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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aengwriting Feb 10. 2021

12학년 포멀 파티(Formal Party)

아이 하나 키운 이야기

포멀 파티


12학년이 되면 포멀 파티와 졸업식이라는 큰 행사가 있어 큰 시험을 앞둔 아이들도 이 두 가지 행사로 설렘과 기대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졸업식과 포멀 파티는 오직 졸업생을 위한 졸업생에 의한 졸업생들의 파티였다. 이 두 가지 행사는 12학년 전부터 준비를 하고 12학년이 되면 설렘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준비를 해야 하는 것 같았다. 12학년의 어려운 공부와 시험 틈틈이 오아시스 같은 청량한 설렘으로 아이들에게 활력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옆에서 엄마인 나도 설레며 기대했던 두 가지 행사였다.



제일 먼저 운동으로 몸 관리에 들어갔다.

아들은 9학년 때까지 사춘기가 오지 않았고 어린 목소리에 중간 키와 통통했던 몸매를 유지하다 10학년이 되자 통통한 살들이 키로 힘을 실어주며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들은 일일 계획표에 운동을 넣어 본격적으로 12학년을 위한 체력 단련과 포멀 파티를 위한 몸 관리에 돌입했다. 집에서 3일 운동하고 하루 쉬는 방식으로 일주일에 6일, 저녁 8시 반 전후로 잠시 분위기 전환 겸 운동을 시작했다. 아들의 운동은 몸풀기 줄넘기 10분, 인새니티 워크아웃 강도 높은 운동 이삼십 분, 스트레칭 10분으로 마무리하며 한 시간을 넘지 않은 선에서 끝냈다. 이 운동은 의대를 마칠 때까지 계속 9년 넘게 지속했다.


11학년 때에는 친구들과 방학 때 헬스장을 다니면서 근육을 키웠고 12학년이 되자 아들은 학생 회장으로 여러 가지 학교 미팅으로 수업을 빠지는 경우가 많아 따라잡을 것들이 많아지자 헬스장은 그만두었지만 집에서 하는 운동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획대로 철저히 했다.



포멀 파트너 정하기


12학년이 되고 포멀이 다행히 모든 시험이 끝난 10월로 정해졌다. 포멀 날짜가 정해졌고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이성 파트너를 구해야 했다. 물론 이성 파트너를 구하지 않고 동성들끼리 갈 수도 있지만 이왕 파티에 참석할 거면 아들도 나도 이성 파트너와 함께 파티에 참석하길 원했다. 아들은 그 당시 정해진 여자 친구도 없었을뿐더러 바쁜 여러 가지 학교 일정을 소화하느라 파트너 신청이 좀 늦어졌다. 그래서인지 몇 명의 여학생들이 먼저 신청을 해왔으나 정중히 거절하고 아들은 초등학교부터 친구였던 아보라에게 신청을 했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허락을 받았다.



두 번째 자동차와 운전기사(Chauffeur) 예약하기


이성 파트너가 정해지면 남자 쪽에서는 포멀 파티에 타고 갈 차를 구해야 했다. 차만 렌트해서 직접 운전해 갈 수도 있고 운전기사(chauffeur)까지 두고 갈 수도 있었다. 차종은 여자 파트너의 의견을 많이 수렴해서 정하는 것이 예의였고 아들은 클래식한 방법으로 운전기사까지 구해 포멀 파티장으로 가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돈이 들어갔고 그래서 나는 한국 엄마의 표시를 냈다. 모든 걸 다 해주려 했지만 아들이 제동을 걸어왔다. 호주에서는 포멀 때 차를 빌리고 파트너에게 꽃팔찌를 선물해 줄 때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은 자신이 모아둔 돈으로 모든 것을 계산했다.



