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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Jan 20. 2021

한국 겨울에 나의 발코니가 그립다.

한국에 살래? 호주에 살래?

나는 지금 동굴 생활을 한다.

한국 겨울은 추워도 너무 춥다. 온몸에 열이 많은 뜨거운 체질을 가지신 85세 엄마는 이 정도 추위야 거뜬하게 견디시니 알뜰 정신과 함께 집안은 엄마가 활동하기 좋은 온도로 맞춰져 있고 그 온도로는 턱없이 부족한 나는 활동을 멈추고 이불로 동굴을 만들어 그 속에서 한 마리 웅녀가 되어 한국의 겨울을 견디고 있다.


"니 땜에 보일러 한 시간 전에 켰다. 밥 무러 온나 " "아차 오늘은 보일러 깜빡했다. 오늘은 안춥다" "양말 신고 그 위에 덧버선 신어라" "엄마가 준 솜 조끼 더 입어라" "내복을 입으면 좋을낀데 와 내복을 안 입고 그라노"

지난봄, 여름, 가을 세 번의 계절에 비교하면 영하로 떨어진 겨울에 활동을 힘들어하다 결국에는 멈춰버린 나를 지켜보며 엄마가 요즘 하시는 걱정 소리들이다.


그전까지 나는 거의 새벽 4시 반 정도에 일어나 아침 스트레칭과 가벼운 몸풀기 운동을 하고 아들과 영상통화를 마치고 나면 일찍 산책을 나갔다. 그런 후 집에 오면 주스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도 했고, 엄마 보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한파로 기온이 뚝 떨어지고부터는 매일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가는 것조차 힘들어하자 엄마의 걱정 소리가 하루 종일 그치질 않고 특히 아침에는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솔직히 엄마도 심심하고 불편하실 것 같다. 한국에 와서는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 옆에서 도움을 주며 살랑거리던 막내딸이 활동을 멈추고 있으니 말이다.


겨울이 그리 춥지 않은 호주에서 29년 동안 살아서 그런지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에는, 나는 이불 동굴 속에 들어앉아 한국과 정반대인 여름 호주 날씨를 떠올리며 햇살과 발코니를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방 2개 욕실 2개짜리 아파트로 줄여서 이사를 갔을 때 나는 집이 무척 좁게 느껴졌었다. 이사를 결정하면서 이미 많은 물건들을 처리하고 버렸음에도 몇 년 동안 답답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 아파트로 결정한 이유는 16층이라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젤 꼭대기 층인 나름 팬트하우스였고 넓고 긴 발코니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단독 주택에 살던 때와는 다르게 16층 발코니에 나가면 시야를 탁 터주는 넓은 경치가 있어 좋았다. 그래서 아파트로 이사 오자마자 나는 발코니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아파트 생활은 시작이 되었고 19년 넘게 이어졌다.



발코니와 함께할 식물들

처음에는 발코니에서 경치를 보고 마음을 힐링시켰고, 주말이나 방학 때는 아들과 함께 발코니에 나와 앉아 식사를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가끔 파티를 하는 여유로운 공간으로 발코니는 충분했었다. 그렇게 한동안 힐링 시간을 가지다가 아파트 친구 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나는, 그들이 발코니에서 키우는 식물들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도 발코니에 식물들을 키워 볼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화분을 두면 발코니가 지저분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처음 맞아들일 식물들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나 자신이 식물에게는 어떤 사람인지를 몰랐기에 첫 식물들은 누구나 잘 키울 수 있는 선인장으로 정했고, 산세베리아와 알로에는 매니저가 실험적으로 키워보라고 주었다. 그리고 집안에서 키우던 행운 대나무가 물을 담은 화병에서 너무 크게 자라 흙으로 옮겨 심어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차츰 식물을 돌보며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발코니에는 11시쯤부터 햇살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해서 저녁노을까지, 나무들이 좋아하는 햇살만큼은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쪼그만 복숭아 크기였던 선인장들은 참외, 수박 정도의 크기로 커져 몇 번의 분갈이를 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처음 몇 포기였던 산세베리아와 행운 대나무들은 흙에 심어 두니 뿌리로 스스로 번식해서 식구들을 화분이 터질 정도로 많이 불려주었다. 그 뒤 새로 들인 제이드(Money) 나무는 친구 집에서 가지 하나 꺾어와 심었는데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멋지게 자라 주었다. 그 후 제이드를 가지 꺾꽂이하여 몇 개의 화분을 더 만들었다. 산세베리아는 꽃대가 올라오면 꽃을 피웠고 이른 새벽에 나가보면 꽃몽우리마다 꽃물이 조롱조롱 달려 있었다. 그 꽃물이 달콤해 작은 스푼 하나 들고나가 꽃물을 받아먹으며 아들과 즐거워했었다. 산세베리아와 행운 대나무는 쑥쑥 자라 발코니 천장에 닿아 멋진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다.





