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유럽여행 회상기 02
나의 첫 유럽여행 회상기 01
젊을 때 무엇이든 도전하라
누구나 이런 문장 한 번쯤은 가슴속에 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청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자기 계발서들이 홍수처럼 범람하던 때. '회사 때려치우고 유럽여행 다녀왔어요', 또는 '대학 진학 대신 세계일주' 등 마치 <진정한 나의 삶>을 찾아 떠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러한 이야기를 담은 서적들도 꽤 인기 있었다. 인생은 길고 할 일은 많으니 무엇이든 해보라는 미디어 속 이야기들. 당시의 나도 대학원을 (홧김에) 때려치워놓고선 이미 무슨 대단한 도전이라도 한 것처럼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이제 어디로 떠날 것인가!
우선 유럽을 가 보자. 가서 한 달 동안 보고 듣고 느껴보자. 그럼 뭐라도 돼있겠지.
뭐라도 돼있겠지. 이런 안일한 생각이 문제였다. 겨우 한 달이나 두 달 여행으로는 견문을 넓힐 수 있어도, 인생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 당연한 사실을 애써 부인하며 나는 유럽에서 뭘 얻으려 했던 걸까. 서구 문명의 발상지이자 건축과 예술의 살아있는 박물관과도 같은 유럽. 막연히 동경만 해왔던 그 땅을 직접 두 발로 밟는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던 건가. 국가들이 그리 크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있어 부루마블처럼 도장깨기라도 하고 싶었던 건지 모른다.
어쨌든. 유럽, 유럽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콧노래를 부르며 가장 효율적인 루트와 교통편을 계산했다.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건가. 백수가 되고 나니 계획 짜는 것도 재미있구나. 앞으로 나는 여행하면서 돈 버는 그런 삶을 살 거야. 막연히 품은 꿈 하나. 여권을 10년짜리로 갱신했다. 해외 겸용 체크카드도 개설하고, 몇 십만 원짜리 유레일 패스라는 것도 과감히 결제했다. 내가 원하는 날에 국경을 넘나드는 기차를 맘껏 탈 수 있는 무제한 열차 티켓이라니! 당장 일주일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도 알 수 없으면서, 이날은 샤이요 궁에서 에펠탑을 봐야지, 이날엔 나보나 광장에 가서 젤라토를 먹어야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계획을 잘도 짰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떠난 유럽여행은 어땠나.
당연히 행복했다. 다들 무언갈 포기하면서까지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인생이 송두리 째 바뀌지는 않았지만 취향들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게 됐고, 여럿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그에 대한 결과는 오롯이 내가 책임지는 것.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깨닫고 나니 틈만 나면 해외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문제는 그 이후의 삶이었다. 40일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현실은 놀랄 만큼,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아둔 돈만 거의 다 쓰고 돌아왔을 뿐.
돈 많은 백수에서 돈 없는 백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추억들과, 스마트폰에 차곡차곡 남아있는 여행 사진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