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학년 고등학교 시작

아들 하나 키운 이야기

by insaengwriting
8학년 시작


8학년 고등학교부터는 아침과 오후 출석 체크를 위해 담임 교실을 찾아가야 하며 거기서 학교 전달 사항을 받고 각자의 수업 표에 맞게 수업마다 다른 담당 선생님들 교실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듣게 되어 있었다. 8학년이 된 아들이 받게 될 고등학교 수업은 총 6과목으로 영어, 수학 A, 과학, 사회와 환경, 체육 5과목인 필수과목이었고 다른 하나 선택과목은 음악이었다.


고등학교 밴드부


아들은 음악 특별반을 시작하니 학교 현악부와 콘서트 밴드부에는 무조건 가입이 되어 있었다. 색소폰으로 밴드부를 시작하고 하루 만에 찰리는 불만이 생겼다. 밴드부에서 파트를 맡고 보니 낮은 수준의 연주 부분만 주어져 지루했었던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하는 악기로 등급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들은, 우리는 악기로 등급 시험을 친다는 것도, 받는다는 것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이 악기와 스포츠는 취미 생활이었지 거기에 더 이상의 의미는 두지 않았었다.


8학년이 된 찰리는 색소폰으로 등급은 없었지만 혼자 쌓은 실력이 꽤 높았기에 밴드부에 참가해서 보니 형평성이 떨어진 파트 결정 부분에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찰리는 처음 밴드부의 역할이 단조롭고 지루했지만 잘 참고하다 보니 일 년 동안 몇 번의 업그레이드를 받으며 어려운 파트 연주를 담당하는 역할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밴드부 총책임자 선생님인 미스터 브케논 권유로 찰리는 색소폰 등급 시험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시도는 3등급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치러지는 등급 시험은 등급 지정곡 2개와 자유곡 1개를 그리고 이론 시험을 시험관 한 명 앞에서 일대일로 치러졌다. 찰리는 혼자 연습해서 당당히 하이 디스팅션인 A+을 받고 통과했다. 그리고 다음 해도 등급을 건너뛰어 혼자 연습해서 5등급을 쳤고 하이 디스팅션을 또 받았고 그다음 해에도 건너뛰려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다 6등급을 친다는 선생님의 권유로 6등급, 7,8 등급까지 순서대로 받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학생으로 선발


한편 찰리는 사회환경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학교에서 진행하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학생' 선별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그 시험에서 99퍼센트라는 최고의 점수를 받고 뽑히게 되었다. 시험은 영어, 수학 그리고 문제 해결 능력 세 가지 분야로 나뉘어 시험이 치러졌다고 했다. 그때부터 찰리는 공립학교에서 사립학교보다 더 많은 개인적 혜택과 보살핌을 학교로부터 받게 되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학생으로 뽑힌 찰리에게는 멘토 선생님도 따로 한분 정해져 언제든지 찾아가 상담이 가능했다.


고등학교도 초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일 년에 두 번 선생님들과 성적을 가지고 부모의 미팅이 이뤄졌다. 일 학기 첫 번째 텀 마지막쯤에 한번 그리고 일 년을 마치는 기말고사를 치른 후 결과를 가지고 두 번째 미팅을 했다. 초등학교 때는 담임 선생님 한분만 만나면 되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수업 듣는 과목별 선생님을 따로 만나서 미팅을 해야 했다. 첫 번째 인터뷰는 평가 모의고사를 가지고 하는 미팅이라 수업에 임하는 자세 등에 대해 이야기를 주로 나누고 4 텀에 받는 인터뷰는 일 년을 마치는 기말고사 시험 결과를 가지고 미팅을 하기에 성적에 대해 좀 더 진지해지는 편이었다.


아들의 첫 번째 선생님들은 다행스럽게 다들 좋으신 분들이었고 찰리도 만족했었다. 집으로 배달 온 성적표에는 성적과 행동평가 그리고 과목 선생님들이 남기는 몇 줄의 평가 글이 적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부모와의 미팅 필요성을 알려오는 칸이 있는데 보통 수업 자세가 좋고 성적이 좋을 경우엔 미팅이 필요치 않다고 써서 보내온다.