화분에 농사를 짓다

이렇게 관리하기 쉬운 식물로 화분을 늘여가다 어느 해 엄마가 호주에 오셨다. "발코니에 먹을 수 있는 채소도 심어라. 먹지도 못하는 건 마~ 에지간히 됐다"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엄마를 모시고 함께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사서 심기 시작했다. 토마토, 고추, 가지, 피망을 심었고 각종 상추와 허브를 심었다. 나중에 레몬과 패션 푸루트 나무도 심었다.


그 후부터 2-3년 간격으로 엄마가 호주에 오실 때면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채소들을 미리 발코니에 최대한 많이 심어 두었다. 호주에 오시면 최소 3개월을 계시는 엄마에게 소일거리를 줄 생각이기도 했지만 작은 땅을 일궈 채소를 직접 키워 먹고 싶어 하시는 귀농의 꿈을 호주에 계실 때도 조금 느낄 수 있게 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호주에 오시면 엄마도 나처럼 발코니 경치를, 식물들을 사랑하며 적극 돌보시게 되었다.




복병이 숨어 있었다.

식물들을 키우다 보니 더 이상 모종을 사서 심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씨를 받아 봄에 뿌리고 싹을 틔우면 잠시 기다렸다 서로 간의 간격을 넓혀 한번 옮겨주면 그 자리에서 튼튼하게 자라 우리에게 잎과 꽃과 열매를 내어 주었다. 이 과정들을 여러 차례 지켜보면서 식물을 키운다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식물들도 똑같이 보살핌, 기다림, 서로 간의 간격 등을 유지해 주어야지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식물에 더욱 애정을 쏟으며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무섭게 하는 복병들이 숨어 있었다. 벌레들이었다. 벌레를 워낙 무서워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고추나무에 다닥다닥 붙은 작은 벌레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고추나무는 물론이고 그 화분까지 통째 비닐에 싸서 아파트 쓰레기 장으로 가며 매니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지기 할아버지가 맨손으로 벌레를 쓱쓱 훑어 없애 주었고 그때 나의 놀란 모습과 행동을 보고 매니저와 나이 많은 친구들은 오랫동안 나를 겁쟁이라 비웃으며 놀렸다.


그렇게 식물을 키우면서 차츰 곤충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게 되었다. 특히 나비를 무서워한 나는 나비를 자주 그리면서 공포심을 줄였고 그러면서 날아드는 곤충들, 크리스마스 딱정벌레, 무당벌레, 잠자리 등에는 놀란 가슴은 붙잡고 그들의 무늬와 색에 관심을 두려고 노력하자 공포심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기어 다니는 벌레에는 공포심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볼 때마다 놀라고 심장이 뛰고 온몸이 싸늘해졌다. 그럴 때면 계속 키울 것인가 말 것인가를 심각하게 갈등하게 되었다. 이 갈등은 여전히 지금까지 진행 중이지만 식물들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아들의 칭찬

어느 날 아들은 "엄마는 나, 아이들, 바디 심지어 식물들까지 무엇이든 아주 잘 키우는 마법의 손과 마음이 있어요." 라며 아들이 나를 칭찬해 주었다. 아들의 눈에는 나라는 사람, 엄마가 그렇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 당시 발코니에는 많은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었고 아들도, 강아지 바디도 잘 자라주고 있었다. 특히 강아지 바디까지 영리하게 잘 자라니 아들 친구 엄마들은 나의 강아지 바디도 곧 말을 할 거라며 부러움에 비꼬기도 하며 감정들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초록이들 중 효자는 부추

