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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꽐라 Aug 18. 2023

우울할 땐 드뷔시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한 사랑 노래」


중학교 때 처음 읽은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 는 ’늦은 밤‘, ’달빛‘, 그리고 ’차가운 공기‘로 기억되던 시였고 당시 드뷔시에 빠져 있던 난 ’달빛(claire de lune)‘을 들으며 시구절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우울해하곤 했다.

‘가난하면 정말 다 버려야 하는 것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이 무섭게 다가왔다. 가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했고 밤중에 멀리서 건설기계가 ‘웅웅’ 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덜컹 내려앉기도 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괜히 우울해지고 싶으면 달빛을 배경 삼아 이 시를 되뇌곤 한다. 아니 갑자기 우울해지면 위로를 받고 싶어 이 곡을 꺼내 드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암튼 우울질 기질인 내겐 마음을 달래주는 좋은 곡이고 좋은 시이다.




평소 자주 마셨던 블루문이라는 맥주가 생각이 나 비슷한 맛을 내도록 카피해서 한 배치 만들어 보았다. 한 잔 따라 마시면서 문득 깊은 밤 새파란 달빛이 쏟아지는 상상을 하게 됐고 드뷔시의 ‘달빛’ 그리고 그 시까지 꺼내 보았다. 모두가 잠든 밤, 헤드폰을 끼고 홀로 홀짝 거리는 이 시간. 아직은 가난하지 않음에 감사하며 한 잔 더 마셔야겠다.


그럼 이 맥주의 이름은 드뷔시로 해야겠다.

취해서 찍은 사진

드뷔시 레시피

몰트

밀몰트 2.5kg

페일몰트 2kg

플레이크 오트 0.45kg


센터니얼 20g 60분 끓임


기타

오렌지 껍질 28g 5분 끓임

고수씨 28g 5분 끓임


효모

벨지안 윗 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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