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두 번째 일요일
호주에는 엄마의 날, 아빠의 날이 따로 있다.
호주에 살면서 처음에는 엄마의 날과 아빠의 날이 따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5월이 되면 한국에서 보내던 5월 8일 어버이 날을 챙기며 부모님들에게, 한국으로 전화를 드렸다.
그렇게 6년 동안은 호주에 살면서도 한국의 공휴일을 챙기며 지내다가 15개월 된 아들이 처음으로 유치원을 다니면서 맞은 첫 번째 엄마의 날 아들의 카드를 받게 되면서 엄마의 날과 아빠의 날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아들에게 받은 엄마의 카드에는 고사리 같은 어린 아들의 손바닥이 찍혀 있었고 아무 의미 없는 색연필 낙서가 전부였지만 유치원 선생님의 Happy Mother's Day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이것이 아들 이름으로 처음 받아보는 엄마의 날 카드였고 엄마의 날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첫 번째 해였다. 그렇게 시작해서 매년 오월 두 번째 일요일에는 아들로부터 어김없이 엄마의 날 카드를 지금까지 받고 있다. 아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들에게서 엄마의 날 카드를 계속 받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엄마의 날, 아빠의 날을 따로 보내면서 이렇게 따로 되어 있는 날이 호주에 살면서 좋은 점 중에 하나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5월 8일 어버이날이 2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항상 눈에 밟혀 마냥 행복한 날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호주처럼 엄마의 날, 아빠의 날이 한국에도 따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그러면 그날에는 오직 한 분을 위해 온전히 감사하고 기뻐하는 날이 되거나 그분만을 추억하며 감사한 날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엄마의 날은 더욱 특별히 행복해진다.
2022년 5월 8일, 신기하게 한국의 어버이날과 똑같은 날이 이번에는 5월 두 번째 일요일인 엄마의 날이 되었다. 나는 아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행복한 엄마와 아들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다 문득 행복감이 넘쳐 이 세상에서 나만큼 사랑받는 엄마는 흔치 않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의대를 졸업하면서 예쁜 파트너와 함께 독립해서 떨어져 살면서도, 바쁘다는 의사 생활을 3년째 하면서도 한결같이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출퇴근 길에 연락해오며 자신의 일상을 말해주며 엄마의 하루도 살갑게 챙겨주는 아들이다. 쉬는 날 중 최소 하루는 꼭 엄마를 만나 신나게 놀러 다니고 쇼핑도 함께 해주며 만나면 더 넓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며 진정으로 엄마와의 시간을 사랑하는 아들이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아들이 필요하다고만 하면 시간, 장소 불문하고 무조건 달려가서 엄마 옆을 지킬 거라고 말해주는 든든한 아들이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도 명예도 아닌 가족이고 엄마라고 말하는 아들이다. 이렇게 항상 엄마에게 진심인 아들인데도 엄마의 날은 특별히 더 행복해지는 날이 된다.
아마도 아들이 이 특별한 날을 위해 미리미리 계획하고 준비해서 만들어주는 몇 가지 이벤트가 합쳐져서 하루 종일 아침부터 밤까지 행복 행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은 엄마의 날과 나의 생일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일정을 조정해서 미리 시간을 비워 나를 챙긴다.
그래서 올해 2022년 5월 두 번째 일요일 엄마의 날에도 나는 많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글로 보여주는 아들의 마음도 참 좋다.
15개월 된 어린 아들로부터 받기 시작된 편지는 최소 일 년에 3번 정도 엄마의 날과 생일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받아오고 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손편지를 써주다가 초등학교 중반부터는 컴퓨터와 노트북을 쓰게 되면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컴퓨터로 사진들도 넣고 편집해서 멋진 프린터 편지를 주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는 다시 예쁜 카드를 사서 정성껏 써 내려간 아들의 손편지를 다시 받게 되었다. 아들은 이런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편지뿐만 아니라 종종 긴 문자를 보내오기도 하고 시도 써 주었다.
2022년 이번 엄마의 날에도 아들은 여전히 손편지로 자신의 감정을 다시 한번 글로 보여주었다. 나를 자신의 영웅이라 쓰기 시작한 이번 글에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아들이 나에 대한 마음이 너무 잘 표현되어 감동받아 눈물도 찔끔 흘렸다. 그러다 아들의 글씨체가 눈에 들어와 웃음도 터트렸다. 제멋대로 날아가려는 글씨체를 겨우겨우 붙들어 꾹꾹 눌러 적은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살다 보니 의사들이 적은 노트는 정말 알아보기 힘들게 갈겨쓰는 것 같았는데 언젠가는 아들 글씨체도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 엄마의 날 아들이 준비해준 것
26년 동안 내가 보낸 엄마의 날은 아주 다양했다. 아들은 항상 자신의 형편에 맞게 자신이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날이었기에 항상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아들은 손편지와 함께 포옹부터 시작해서 아주 작은 선물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고 점점 커가면서는 아들이 만들어준 엄마의 날 이벤트는 차츰 다양해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해 처음으로 아들은 혼자 부엌에 들어가서 나를 위해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만들어주었다. 디저트 초콜릿 무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서서히 요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간단한 점심 식사는 물론 기술이 필요한 저녁 식사 요리까지 가능해졌다.
아들은 어떤 방법이든 계속 발전하며 특별한 시간을 위해 미리 계획해서 정성스럽게 준비하기에 아들이 만들어주는 엄마의 날은 항상 사랑이 넘쳐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올해 5월 1일이 일요일이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한 아들은 미리 부킹 했던 이벤트 날짜를 일주일 앞으로 당기는 해프닝도 생겼다고 한다. 솔직히 나도 아들과 같은 생각을 했었기에 아들의 해프닝을 들으며 같이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아들과 나에게는 둘이서 함께 즐기는 취미생활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마블 영화를 꼭 챙겨보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큰 스크린에서 봐야지만 재미있는 영화들을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은 그런 영화들이나 마블 영화는 친구들과 함께 보러 가지 않고 엄마인 나와 꼭 함께 보는 영화로 남겨두었다.
이번 엄마의 날에 딱 맞춰서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가 나왔다. 그래서 이번 엄마의 날의 준비는 너무 쉬웠고 그래서 엄마가 먹고 싶은 음식으로 저녁을 직접 만들어 주겠다고 아들이 제안하며 엄마의 날 계획을 알려주었다.
엄마의 날 아침부터 우리는 만나서 멋진 카페에서 커피와 아침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었고 골드 클래스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영화를 보며 미리 주문한 음식들과 맥주도 함께 즐겼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싱싱한 회와 새우를 사서 집으로 와서 아들이 만들어주는 샐러드와 밥을 맛있게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자식이 많은 것도, 딸 가진 엄마도 전혀 부럽지 않다.
보통 아들들은 커가면서 어릴 적 다정함을 점점 잃고 말수도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그래서 엄마들에겐 나이 들면 딸이 더욱 필요하다고 하지만 나의 아들은 그런 부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는 아들이다. 아들만 딱 하나 있지만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득하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릴 때도 성인인 지금도 변함없이 엄마인 나를 대하는 아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까지 한결같이 자상하고 든든한 고마운 아들이다. 그리고 아들이 만난 파트너까지도 너무 착하고 예쁜 아이기에 더 바랄 것이 없다. 엄마의 날에는 각자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결정한 이 둘의 생각도 마음도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