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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Do May 22. 2023

당신에게 먼지요정이 쓰는 편지

01. 보금자리

To: ‘너’에게


안녕, 우연하게 만난 너야.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 너는 비록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오래도록 지켜본

존재들과 친한 친구야.

그 친구들이 너무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 누구인지

밝히기는 어렵지만.

네가 처음 껌을 씹었을 때 몇 분 만에 뱉었는지,

네가 꾼 최악의 악몽은 얼마나 고약한 냄새를 풍겼는지, 너의 손에 쥐고 있는 꿈의 풍선들이 매일매일 그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등을 귀에 닳도록 들었거든.


그러니 오늘 밤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니?


편지라는 것 자체가 너의 반응을 바로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내 멈추지 않는 수다에 네가 지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오늘 밤은 유난히 달콤한 바람이 밤의 고요함 속에

한 스푼의 설렘을 풀어놓아 참지 못하고

편지를 쓰고 있어.


어떠한 생각을 누군가에게 녹여서 푼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아. 그게 나에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고, 또한 그 사람이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야.


그럼에도 나는 지금 만나본 적도 없는 너에게 말을 걸고 있어. 야식으로 먹었던 ‘벌꿀 차’에 이번 봄에 새로 재배한 ‘용기 민들레’ 가루를 한 스푼 크게 넣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아. 그리고 그 덕분인지, 너에게 편지를 쓰기 직전 나의 부끄러움과 불안감은, 내 글이 너를 만난 후 모두 ‘다행’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어.

참 다행이야 너를 이렇게 만나서.

나의 말이 우연히 너를 찾아서.

지금은 정확히 보이지 않는 너의 형체조차도 감사해. 보이지 않는 게 내가 너에게 말을 걸기 더 쉽긴 하거든.


지금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나는 서쪽 저 멀리 높은 나무들이 서로 한데 모여 사는 빽빽한 숲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은 모든 바람들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곳이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나무에 우리 숲에서 가장 솜씨 좋은 딱따구리 아저씨가 만들어준 나무 구멍에서 살고 있어. 네가 여기에 차라도 마시러 오면 참 좋을 텐데.

아직 가구가 다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 어떠한 요정의 보금자리보다 폭신하고 말랑말랑할 거라는

자부심은 있거든.


이 보금자리로 옮긴 건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는데 이 장소가 나를 찾은 것 또한 오직 미래의 나만 알 수 있었던 행운이었어. 몇 달 전의 나라면 단 한 명의 요정이나 두 발로 걷지 않는 자들(동물들)도 모르는 이곳에서 이토록 편안한 생활을 할 줄은 꿈에도 믿지 않을 테니 말이야. 물론 처음부터 편안하기만 하지는 않았어.

여기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갑작스럽게 새로운 공간에 실수처럼 남겨지게 되었거든.


너는 혹시 그런 적이 있니?

그동안 내가 익숙하게 사랑하고 있던 이들과 장소,

기억들이 아무것도 나를 따라오지 않은 채로 나에게 살짝의 흔적만 남긴 채 모두 나를 떠난 거야.

나의 의지 없이 모든 것이 손 틈 사이로 사라져 갈 때, 그리고 나는 아무리 잡으려도 노력해도 어떠한 것도 남지 않았을 때. 내 속에서는 안개가 차오르기 시작했어.

그 안개는 그 속을 아무리 걸어도, 두 팔을 허공에 휘저어보아도, 아니면 안개마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나를 가둬봐도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나 자신을 꺼내오진 못했어.


한참이나 지나서 알았어

이 안개를 걷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그건 가만히 앉아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는 것도, 무조건 뛰는 것도, 목청껏 도움을 소리치는 것도

아니었어.


눈을 감는 거야. 그리고 듣는 거야

그럼 너를 부르는 소리가 분명 들릴 거야.

그것은 너를 찾는 너를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일 수도, 어린 네가 첫 아이스크림을 먹고 행복해하는 웃음소리일 수도, 아니면 잊고 있었던 이루고자 했던 꿈의 잔해가 사실은 너를 떠나지 않고 너를 부르고 있는

소리일 수도 있지.


그럼 그 방향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 네가 끝내 도달한 곳이 너의 새로운 집이 될 거야.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거든!

그곳이 네가 예전에 ‘집’이라고 부르던 곳이 아닐 수는 있어. 하지만 너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고, 너 안에서 삶의 터전을 잡은 요정들은

새로 생긴 너의 집의 공기를 달콤하게 하는 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


오늘은 내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

다음에 내 편지가 너를 찾는다면, 우리가 그런 행운을 다시 맞이한다면,

오늘보다 그날 더 행복한 우리가 만나게 될 거야

그러니 인사는 하지 않을게

우린 다시 만날 거니까.


                                                            


 

        To: 한때 안개의 숲이었던, 아직 이름 없는 숲에서.                                                                     먼지 요정이

같은 동네 주민인 쿼카가 찍어준
먼지 요정의 보금자리가 있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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