아들과 강아지는 하나뿐이니 비교할 수 없고 둘 다 엄마 바라기들이다. 하지만 초록이들은 여러 종류를 키웠고 심으면 잘 자라 주었다. 그런데도 뽑자면 나에게 가장 효자인 녀석은 부추라고 말하고 싶다. 부추는 이탈리아 출신 매니저가 몇 포기를 나눠줘 처음 키우게 되었고 무리로 키워야 잘 자란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는 씨를 더 사서 추가로 심었다. 그렇게 키우면서 꽃이 피면 씨를 받아 옆에 다시 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한아름 되는 큰 화분에 부추만 가득 키우게 되었다.


부추는 나의 발코니 정원의 역사이기도 하고 15살도 넘는 나이 먹은 부추들이 계속 자라주었다. 부추는 뿌리를 남겨두고 잘라먹으면 싱싱하게 다시 자라기에 부추가 나의 야채 중에서는 제일 효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일 년 동안 수차례 짧게 이발시켜 먹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싱싱하게 다시 자라주기 때문이다. 엄마가 호주에 오시면 가장 탐내 하는 화분이 바로 나의 부추 화분이다.


부추꽃




강아지 바디도 발코니를 즐긴다.

식물들을 키우면서 발코니에서의 시간은 점점 더 늘어갔고 나만의 발코니 힐링 방법도 다양해졌다. 내가 발코니에 많이 있다 보니 우리 집 강아지 바디도 발코니를 사랑하게 되었다. 바디를 키우면서는 안전을 위해 발코니 난간 아랫부분을 닭장 만드는 철사로 공간을 좁게 만들었다. 우리 집 강아지 바디는 매일 아침 최고의 경치를 보며 아침밥을 먹는다. 그리고 발코니 젤 끝쪽 일정한 장소에서 작은 볼일을 보게 했고 내가 발코니에 있으면 강아지 바디도 항상 발코니에 나와 내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서도 자주 발코니에 나가 햇살을 쬐고 경치를 구경하고 새를 쫓으러 들락거렸다.


그러다 가끔 나와 화분 사이로 끼어 들어와서 나의 일손을 멈추기도 했다. 이럴 때면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만 하세요'라는 걱정하는 몸짓이라 생각하고 가드닝을 멈추고 바디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발코니에 식물들을 키우니 다양한 친구들이 찾아왔다.

나는 아침마다 발코니 물청소를 하면서 식물들에게 물을 줬다. 식물들을 다양하게 키우다 보니 발코니를 찾아오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나의 발코니에는 항상 롤리킷이라는 새가 수시로 찾아왔었지만 식물들을 다양하게 키우다 보니 여러 종류의 새들이 찾아들었다. Blus-faced Honeyeater는 산세베리아 꽃물을 좋아해서 가끔 찾아왔고 Cockatoo는 아주 가끔 찾아오는데 방울토마토와 피망을 좋아했고 이상하게 흰색 앵무새는 사람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자연식 비스킷을 하나 건네주면 겁내지 않고 주둥이로 받아서 발로 잡고 비스킷을 먹고는 또 하나 더 주길 기다리고, 두 개를 먹고 나면 날아가버렸다. 그 외 Laughing Kookaburra, Magpie, Crow and Swallow들이 내가 발코니에서 만나본 새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발코니에 앉는 순간 오래 머물지 못한다. 질투심 많은 우리 집 강아지 바디가 짖지도 않고 쫒아 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강아지 바디는 몸집이 큰 새들은 난간에 앉는 순간 쫒아 버리지만 가끔 작은 새들은 지켜보기도 했다. 그리고 새들은 익은 토마토를 먼저 맛보기도 하고 빨갛게 익은 고추를 먼저 따 먹기도 했다.


