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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Nov 23. 2020

고해성사

가을 들꽃들에게 상해를 입힌 죄

가을 들꽃들에게 상해를 입힌 죄 용서를 빕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라고 아주 이기적인 핑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들판으로 아침 산책을 다니며 한국 가을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서, 꽃들이 너무 예뻐서 그만 고의적으로 딱 한 송이씩만 꺾어 책에 넣어 말렸습니다. 저는 가을을 좋아합니다. 어릴 적 소녀 시절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가을에는 단풍잎과 은행잎을 주워 책장에 끼워 말려서 책갈피로 이용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29년 만에 보는 한국 가을은 너무 아름다웠고, 소녀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해 보고 싶다는 단순한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렇게 고의적인 상해를 꽃들에게, 들꽃에게 가했습니다. 이 죄를 고합니다.




솔직히 고해성사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해 본 적도 없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해성사라고 제목 부친 것은 죄책감 때문이었다. 이렇게 많은 꽃을 꺾어본 적도 처음이었다. 20여 년 전 어린 아들을 혼내 준 적이 있었다. '식물도 살아 있다. 함부로 꺽지 마라'라고 교육했던 나였는데 이번엔 내가 이렇게 함부로 꽃을 꺾었다.


'나는 괜찮고 남은 안되다'는 그런 식의 비양심적인 사람인가도 반성해 보았다. 할 말이 없었다. 그래 일단 나쁜 짓을 하는 거니까 헛되이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 가을을 담았다. 사진으로 담고 또 담았고 그래서 전화기 속 앨범에는 8천 개가 넘는 사진들이 들어있다. 한국을 이렇게 느긋하게 바라보며 느끼며 즐겼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모든 나무와 들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가을에는 호주 가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코스모스가 좋았고 모든 들꽃들이 정겹게 똑같이 좋았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르면서 만든 내가 느낀 한국의 가을 들판 풍경이다. 콜라주 방식으로 내가 꺾은 아이들을 소중이 담아 보았다.




'가을 들판'


가을 내음 품은 시원한 공기에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걸음마다

가을이 보인다.


크지고 않은 작은 들꽃들이

화려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은

수줍은 몸짓으로 가을을 담는다.


바스락바스락 낙엽들이,

노랑, 빨강 빛 담은 가을 나무들이

알록달록 산에 가을을 입힌다.


은빛 머리 풀어헤친 억새풀 꽃

바람에 홀씨 떠나보내며

찬란한 은빛 서글퍼 가을을 흔든다.


성큼성큼 가을은 지나가고

모퉁이 사이로 삐죽 내민

겨울이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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