 연휴가 지났는데 사실상 나에게는 휴일이 하루 정도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분풀이라도 하듯 당일 저녁에 엉망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매번 만나자고 하고 만나지 못했던 광고인 두 명과의 자리였다. 기획과 카피라이터, 포토그래퍼가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는 대부분 여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다 가끔씩 우리 셋이면 뭐라도 만들 수 있겠지 않겠느냐는 대화를 하다 결국은 다시 여자 이야기로 돌아갔다. 우리 모두에겐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다. 백신러가 둘이나 있어서 가게들이 닫을 때까지 술을 마셨고, 그러고도 왠지 부족해서 홍대 인근 공원 옆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마셨다.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게 얼마만인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좋았던 것도 잠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고 강제 해산했다. 누구도 우산은 없었고, 피하거나 가릴 틈도 없이 포기하고 천천히 헛웃음을 지으면서 집에 돌아왔다. 빗물로 샤워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 뜨거운 물로 다시 한번 샤워를 하고 깊은 잠에 들었다. 즐거웠다.
한동안 알고 지내던 배우가 최근에 너무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왠지 덩달아 기쁘다. 나는 가능성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와 같은 마음. 오래전 서로 한 번씩 약속을 펑크 낸 이후에는 왠지 어색해져서 제대로 된 연락을 하고 지내지는 못하지만, 항상 응원하는 마음이다. 부끄러워서 직접 무어라 말하진 못했지만 언젠가 공식적인 촬영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파이팅.
매월 지나갈 때마다 놀라곤 하는데 다음 주면 어느새 10월에 들어선다. 바쁘다고 한참을 징징 거렸던 것 같은데 10월도 이미 바쁘다. 새로운 도전과 일들도 많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감사한 일이다. 조금만 틈이 생겨도 나는 나쁜 생각을 하고 마는 사람이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야 한다.
그러고 보니 주말이다. 일단은 하이볼을 만들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