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한 사랑 노래」
중학교 때 처음 읽은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 는 ’늦은 밤‘, ’달빛‘, 그리고 ’차가운 공기‘로 기억되던 시였고 당시 드뷔시에 빠져 있던 난 ’달빛(claire de lune)‘을 들으며 시구절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우울해하곤 했다.
‘가난하면 정말 다 버려야 하는 것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이 무섭게 다가왔다. 가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했고 밤중에 멀리서 건설기계가 ‘웅웅’ 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덜컹 내려앉기도 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괜히 우울해지고 싶으면 달빛을 배경 삼아 이 시를 되뇌곤 한다. 아니 갑자기 우울해지면 위로를 받고 싶어 이 곡을 꺼내 드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암튼 우울질 기질인 내겐 마음을 달래주는 좋은 곡이고 좋은 시이다.
평소 자주 마셨던 블루문이라는 맥주가 생각이 나 비슷한 맛을 내도록 카피해서 한 배치 만들어 보았다. 한 잔 따라 마시면서 문득 깊은 밤 새파란 달빛이 쏟아지는 상상을 하게 됐고 드뷔시의 ‘달빛’ 그리고 그 시까지 꺼내 보았다. 모두가 잠든 밤, 헤드폰을 끼고 홀로 홀짝 거리는 이 시간. 아직은 가난하지 않음에 감사하며 한 잔 더 마셔야겠다.
그럼 이 맥주의 이름은 드뷔시로 해야겠다.
드뷔시 레시피
몰트
밀몰트 2.5kg
페일몰트 2kg
플레이크 오트 0.45kg
홉
센터니얼 20g 60분 끓임
기타
오렌지 껍질 28g 5분 끓임
고수씨 28g 5분 끓임
효모
벨지안 윗 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