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기 위한 퇴사와 성장하기 위한 퇴사
퇴근길 지하철에서 직장인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선후배 사이로 보입니다. 후배가 퇴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회사에 퇴사를 알렸는데 이것이 잘한 일인지 확신이 없다고 합니다. 선배는 후회되면 그냥 다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후배는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다고 하네요. 여러 얘기가 오가지만 딱히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대안 없이 둘은 내렸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6년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신입사원 채용 실태 조사 결과 1년 이하 신입사원 퇴사율은 27.7%였습니다. 대기업은 평균 대비 낮을 테고, 중소기업은 이보다 더 높겠죠.
퇴사 이유로는 조직/직무적응 실패(49.1%)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2017년은 퇴사가 하나의 사회적 키워드였습니다. 퇴사를 다룬 책들도 많이 나오고, 방송에서도 관련 내용을 주제로 몇 차례 방영되기도 했죠. 퇴사가 트렌드인 것처럼 자극적인 기사들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인사담당자로서 우리 사회에 부는 퇴사 열풍의 원인과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언제 퇴사를 고민해야 하는지 적어 보고자 합니다.
1. 기업의 수명과 개인의 수명
최근 S&P 발표에 의하면 500대 기업의 평균수명이 1970년에는 30년이었으나, 2015에는 15년까지 줄어들었습니다. 국내 기업의 평균수명도 15년 이내로 줄어든 상황입니다. 앞으로 기업의 평균수명은 더욱 줄어들거라 예측됩니다.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변화와 혁신이 일상화된 시점에서 이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대기업도 한방에 훅 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생명공학과 의학의 발달로 개인의 기대수명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5년 타임지에는 지금 태어난 아이의 기대수명은 142세라는 표지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지금 20-30대라면 120세까지 기대수명을 예측한다 해도 무리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평균수명의 증가는 우리가 일해야 하는 기간이 늘어남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20대에 대학교에서 배우고 30대-50대까지 일하며 60대에 퇴직하는 3단계의 삶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80세까지 일해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될 겁니다.
기업의 수명은 줄어들고, 개인이 일해야 하는 기간이 늘어나는 상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다단계의 직업을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IMF 이후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이 많이 사라졌지만 이제는 직장을 여러 번 옮기거나 새로운 직업을 찾는 것이 필수인 상황이 돼버린 것입니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에서 2000년 초반에 태어난 세대)는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퇴사라는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 조직/직무 부적응
앞에서 보다시피 신입사원 퇴사율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조직/직무적응 실패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죠.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기대수명의 증가라는 사회적 원인도 있겠지만 좀 더 좁혀본다면 정보의 비대칭성도 큰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입사한 회사의 기업문화와 지원한 직무에 대해 충분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입사한 거죠.
이는 대학의 문제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언제부터 대학이 취직을 위한 학원이 되어 버렸고, 학생은 대부분의 시간을 스펙 쌓기에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 기업은 과거에 중요시했던 스펙들을 그리 중시하진 않습니다. 기업 현장과 대학의 괴리가 있죠. (이 얘긴 나중에 따로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현상에 휩쓸려 소극적인 대응을 한다면 답이 나오진 않습니다.
조직/직무 부적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적극적인 정보 찾기와 스스로를 돌아보는 탐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요즘처럼 정보가 오픈된 시대는 없습니다. 웬만한 검색으로 해당 기업의 조직문화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시대입니다. 회사를 평가하는 사이트들도 많고 취업카페에도 기업에 대한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어느 정도의 정보는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탐색입니다.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물어봐야만 합니다.
대학생활에서 가장 많이 보내야 할 시간은 스펙 쌓기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고,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직무 전문가와 SNS 친구를 맺는다면 그 직무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직무를 찾는 것 + 회사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최대한 확보한다면 조직/직무에 대한 부적응은 많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3. 언제 퇴사를 고민해야 하는가
어렵게 입사를 했어도 누구나 퇴사를 고민하는 시점은 오게 됩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기업의 수명은 줄어들고 개인이 일해야 하는 기간은 길어지는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한 직장에서 평생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 잦은 이직을 통해 연봉을 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직 시장이란 생태계가 잘 구축되어 있고 고용의 유연성이 좋은 그들과 우리의 환경은 다르다고 봐야 하겠죠.
우리는 언제 '진짜 퇴사'를 고민해야 할까요?
