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보수편에 이어 좀 더 진보적인 가정의 결혼에 대해 적어 보겠다.
몇 해 전 결혼을 앞둔 사우디 친구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난번에 이야기를 나누었던 보수적인 친구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다.
이전 글에 적었던 것과 같이 일단 부모님의 소개로 서로가 만남을 갖고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성이라고 한다. 물론 외모도 중요하지만 인성을 더 중요시 여긴다고 하는데 형식상 내게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지... 난 외모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그런 이유로 서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만남이 끝나고 약 일주일 후에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게 되는데 본인이 직접 피드백하는 경우는 절대 없으며 본인 어머니가 상대 어머니에게 또는 본인 아버지가 상대 아버지에게 피드백을 준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서로 마음에 든다고 하면 연애라는 것이 시작된다.
반면,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이야기를 한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 아주 기분 좋게 끝내는 것인데 생각해 보면 이게 아주 껄끄러운 일이다. 도대체 어떻게 말을 전해야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느냐 물었지만 친구는 그냥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신의 따님은 아주 훌륭한데 못난 내 자식 놈이 싫다고 하는군요. 제가 봐도 당신 따님이 아깝습니다. 못난 놈을 데리고 나와서 죄송합니다. 알라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지 않을까?
이전 글에서 적은 것처럼 첫 만남 후 맘에 든다고 바로 결혼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 친구의 경우는 상대가 당시 고등학생이었기에 졸업할 때까지 기다렸고 (하.... 고등학생과 선을 보다니...) 약 2년의 기다리는 시간 동안 서로 통화를 하며 사랑을 쌓았다고 한다. 서로 만나서 데이트를 할 수도 없고 얼굴도 보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서로 페이스타임을 즐겨했다고 한다.(요즘은 페이스 타임 락이 풀렸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우디에서 구매하는 아이폰은 페이스 타임에 락이 걸려 이용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 얼굴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2년을 기다린 후에 여자가 졸업을 하고 결혼식 3개월 전 혼인 서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한다. 이후 정식 부부가 되는 것인데 진짜 결혼식은 그 이후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 형식으로 진행된다.
서약서에 사인을 했다는 이야기가 다소 낯설고 왠지 거래 성사의 느낌이 들어 좀 별로였지만 한편으로 삶의 가장 중요한 약속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만약에 서로 연락하고 지내다가 맘에 안 들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냥 헤어지면 돼."였다. 이곳에서 그런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서로 이야기하고 알아가다 맞지 않아 '이건 아니다'라는 판단이 서면 쿨하게 헤어지는 것이다. 이별의 아픔도 모르는 무미건조한 국민들이라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다.
만남과 이별이 나름 건전하고 건강한 것 같다.
한 가지 장난치고 싶은 맘이 들어서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길 가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 만나면 대시하고 그러냐? 얼굴을 못 보니 눈이나 손목이나 발목 예쁜 여자에게 대시해?"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요즘 애들은 얼굴 잘 안 가리고 다닌다.“였고 ”맘에 들면 직접 가서 이야기한다.“였다.
그리고 그다음 대답이 웃게 만들었는데,
"나 너 맘에 드는데 너희 어머니 연락처 좀 알려줘."였다.
어머니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이유는,
'너 맘에 드니깐 우리 엄마가 너희 엄마에게 전화할 거야. 선 날짜 잡자.'라는 것.
만약 여자가 남자를 맘에 들어하면 연락처를 알려주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결혼했다고 하거나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참 건전한 만남이다.
우리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때 참 행복하다 느끼는데, 서로 맘에 들었던 두 사람이 만나지도 못한 채 연락만으로 사랑을 쌓아오다 서약서에 사인을 하고 결혼식을 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내겐 이제 그 행복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