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얼굴
29년 전 호주에 도착하고 5일 만에 생긴 일이었다. 공중전화 수화기를 잡은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상대편이 알아듣지 못해 여러 번 발음을 하다 보니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어떻게 발음을 해야 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결국에 떠오른 마지막 노선이 있었다. 스펠링을 하나나하 일일이 다 말해 주었고 결국에는 상대편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통화를 하는 내내 나의 몸속 모든 피는 나의 얼굴로, 귀에 쏠리고 있었다. 최대한 열심히 들으려 귀를 쫑긋 세웠던 그날 얼마 동안 오래 공중전화기를 붙잡고 수화기로 귀를 짓눌렀는지 귀가 얼얼했다. 처음 시도한 전화 통화가 끝나자 나는 잠시 멍해진 상태로 미친 듯이 팔딱이는 심장에 한 손을 얻어서 다독였고, 발갛게 타오른 양쪽 볼을 차갑게 식은 한 손으로 번갈아 만지며 식히고 있었다. 결국엔 전기를 연결했다는 성취감보다는 나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었다. 영어는 내가 읽을 수 있다고 다 전달하고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때 느꼈던 것 같다. 그날 아주 간단한 아파트 주소 한 줄이 나에게 준 교훈이었다.
아파트 계약
임시로 묵을만한 집을 찾으려 호주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아픈 몸을 끌고 시드니 시티를 돌아다니며 여러 곳의 아파트 리셉션이며, REAL ESTATE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그러던 중 며칠 되지 않아서 시티에서 가까운 곳으로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4주 보증금과 2주 집세를 먼저 지불하는 방식으로 부동산에서 6개월 아파트 계약을 쉽게 할 수 있었다.
계약한 아파트는 이사 가기 최소 며칠 전에 전기와 전화를 미리 연결시키면 편리하다고 부동산에서 알려주었다. 그 당시에는 핸드폰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라 나는 핸드폰이 없었다. 하숙집에서 전화를 빌려 쓰면 쉬웠겠지만 하숙집을 떠나는 일로 전화까지 빌려 쓰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아 오고 가며 보았던 조용한 공중전화기를 이용해서 연결시키기로 했다.
공중 전화기 앞에서
체스우드 기차역에 있는 3대의 공중전화 박스 중 맨 안쪽 전화기에 서서 미리 준비해온 서류들을 공중 전화기 옆 작은 선반에 올려놓고 전화기는 잠시 노려보았다. 호주 도착한 지 5일 만에 한국에서도 해 본 적 없는 전기와 전화연결을 호주에서 그것도 공중전화기에서 영어로 가능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집을 구하며 다니는 동안 크게 문제가 없었기에 가능할 것 도 같았지만 가능성의 여부를 떠나서 해야 하는 일이기에 망설일 수가 없었다. 숨 호흡 크고 길게 몇 번 한 다음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었다. 전기가 없으면 난처할 거라는 생각으로 먼저 전기회사에 연락을 했다. 신호가 가고 기다리라는 메시지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은 바빠졌고 긴장감에 심장이 더욱 팔딱였다. 이제 곧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전혀 모르는 분야의 사람과 전화 통화를 영어로 시도할 것이었다.
전화 통화
헬로, 내 이름은 희선 임, 새로 얻은 아파트에 이사 가기 전 전기를 연결하고 싶다는 말로 전화통화가 시작되었다. 이 말은 사전에 미리 준비를 한 것이었다. 처음 시작은 준비한 만큼 좋았다. 그런데 집주소를 말하자 막히기 시작했다. 지명과 아파트 이름을 상대편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몇 번의 시도에도 주소 전달에서 막히자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고,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수화기 잡은 손엔 땀이 배어났고, 얼굴은 순식간에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버벅거리면 상대편은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전화를 끝내고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전화를 다시 한다고 해볼까 하는 생각도 스치고 지나갔다. 삽시간에 나에게 나타난 증상이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한 전화를 끊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포기하면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침착하게 말을 이어가며 일단 상대편에게 양해를 구했다. 호주 도착한 지 5일밖에 안됐으며 나의 영어가 아직은 너무 미숙해서 너에게 많은 귀찮음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전기회사 직원은 괜찮다는 말을 하며 전보다 더욱 친절하게 천천히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 주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의 발음으로는 지명과 아파트 이름을 알아듣지 못하니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스펠링을 불러 주겠다는, 불러줘도 되냐는 말을 했고 직원은 나의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그래서 아파트 주소를 스펠링을 불러 모두 말해주고 결국엔 전기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내가 스펠링을 다 말해주면 전기회사 직원은 그 지명 이름을 정확한 발음으로 나에게 다시 한번 읽어 주었다. 그러며 "너 다른 것은 연결했니? 전화나 가스 연결할 거지?" 하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집 주소를 다시 한번 읽어주며 행운을 빈다고 말까지 하며 전기회사 직원은 통화를 끝냈다.
전기회사 직원의 배려심이 불안했던 나의 마음에 한줄기 감동을 주며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공중전화기를 붙들고 시도한 첫 전화통화와는 달리 두 번째 전화 연결은 전기 직원이 알려준 발음대로 지명을 말하니 너무 쉽게 연결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호주에 살면서 이런 고유명사들의 발음과 억양이 너무 힘들었다. 그냥 내가 읽는 데로 발음을 하면 되지 않는 지명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호주 도착 후 5일 만에 얻은 레슨으로, 그때 혼쭐났던 경험으로 호주에 살면서 지명은 본토 사람들의 발음과 악센트를 그대로 듣고 똑같이 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
전화 공포증이 생기다
호주 도착 5일 만에 공중 전화기를 붙들고 씨름하고 난 후로는 한동안 나는 전화 공포증이 생겼었다. 전화기가 울리면 받기도 전 심장이 쿵쾅거렸고 얼굴이 닳아 올랐었다. 그래서 한동안 전화를 웬만하면 받고 싶지 않았고 받아도 울렁증이 생겨 고생했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공포증을 자주 접하다 보니 차츰 고쳐지기는 했지만 전화기를 받는 순간 떨림은 오래갔다.
시너지 효과
호주 도착하자마자 하숙집 탈출 계획을 세우고, 옮겨갈 아파트 찾아다니며 여러 곳의 부동산 직원들과 아파트 매니저들과 이야기하고, 계약하고, 전기와 전화 연결하는 모든 것들을 혼자 몸으로 뛰며 해결했었는데 '그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지나서도 해 보곤 했었다.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의지 하지 않고 직접 부딪히며 그때마다 배운 영어를, 나의 잘못된 점을 그 자리에서 바로 고치며 배우는 습관을 몸에 익히다 보니 호주에 같이 간 친구보다 나의 영어 실력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시간에 늘었고 호주 생활 적응도 빨리하게 되었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때 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이 호주에 살면서 나의 문제 해결 능력을, 영어 단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너무나 고마운 공중전화의 기억을 지금도 소중히 기억하며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