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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Apr 01. 2021

21살 생일 파티

49살에 파티 플래너가 되어 준비한


아들 생일들


아들을 15개월부터 유치원을 보내면서는 초등학교 7학년 때까지 아들 생일에는 Cheesecake Shop에서 블랙 포레스트 초콜릿 케이크와 패션 푸룻 치즈 케이크 2종류를 사서 유치원으로, 학교로 가져다주었다. 어린 아들 생일에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케이크는 전문가가 만든 것이 더 맛있기에 나는 항상 케이크 전문집 케이크를 사서 교실로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생일 당일에는 아들이 원하는 생일 소원을 들어주었다. 어린 아들의 요구는 다양했다. 테마파크 특히 시월드, 볼링, 승마, 골프, 슬립오버, 수영장을 말했고 장소에 따라 친구를 초대하기도, 우리 둘이서만 하기도 했다.

 

블랙 포레스트, 어린 아들 생일때마다 사갔던 단골 케이크


어릴 적 아들의 생일파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번의 생일이 있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한 기회에 승마를 배우게 되었던 아들은 레슨 때마다 나온 '갈라'라는 이름을 가진 말을 좋아하면서 말이라는 동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해 생일 소원으로 한 시간의 레슨으로는 말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짧으니 하루 종일 말을 타고 싶다고 부탁해왔다. 그래서 아들을 데리고 하루 종일 말을 타고 산행하는 일일 여행을 갔다. 그때 아들은 교육용 말과 실전용 말이 무척 다름을, 힘세고 젊은 넘버 2 말을 만나, 아들은 넘버 2 말을 통재할 수 없어 힘들어했고 결국 경험 많고 온순한 나의 말과 바꿔 타면서 괜찮아졌다. 그날 우리는 가장 오랫동안 말을 탔고 하루 종일 말을 타면 허벅지와 엉덩이가 많이 아프다는 교훈과 승마 레슨과 말을 몰고 생활하는 현실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는 초등학교 7학년 때 생일 파티에서 본 아이들의 체력과 먹성이었다. 친한 아이들 전부를 초대해서 수영장으로 불렀다. 수영장에 올 때 이미 수영복을 입고 오는 아이들은 아침 10시 수영장에 들어오자마자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수영하고 먹고 았다. 물놀이하면 배가 금방 고파진다는 것을 알기에 몇몇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넘치도록 많은 양을 준비해서 갔지만 과자와 케이크까지도 싹 먹어치운 아이들은 오후 3시쯤 되자 다시 배고파했다. 그래서 급하게 운전해 KFC에서 가장 큰 패밀리 세트를 5개 사서 아이들을 먹였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많이 먹을 수 있다는 먹성에 놀랐고 하루 종일 지치지 않고 수영하며 놀 수 있는 체력에도 놀랐던 날이었다. 그리고 집에 오는 동안 옆자리에 앉은 아들에게 의자 눕히고 자라고 했지만 운전하는 엄마 두고 좋은 매너가 아니라며 잠을 참는, 꾸벅꾸벅 쏟아지는 졸음과 열심히 싸우는 졸음 눈을 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무척 귀엽게 기억되는 날이었다.


아들은 고등학생 8학년부터는 친구들을 초대하는 생일 파티는 불필요하다 생각하게 되었고 생일에는 나와 단둘이서 영화를 보거나 미술 전시관이나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외식하는 것으로, 피크닉을 가서 낚시를 하거나 캠핑을 며칠 가는 것으로 가족 시간을 더 많이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이 준비한 아들 생일을 나를 위해 계획 세워 매년 이벤트식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감사의 표시라고 했다. 그렇게 3년 동안 아들 생일을 내가 대접받으며 지내왔다.


18세 생일 아들이 준비해 나를 데려간 첫번째 생일이벤트, 호텔 뷔페로 세프들이 즉석에서 요리해 주었고 아들은 나와 인생 첫 술, 칵테일을 마셨다.



21살 생일 파티는 특별하다.


그러다 아들의 21살 생일이 다가왔고 나에게로 다시 아들 생일 파티를 할 기회가 왔다. 21살 생일 파티는 호주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마지막 생일파티이자 첫 번째 성인식 생일 파티로 간주되며 아주 특별하게 치러졌다. 그 당시 아들은 의대 본과 2학년을 다니고 있으며 거의 끝무렵이라 공부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모든 것을 혼자 계획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들이 초대받아 갔던 21살 생일 파티를 이야기를 참조하며 아들의 21살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마치 파티 플래너 된 것처럼 설레었다. 내가 아들을 위해 준비해주는 마지막 생일 파티이자 성인으로 첫 생일 파티라는 의미가 너무 마음에 와 닿았기에 완벽하게 치러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나는 초대할 인원으로 백오십 명을 잡으며 준비했지만 아들은 절반으로 줄어든 팔십 명이라는 숫자를 내놓았다. 나는 몇백 명이라도 괜찮다며 아들에게 더 많이 초대해도 된다고 했지만 아들은 같은 학년 의대생들만 해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모든 사람들과 다 친하게 지낼 필요도 없고 친구가 될 필요도 없고 엄마에게도 무리하게 하고 싶지 않다며 교류가 있는 친한 사람들만 초대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나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팔십 명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어디에서 할 것인가?