아들은 고등학교 내내 그 누구도 미팅의 필요성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찰리가 이야기하는 과목 선생님들의 얼굴을 알고 싶었기에 나는 모든 선생님들과의 미팅을 신청했고 만나서 인사를 나누며 선생님들이 성격과 자세를 파악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인터뷰는 학교 생활 일 년을 마감하는, 방학 직전에 하는 미팅이라 찰리와 나는 선생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작은 감사의 선물도 함께 가지고가 전했다.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표시


찰리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학교 수업과 시험이 마치는 11월 말과 12월 초에 우리는 선생님들 선물 사러 다니는 쇼핑을 하며 나중에는 이 시기가 우리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하는 등의 큰 행사로 자리 잡았다. 특히 고등학교 때부터는 그전 초등학교 때 한두 명이었던 선생님들에서 보통 10분 이상의 선물을 사야 했기에 우리는 몇 배의 시간을 쇼핑에 투자하게 되었고 이것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들도 모두 장만하는 시간으로 우리들만의 크리스마스 전통으로 만들어갔다. 일 년을 마무리하기 전에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특히 선생님들에 일 년 동안 감사했고 고맙다는 마음을 작은 선물에 담아 함께 전달했다.


어워드 날


그러고 나면 학교는 일 년을 마무리하는 행사로 '어워드 날, 상장 주는 날'이 있고 이때는 학교 강당이 아닌 골드코스트 아트 센터를 빌려서 전교생 학생들과 부모들을 초대하여 4시간 넘게 걸리는 대대적인 행사의 날이 펼쳐졌다. 이날 과목별 우수상, 학년 전체 일등상, 전교 학생회장 취임식 등 전 학년이 한자리에 모여 드라마, 음악, 춤 공연도 함께하며 펼쳐지며 대대적으로 일 년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부터 찰리는 모든 과목별 우수상과 학년 대표상을 받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받았다.


아들아 이제 네가 알아서 찾아가거라.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옮기게 되자 나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호주 고등학교 교육 시스템이며 수업 과목 선택이며 시험 방식 등 모든 면에서 경험도, 지식도 없는 백지상태였고 찰리처럼 나도 배워야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들 찰리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며 당부를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엄마는 아는 게 없다. 너와 똑같이 처음 듣는 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같이 생각하며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겠지만 그건 단지 너를, 아들을 돕는 역할만을 할 뿐 이제부터의 결정권은 아들 너의 몫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받아오는 모든 전달 사항이나 공부에 대해서는 완벽히 이해하고 집에 오라고,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들이 다 알고 이해해야지만 엄마인 나에게 설명을 잘할 것이고, 그럼 듣고 엄마인 내가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눈치껏 매너 있게 선생님들을 이용해서 다시 물어보고 이해한 뒤 집으로 와야 한다고 전해주었다.


내 아들 찰리는 내 말을 참 잘 알아들었다. 특히 공부에서 이해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집에 오지 않았고 그것을 위해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까지 포기하며 끝까지 알고 이해한 후 집으로 왔다. 그래서 나는 특히 하교 후 아들을 픽업 가서는 차에서 오랜 시간 아들을 기다리며 차에 앉아 있을 때가 허다했다. 나의 시간은 기다림으로 낭비되었지만 과외를 한 번도 넣지 않고 좋은 성적을 거뒀으니 비겼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며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아들이 나오면 차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내내 아들은 학교에서 보낸 크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호주에서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들의 등하교를 시켜야 하기에 우리는 차로 이동하는 동안 그날 하루에 있었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것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습관으로 몸에 배어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대화가 줄어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대화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어릴 적부터 습관적으로 이야기를 서로 물어봐주고 들어주다 보면 그게 어느덧 습관이 되어 버리는 듯하다. 찰리처럼 자신이 보낸 하루 중 특별했던 일들을 엄마에게 말해주려 가슴 가득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을 것이다. 대화하는 습관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대화하는 습관이 어릴 적부터 아이들 몸에 배어 있어야 엄마와의 소통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지금 우리처럼 24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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