파란 새도우를 눈 위에 가득 칠한 꿀 먹는 새,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 일병,                                  시도 때도 없이 찾아



내가 키운 여러 종류의 식물들

과실나무를 키워보고 싶어서 제일 작은 패션 푸루트와 레몬 나무를 각각 한 그루씩 사서 심었지만 화분에 심는 과실나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패션 푸르트 나무는 가지가 덩굴처럼 쑥쑥 자라나서 발코니 난간에 감아주며 난간을 패션푸르트 가지로 쭉 감쌀 수가 있었다. 한때는 패션 푸루트 덩굴로 발코니가 마치 정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패션푸르트를 키우면서 꽃을 보게 되자 너무 정교하고 예뻤다. 열매는 슈퍼에서 사서 먹는 것과는 다르게 충분히 다 익은 걸 먹어서 그런지 신맛은 거의 없었고 단맛에 그 과일 특유의 풍요로운 맛이 가득했다. 그리고 친구와 똑같이 한 그루씩 산 레몬 나무는 나는 많은 열매를 얻었지만 친구는 레몬 나무에서 열매를 얻지 못했다. 그 친구가 나에게 Green thumb(그린 썸)을 가진 즉 원예를 잘하는 사람이라 했다.


토마토와 고추를 처음 키우면서 나는 새들과의 관계가 잠시 소원해졌다. 고추나 토마토가 완전히 익어 빨갛게 되면 새가 먼저 먹어 버렸기 때문에 정성을 쏟고 키운 나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매일매일 들여다보며 키웠기에 처음에는 새들이 얼마나 밉던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나둘씩 줄줄이 익기 시작하자 조바심 내던 욕심도 웃으며 내려놓게 되었다. 다행스럽게 늦게나마 철이 들어서 새들과 나눠먹는 미덕도 가지게 되었다.





해바라기 도전기

우리 집 발코니에 처음 도전한 꽃나무는 해바라기였다. 발코니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오직 해바라기만이 두 번의 실망이 들어 실패이기도 하고 성공이기도 한 우픈 마음이 들었던 경험이었다.


해바라기도 씨를 사서 화분에 심었다. 기대 이상으로 해바라기는 쑥쑥 잘 자라주어 어느 순간 나의 키보다 커져서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지지대를 세워줘야 했었다. 하지만 이미 많이 자란 해바라기에 지지대를 꽂으면 뿌리가 상할까 싶어 벽 쪽에 있던 화분을 난간 쪽으로 화분을 옮겨가서 난간을 지지대로 이용해 줄기를 단단히 묶어 바람에도 꺾이지 않도록 고정시켜 키웠다.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었고 첫 번째 실망감을 준 원인이었다. 꽃이 피기 시작했고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줄 해바라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해바라기들의 두통수였다. 잘 크고 있는 해바라기가 지지대에 뿌리를 상할까 봐 그걸 걱정하느라 벽에 세워두었던 처음 이유를 멍청하게 잊은 것이었다. 완전 나의 실수였다. 해바라기가 왜 해바라기인지를 잊고 작은 것에 신경 쓰느라 진짜 중요한 뜻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꽃을 보려면 16층 난간으로 몸을 내밀어 위험을 감소해야 했다. 사소한 것에 연연하다 큰 그림을 망쳐버린 딱 그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는 꽃이 다 시들자 해바라기 씨를 기대하며 받은 충격이었다. 해바라기는 아들 키보다 크게 자랐고 나의 얼굴보다 더 큰 꽃들이 꼭대기에 피었다. 그리고 그 가지 사이사이에 작은 해바라기 꽃들도 피어났다. 그렇게 해바라기는 찬란하게 꽃을 피워줬고 너무 좋았지만 마지막 씨를 거두는 순간 너무 황당했다. 해바라기 씨는 하나도 차지 않고 모두, 전부, 싹, 다 텅텅 비어 있었다. 화분에서 해바라기는 꽃이 폈지만 열매까지는 맺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씨가 목적이었다면 거기에 해당하는 많은 비료와 영양분을 듬뿍 공급해줬어야 한다는 사실도 그때 깨달았다.


식물도 그 종류와 사이즈에 따라 살 수 있는 공간이, 장소가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Dwarf(작은) 해바라기를 키웠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전혀 생각지 않고 땅에서 자라야 하는 해바라기 씨를 화분에 심었던 것이었다.




