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좋은 점들 중 하나는 휴가가 많다는 것이고, 한국과 달리 휴가를 길게 가는 것을 회사 측에서 선호한다는 것이다. 한국회사에서 휴가를 길게 쓰면 난리가 날 텐데, 사우디 회사는 자주 가는 것보다 한 번에 길게 가는 걸 선호한다. 연간 42일의 휴가가 주어지고 우리 가족은 봄방학인 3-4월에 2주, 여름방학에 1달 그리고 겨울방학인 12월 달에 2주 정도 휴가를 떠난다. (아내와 아이는 여름방학에 두 달, 겨울방학에 한 달 정도 사우디를 떠난다.)
입사하고 처음 휴가를 떠날 때 가장 이질적이었던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휴가 전날 오전에 퇴근하는 것.
둘째는, 휴가 복귀날 오후에 출근하는 것.
셋째는, 업무 인계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중 난감하게 했던 것이 업무인계서 작성이었다.
휴가 보고를 하러 팀장에게 갔는데 팀장이 "너 업무인계 메일 다 보냈어?"라고 묻는다.
그래서 "인계 할거 없는데?"라고 했더니 "Oh come on~~~ 어떻게 인계할 게 없어? 너 없는 동안 네가 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돼?"라고 황당해했다.
“한 달 동안 해야 할 것들 미리 다 끝냈고 중요한 일들은 다 정리해서 문제없을 거야.”라고 하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날 쳐다봤다.
한국에서 휴가를 가면 길어야 일주일이었고 팀장이나 그룹리더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 "인꽐라씨, 휴가 가기 전에 너 할 일 다 끝내고 가라. 다른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였다. 그래서 휴가 전 일주일은 정말 바쁘게 보냈다. 향후 일주일 동안의 일까지 모두 다 마무리하고 가야 했기 때문이었고 나의 게으름 때문에 동료들에게 피해를 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업무인계서 같은 건 필요가 없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장기휴가를 떠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직원수에 비해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고, 사우디 문화 특성상, 업무가 조금 미뤄져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킬포는 휴가 전 업무 인계를 해더라도 한 달 뒤 출근을 하면 인계된 업무는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내 자리에 놓여 있다.
"그래! 이게 이곳의 매력이지."
한국에서의 휴가도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비행기가 사우디 공항에 목요일 오전 8시 도착하는데, 휴가 복귀일이 목요일이다. 이번엔 나도 사우디 사람처럼 오후에 출근할 생각이다. 집에 짐만 풀어 놓고 바로 출근해야지. 한국처럼 빡빡하게 살 거 뭐 있나.
한 달째 그대로인 업무가 날 반겨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