Corsage(생화로 만든 팔찌) 주문하기


아들은 파트너의 꽃팔찌를 주문할 때 나의 의견을 물어왔다. 어떤 꽃이 아보라에게 어울릴지 같이 꽃집에 가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포멀 파티 때 여자 파트너에게 줄 생화로 만든 팔찌(Corsage)를 프롬 날짜에 맞춰 예약해서 프롬 당일 프리 파티 때 가지고 가서 여자 파트너 팔목에 채워주어야 했다. 우리는 흰색 Orchid flower (난초꽃)로 정했고 아들의 정장에 꽂을 꽃도 함께 같은 꽃으로 정해서 주문을 했다.



포멀 파티의 주인공은 여자아이들이었다.


포멀 파티를 준비하다 보니 주인공은 남자아이들 보다는 여자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잠시 나의 아들이 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털어놓아 아들이 크게  웃으며 엄마의 부탁은 다 들어줄 수 있지만 그것만은 자신도 어쩔 수 없다며 크게 웃었다. 포멀 파티복 가게에 갔을 때 남자 옷은 솔직히 재미없고 힘든 쇼핑이었지만 거기에 비해 여자아이들 옷은 너무 예쁘고 화려하고 다양해서 선택 폭이 넓고 많았기에 부러웠다.


파트너가 있을 경우 서로의 옷을 비슷한 색으로 맞추기도 하고 아니면 남자 옷이 여자의 드레스를 돋보이게 하는 색으로 하는 것이 매너라 생각했기에 아들은 아보라가 입을 드레스 색을 먼저 알아왔고 그래서 우리는 검은색, 올 블랙으로 아보라의 드레스가 돋보이게 하기로 했다. 물론 검은색이 아들에게도 잘 어울리기도 했다. 서로의 옷이 정해지자 어느 날 아들의 파트너인 아보라가 넥타이를 선물로 먼저 보내왔다. 흔하진 않지만 꽃팔찌를 선물 받을 여자 파트너가 남자 파트너에게 선물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들의 파트너 아보라가 그랬다.



포멀 정장


포멀 파티용 정장은 격식을 갖춘 양복 정장이라 일반 양복과는 달리 활용도가 떨어져 직접 구매보다는 대여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여를 찾아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집을 다니다 어느 포멀 양복집에서 주인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다 의대를 갈 예정이면 의대에서는 포멀 파티가 일 년에 최소 두 번 이상은 있다고 알려주면서 빌리지 말고 아들의 경우에는 정장을 맞추는 것이 났다고 하셨다. 그 말에 나는 아들에게 인생 첫 포멀 양복을 선물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은 처음에는 비싸다는 이유로, 자신이 부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반대했지만 옷 한번 빌려 입고 돌려주면서 그 돈을 없애는 것보다는 두 번 빌려 입을 돈 정도로 하나는 맞춰 가지면 몇 년 입을 수 있으니 이번에 하나 장만하자고 설득하니 결국에는 나의 의견에 동의하며 고맙다 했다. 그렇게 아들은 검정 포멀 정장을 맞췄고 거기에 맞춰 정장 와이셔츠와 검정 구두까지 구입하면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



Pre Party (프리 파티)


포멀 파티 시작하기 전에 프리 파티를 먼저 한다는 초대장을 받고 잠시 충격을 받았다. 대학을 들어가고 술을 마실 나이가 되면 젊은 사람들에게 프리 파티가 많이 있다고 했다. 어떤 종류의 파티인가에 따라 달라지지만 주 파티에 술이 포함되지 않을 경우에는 술값이 비싸기에 프리 파티를 해서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술을 먼저 마시고 주 파티로 함께 옮겨가서 비싼 술을 적게 사서 마시며 돈을 아낀다는 솔직히 귀여운 이유였기에 재미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대학을 들어가고 보니 프리파티는 그냥 친목도모라는 의미가 더욱 컸다. 모든 파티 전에 프리파티를 했었던 것 같았다.


포멀 파티 전에 프리 파티는 여자 파트너와 그녀의 절친들끼리 장소를 정해서 거기에 남자 파트너들과 부모들을 초청해서 간단한 칵테일파티 수준으로 준비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들의 파트너 아보라의 집에서 프리파티를 오픈해서 참석하게 되었고 프리 파티를 하며 한참을 지내고 각자 포멀 파티장으로 가기 전에 사진 촬영할 장소로 옮겨갔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예약한 차가 도착해서 아이들을 포멀 파티가 있는 컨벤션 센터로 데리고 갔다.