퇴사가 유행인 것처럼 보여 미래에 대한 구체적 설계 없이 무작정 사표부터 쓰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퇴사는 크게 구분하면 1) 피하기 위한 퇴사, 2) 성장하기 위한 퇴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피하기 위한 퇴사의 유형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상사가 마음에 안 든다 (생각보다 같은 상사와 오래 일하지 않습니다)
- 잘 적응하기가 어렵다 (이직이나 창업을 해도 처음은 어렵습니다)
-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 같다 (실력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 회사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개인이 보는 관점과 조직의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피하기 위한 퇴사는 대부분 이직을 하더라도 똑같은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큽니다. 운이 없다면 더욱 안 좋은 상황에 빠지게 될 수 있죠. 그렇게 퇴사가 이어지게 된다면 여러분의 커리어를 망칠 수 있게 됩니다.
(1) 회사의 가치관과 맞지 않을 때
회사의 Mission(존재 이유)과 핵심가치, 철학이 나와 맞지 않는다면 퇴사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치관이 맞지 않는 친구와 오랜 기간 함께할 수는 없죠. 행복한 회사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존과 자포스에는 퇴사 보너스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신규 입사자가 교육기간 중 퇴사할 경우 퇴사 보너스를 주는 제도이죠. 저희 회사 역시 퇴사 보너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규 입사자가 입사 후 일정 기간 회사를 경험해 본 후 1) Join us, 2) Pay for Quit 중 선택하는 기간을 줍니다. 만약 퇴사를 결정하고 Pay for Quit을 선택한 경우 퇴사자에게 회사에서 200만 원의 돈을 지급해 줍니다.
퇴사하는 사람에게 돈까지 지급하는 것이죠.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제도 같지만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치관이 맞지 않는 회사에서 오래 일하게 되면 1) 회사도 불행하고, 2) 함께 일하는 동료도 불행하고, 3) 무엇보다 스스로가 불행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조기에 서로의 가치관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빠르게 이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입사 전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입사 후에도 일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진짜 가치관이 다른 것인지는 잘 판단을 해야겠죠.
감정적이 아니라 냉정히 판단한 후 본질적인 가치관이 크게 다를 경우 이별을 고민해야만 합니다.
(2)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거라 확신할 때
개인적으로 ‘성장’의 이슈가 퇴사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이곳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에 남아 배우는 선택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퇴사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50년을 일해야 하고, 다단계의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커리어의 황금 기간을 성장하지 못하면서 보낸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얼마 전 네이버 창립멤버인 김정호 대표가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하는데 초기 5분 동안 놀고 있다면 게임을 이길 수 있겠는가?"
초기 5분이 회사생활로 보면 우리에겐 황금 커리어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성장하지 못하면서 보낸다면 앞으로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게 됩니다.
성장은 개인의 책임이지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회사의 의무입니다.
도전적인 업무를 부여하고, 새로운 프로젝트 경험의 기회를 주고, 학습과 교육의 장을 만들어 줘야만 하죠.
나를 성장시켜 줄 회사와 리더와 함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럴 경우 회사는 돈 받고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 되게 됩니다.
퇴사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기 위한 이슈도 있을 겁니다.
후배들이 가끔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잘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
저는 이제는 둘 다 할 수 있는 시대라고 말을 합니다.
50년을 일해야 하고, 다단계의 직업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좋아하는 취미를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올 겁니다. 직장인이라면 잘하는 일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면서도 취미 생활을 미래의 직업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충분히 생기게 되는 거죠.
단순히 직무적 성장을 넘어 내가 하고 싶은 최종 목표를 준비하기 위한 성장의 시간도 같이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황금 커리어 기간에 성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만약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퇴사를 고민해야만 하는 거죠.
(3) 심리적 안전감을 크게 훼손받을 때
저는 회사생활에서도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의 궁극적 지향점은 회사를 떠난 시간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도 행복해야 하는 것이죠.
행복한 회사생활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심리적 안전감을 가질 수 있느냐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온전한 특성을 회사에서 그대로 드러내며 일할 수 있느냐입니다.
회사에서의 나, 회사 밖에서의 내가 많이 달라야 한다면 행복한 회사생활을 할 수가 없겠죠.
그러기 위해선 회사에서는 개인이 다양성을 충분히 인정해 주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구축해야만 합니다.
개인의 특성을 인정해 주지 않고 심리적 안전감을 크게 훼손받게 된다면 퇴사를 고민할 필요도 있겠죠.
인격적 모독을 지속적으로 당한다던가, 법적/윤리적 문제가 있다던가, 자신의 생각을 전혀 표현할 수 없는 구조가 이런 케이스이겠죠.
직장인이 퇴사를 하는 근본적 이유는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일 겁니다.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만, 이제 우리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래 살아야만 하고 일해야 하는 기간도 많이 늘어날 것이기에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개인의 입장에서 얘기를 했지만, 사실 회사가 더 많이 변해야 합니다.
기업문화를 비롯해 낡은 제도와 리더십도 많이 바뀌어야 하죠.
밀레니얼 세대들이 입사하고 싶고, 오래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들어야 기업도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이미 왔습니다.
기업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는 다음에 다시 한번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