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에서는 매년 자동차 검사를 받아야 하고 검사완료 스티커를 앞유리에 붙이고 다녀야 한다. 만약 검사를 미룬 채 다니다 경찰의 불시검문에 걸리게 되면 약 3만 원의 벌금을 내게 된다. 차량 검사소는 집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고 검사시간도 오래 걸려 1년에 한 번이라도 가기가 엄청 꺼려진다. 그래도 벌금을 내고 난 뒤에 찾아오는 지저분한 감정을 감내할 수 없어 박차고 일어난다.
검사일이 훌쩍 지나버려 며칠 전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번호판의 글자색이 검정색 아니라고 퇴짜를 맞았다. 번호판 글자색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글자만 잘 보이면 되는 거 아닌가!
한국에서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사우디는 모래바람이 유독 심해 번호판 글씨가 쉽게 지워진다. 그래서 때가 되면 색칠을 해 주어야 하는데, 마침 검정색 펜이 없어 메탈컬러(금속색?) 펜으로 색칠을 하고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검사원에게 걸려 버린 것이었다.
검사소까지 다시 올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왕복 두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데.... 게다가 집에 가는 길에 경찰 검문에 걸리면 벌금각이다. 그런 이유로 다시 방문하기가 너무 싫어 협상을 시작했다.
“이거 경찰서 가서 새 번호판으로 바꿔와.”
“내일 가서 바꿀 테니 그냥 검사해 줘.”
“안돼!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해.”
“그럼 내일 바꾸고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안돼! 가서 바꾼 뒤에 다시 와. 너 때문에 뒤차들이 다 기다리고 있어.”
역시 씨알도 안 먹힌다. 번호판을 바꾸려면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고 약 10일 뒤에 경찰서에 배송이 되면 3만 원을 내고 번호판을 교체해야 하는데 그 기간에 경찰이 검문을 하게 되면 또 3만 원을 뜯기게 될 테니 반드시 오늘 해결을 봐야 한다.
“그럼 검정색으로 칠하면 검사해 줄 거야? “
“안돼!“
“왜 안되는데? 검정색이면 괜찮은 거잖아.”
“칠하다가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어서 안돼.“
이 말을 듣는 순간, 승리를 직감했다.
“다 칠하고 나면 네가 확인해. 맘에 안 들면 맘에 들 때까지 칠할게.”
그래서 검사소 옆에 주차를 하고 쪼그려 앉아 검정색 국산 네임펜으로 열심히 칠해 주었다.
자동차 검사는 합격!
내 이 치욕적인 날을 잊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