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 고객 중 한 명이 이제 여름이 다가오니 에일(Ale) 말고 라거(Lager)를 좀 만들어서 팔 수 없냐고 제안했던 적이 있다.
라거는 만들기 어려워서 안 한다고 했더니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맥주가 라거인데 만들기 어렵다니?"라고 하며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많은 사람들이 라거는 만들기 쉽고 저렴하고 가벼운 맥주, 에일은 비싸고 뭔가 어려운 맥주라고 생각한다. 정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이다.
라거의 출현은 파스퇴르와 칼스버그에 의한 노력으로 나오게 되었고 급격한 성장은 냉장기술의 발전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약 섭씨 10-13도)에서 발효가 진행되는 라거는 에일과 달리 발효기간이 길고 발효 이후에 약 섭씨 3-4도에서 4주 이상 '라거링'이라는 긴 숙성기간을 거쳐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 즉, 라거를 만들기 위해선 적어도 6주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고 장기보관을 위해 저온살균법(이것도 파르퇴르의 작품)을 적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번거로운 맥주는 대량생산, 저온숙성 및 보관을 위한 장비를 갖춘 대기업들이 생산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회전율을 중시하는 소규모 브루어리들은 오래 걸리고 번거로운 라거를 만들 이유가 없고 마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라거는 대기업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회전율을 중시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가끔 케깅한 날짜를 물으면 5개월이 넘은 맥주도 판다.) 그래서 수제맥주집을 가면 라거종류의 맥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찾을 수 있기는 하지만 정말 맛있는 라거는 마셔본 기억이 없다.) 억지로 찾아보자면 라거스타일의 에일은 팔기도 한다. (Kolsch 같은...)
오늘의 야식은 스페인산 하몽과 이태리산 빠르미지아노 레쟈노 치즈 그리고 사우디산 라거맥주.
개인적으로 하몽에는 포터 같은 흑맥주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아쉬운 대로 독일식 라거인 헬레스 맥주로 대신해 본다. 그리고 어디에든 잘 어울리는 세계 최고의 치즈가 있으니!
이 맥주로 말할 것 같으면...
독일 하면 떠 오르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유명한 것이 맥주 그리고 베토벤이다.
독일 뮤닉 헬레스 (Munich Helles) 스타일의 이 맥주는 나의 최애곡 베토벤 교향곡 6번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졌다. 고전파 베토벤이 낭만파적 음악을 만든 것에 더 끌리게 된 영향이 크다고 할까? 무언가를 깨버리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설레는 일인지....
첫 목 넘김에서 느껴지는 상쾌하고 깔끔함은 1, 2악장에서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시골마을에 다다랐을 때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후에 느껴지는 살짝 구운 빵 특성의 몰트향과 플로럴 한 허브향은 3악장의 시골느낌의 춤곡인 렌들러를 대변해 주고 뒤에 따라오는 약간의 비터는 4악장의 묵직한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폭풍우의 느낌을, 마지막 5악장은 다 마시고 났을 때의 감동을 잘 표현해 준다.
어쨌든 정말 맛있는 라거를 만들었다.
베토벤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순간, 지금 이곳은 독일.(이면 좋겠지만 사우디 ㅜㅜ)
ABV:5.0%
IBU: 20 IBUs
Color: 3.9 S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