포멀 파티장으로

 

포멀 파티장인 컨벤션 센터는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12학년을 둔 학부모, 친척, 친구, 학교 선생님들과 후배들이었다. 포멀 파티장 안에는 12학년들과 몇 명의 준비를 담당하는 선생을 제외하고는 들어갈 수 없었기에 파티장 밖인 특히 포멀 파티에서 제일 하이라이트인 파티장에 도착하는 차들과 아이들의 예쁘게 차려입은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차례차례 한 대씩 들어오는 차량은 정말 다양해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멋진 구경거리를 주었고 특히 차에서 내리는 여자아이들의 화려하고 멋진 드레스 입은 모습은 역시 그날의 최고 구경거리가 되었다. 파티를 참석하는 졸업생 12학년들의 차가 한 대씩 도착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환호성과 박수로 컨벤션 센터는 물론 주변까지 축제 분위기로 2시간 이상 후끈 달아올랐다.




포멀 파티장 안에서


포멀 파티장 안에는 12학년들만 들어갔다. 파티장 앞에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시간에 맞춰 파티장 안으로 아이들이 입장하면 부모들과 그 외 관계없는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나와 몇몇 친구 엄마들은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아이들 이야기로 흥분을 더 털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12학년들은 안으로 들어가면 세 가지 코스 저녁식사를 하고 본격적인 파티를 4시간 정도 했다. 아들은 학생회장이라 파티를 끌어가는 주체였기에 바빴고 특히 친구들 요청으로 천 번도 넘게 사진 모델이 되었다고 했다.





After Party (연장 파티)


포멀 파티가 끝이 나면 연장 파티를 학교 임원 측에서 한 군데 열었고 모든 학생들이 초대되었다. 그 외에도 몇 군데 개인 파티가 열려 초대를 받았지만 아들은 따로 컨벤션 센터 근처 호텔에서 친한 친구들 중 술을 마시지 못하는 아이들과 일박을 하며 놀다 오기로 했다. 그 당시 아들은 막 17세가 되어 다른 친구들보다 한 살에서 몇 달 어린 편에 속했다. 아들은 17세가 되자마자 혼자 할 수 있는 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술은 만 18세 이상이 되어야 했기에 일 년 이상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술 마시지 않는 친구들끼리 모여 아프터 파티를 하기로 했고 주요 파티가 끝나고 늦은 시간 남자아이들이 시내를 무리 지어 걸어서 이동하는 것보다 차를 이용해 옮겨 가는 것이 안전하기에 아들이 차를 이용할 수 있게 나는 컨벤션 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었다. 그날 같이 갈 친구 엄마들이 아들 옷을 챙겨 와서 트렁크에 넣어 주며 몇 번 주차장을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호주에서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보니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몇 번 아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포멀 파티였다. 졸업을 앞둔 12학년 아들이, 아이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모습들이 부러웠고 부모들도 함께 축하해주며 응원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들은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며 프리 파티, 아프터 파티, 차, 선물 등 거의 모든 부분을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려 했다.


호주 학교는 학교 임원으로 뽑힌 아이들이 직접 운영에 관여하며 학교의 모든 일과 행사는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의 행사가 되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호주에서는 고등학교 10학년, 15살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고 10학년을 마치면 학교를 그만두고 인턴쉽으로 기술을 배우러 나가는 아이들도 있고 계속 공부해서 12학년 졸업을 하고 대학을 가는 아이들도 있다.


호주의 많은 부모들은 여전히 자식에게 대학을 꼭 가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아이들 결정에 따른다. 10학년을 마치고 나면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나이라 호주에서는 부모들이 자식에게 공부보다는 아이의 자립심을 길러 주는 것이 부모에게 주어진 최우선의 목표이자 책임이라 생각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호주 아이들은, 나의 아들은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홀로서기가 가능해졌고 이렇게 한 아이는 차츰 한 사람, 성인으로 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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