파티 장소 결정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 외 작은 아이디어는 일찌감치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장소와 음식에 대해서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우리 집 바베큐장을 꾸며서 케이터링을 부를까도 생각했었고, 호텔 연회장과 레스토랑도 생각하게 되었다. 장소와 음식과 음료의 가격으로 알아보는 장소마다 천차만별의 금액이 나왔다. 다시 생각을 가다듬으며 내가 아들의 21살 생일파티를 하고자 하는 의도를 먼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바라는 너의 생일 21세 생일 파티는 세미 케쥬얼 파티이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분위기와 격이 있고 친숙하고 아늑한 가족적 분위기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초대된 사람들이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하며 함께 어울리며 가족처럼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라고 말해 주었다. 내 말을 들은 아들도 전적으로 동의하며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들 친구가 구워 오겠다는 케이크 중 하나이고                               프리 파티때 사용할 참이슬 두박스를 구입 완료



장소를 정했다


여러 곳을 멀리서 찾다가 결국에는 가까운 동네에서 마음에 드는 적합한 장소를 찾았다. 적당한 크기의 퓨전 멕시칸 음식을 하는 곳이었고 실내와 실외를 한 공간처럼 사용할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좋았다. 이 곳은 우리 동네이기에 자주 보는 곳이고 몇 번 먹어본 경험도 있고 익숙한 곳이었다. 그곳으로 결정짓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가서 저녁 식사를 하며 레스토랑의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거의 모든 음식을 맛보며 파티 음식 결정까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파티 음식을 정하고 칵테일파티 식으로 음식이 끊이지 않고 계속 여러 종류가 나오게 했으며 처음에는 저녁식사용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무거운 음식부터 차츰 가벼운 술안주 음식이 나올 수 있도록 시간별 음식과 순서를 정했고 오픈 바로는 맥주와 와인으로 했다. 여기서 나는 한국 사람의 기질이 보였다. 잔치에서 음식이 부족한걸 제일 걱정하며 레스토랑 매니저가 놀랄 정도로 아주 풍족하게 음식을 준비시켰다.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기 전  Preparty는 집에서


프리파티는 우리 집 바비큐 장에서 아파트 이웃들까지 초대해서 2시간 전에 시작했고 아들에게 초대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간단한 안주와 맥주와 소주를 준비했다. 이날 아들 생일날에는 고등학교 친구 8명이 참석했고 모두가 도우미를 자처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생일 파티 동안 전문 사진 기사 역을, 내가 부탁한 즉석 사진 기사 역을, 즉석 사진을 앨범에 넣고 방문객들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는 역학 그리고 고등학교 여자 친구 두 명은 술이 많이 먹여질 생일 주인공 아들 챙기는 누나 역할을 자처해왔다. 그렇게 프리파티를 시작으로 아들 생일파티가, 성인 파티가, 술잔치가 열렸다.



메인 생일 파티


프리 파티에 대부분이 다 모여 예약한 캘리포니아 캔티나로 모두 함께 걸어갔다. 고등학교 친구와 대학 친구들과는 이미 잘 알기에 편했고 아들은 의대 본과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주었고 처음 인사를 해보았지만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파티를 하면서 음식은 순서대로 잘 나왔고 모두가 만족했다. 실내외 테이블을 살피며 부족한 점이 있는지, 아들 친구들을 살피며 호스트 역할을 해 나갔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아무런 사건 사고도 생기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게 즐겁게 분위기가 흘러 좋았다. 그리고 이번에 아들 생일에서는 케이크는 살 수가 없었다. 아들 의대 친구들이 케이크를 두 개나 만들어 온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친구들이 만들어온 케이크와 레스토랑에서 준비한 디저트를 먹으며 21살 아들 파티는 훈훈하게 끝이 났다.




성공적인 파티였다.


호주 나이 49살에 아들의 21살 생일 파티를 혼자 계획하고 기획하며 파티 주체자 역할까지 모두 맡아 몇 명이 더 늘어난 총 85명이라는 손님을 치러냈다. 그동안 잘 자라 주고 잘 따라와 준 나의 아들이 성인이 되고 어른된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정성을 다해 모든 준비에 철저하게 했다. 그래서 실수 없고 모자람 없이 파티 시간 내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모두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런 나의 성격과 노력을 아는 아들은 파티 도중 몇 번씩 엄마도 함께 즐기고 있는지 찾아와 확인했다. 처음 준비한 큰 파티였지만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 편안함에 나 조차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아들이 무척 행복해 보이는 날이었다. 아들이 선택한 모든 친구들이 하나같이 좋은 성격에 예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들이 사람 보는 눈이 있구나 싶어 그들을 지켜보며 어울리며 나도 행복했다.


파티 다음날에는 많은 축하 및 감사 문자들이 날아들었다. 나의 첫 번째 파티 플래너 작품이 완벽한 성공을 이룬 것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Mission accomplished. 임무 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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