보라색 꽃을 피우는 배초향 (방아)

나는 허브를 좋아하기에 민트, 코리엔더, 바질, 로즈메리, 레몬밤, 세이지, 타임, 딜, 갈릭 차이브( 부추), 오레가노, 파슬리를 키웠다. 그러면서 이들을 사용해야 할 음식들에 대해서도 할머니들을 통해 들으며 배웠다.


그러다 어느 해인가 엄마가 방아 씨를 몇 알 호주머니에 넣어 오셨다. 세관이 워낙 엄격하기에 혹시나 하면서 호주머니에 몇 알 그냥 넣어 가져와서 호주머니를 털어 주셨다. 정말 몇 알 되지 않았지만 흙에 심었다. 3-4포기 정도 자란 것 같다. 처음 방아를 키우면서 먹는 허브에도 이렇게 예쁜 꽃이 피는 줄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방아는 잎도 꽃도 다 먹을 수 있는 너무나 훌륭한 허브란 것을 알게 되었다. 보라색 방아꽃이 활짝 피어날 때는 장미 정원도 부럽지 않았다. 그 후 소중하게 씨를 받아 두며 항상 방아를 키우게 되었다. 방아잎은 경상도 쪽에서는 강된장 찌게에도 넣고 방아잎과 매운 고추만 넣어서 방아 향이 가득한 부침개로도 먹었다. 그리고 꽃은 화전처럼 구워서도, 튀겨서도 먹는데 그 맛은 뭐라고 표현하기가 아주 힘든 오묘한 맛의 매력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 강아지 바디에게도 멋진 사진을 남기게 해 주었다.




키우며 깨닫는 행복

발코니에서 키운 채소들은 나에게 안전한 식재료를 많이 제공해 주었다. 물만 주고 키운 채소들을 여러 나라, 여러 가지 음식으로 만들면서 나의 요리 솜씨는 일취월장해졌고, 음식들은 이웃들과 나눌 수 있었고, 씨를 심어 키우다 보니 주변 친구들에게 작은 화분에 담아 많이 입양을 보내기도 했다.


작년 한국 나오기 전에 친구 루이스의 딸 도미가 박사학위를 위한 일차 논문을 출판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 중에 가정집에서 식물을 키워 먹는 것도, 한 사람이 한 식물을 키우는 것도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으면서 나는 이미 실천하고 있었고 주변에도 널리 퍼트렸기에 나 자신이 왠지 환경에 도움되는 일을 한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어릴 적부터 젊어서는 배우고 공부하면서 실력을 쌓았던 시기였지만 그 후로 나는 무언가를 직접 키우면서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한 것 같다. 아들 하나,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면서 그리고 식물들을 키우면서 그들이 자라고 성장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도움을 주면서 나는 그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한 것 같다.


뭔가를 키운다는 것 자체는 책임감이 무겁기에 쉽게 선택하기 어렵지만 그 책임을 감당함으로써 찾아오는 배움과 깨달음은 내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 살래? 호주에 살래?

이렇게 나의 발코니 생각을 여기까지 하면서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졌다. 한국에 살래? 호주에 살래? 한국에서 지내면서 틈틈이 나는 이 질문을 많이 던지게 되었다. 이번에 질문의 대답은 나는 호주에 살래로 정했다. 한국은 추워도 너무 춥다. 아니 엄마 집이 너무 춥다. 엄마 집을 나가면 괜찮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노모가 한국에서 내가 다른 곳에 사는 걸 용납하지 않으시기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호주에 살래로 정했다.


민트는 월남쌈과 음료 만들기에                                      방아꽃의 보라색을 살릴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부추와 각족 야채 겉절이 코리언 바베큐를 위해 그리고 토마토 이용                                                                
시피니치와                                나의 방울이 토마토들                                                    
스피니치외 비트잎                                                                                        토마토
피망들,                                                                                             부추전
cos lettuce,                                           패션푸룻과 레몬, 블르베리 넣고 만든 슬러시,    아들이 뚱뚱하게 만든 월남쌈
덩어리 내가 키운 토마토 위에 모짜렐라치즈와 민트와 바질,              마늘빵위에 올린 파아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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