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하나 키운 이야기
학생회장이 되다.
학생회장이 된 아들에게는 회장들에게 주어지는 빨간색의 재킷이 생겼고 칼라에 소속되는 여러 단체의 배지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여기서도 아시아인 처음으로 학생회장이 된 경우였고 간부 부모들은 학교에서 초대장을 받고 모닝티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12학년 첫 번째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남자 학생회장 뽑는 일이 제일 쉬웠다고 털어놨기 때문이었다. 월등하게 많은 투표를 받았고 거의 모든 선생님들의 추천을 받아서 눈을 감고도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교장선생님에게서 이런 말이 나와 뜻밖이었지만 듣고 있자니 기뻤다.
3년 전 인종차별을 느끼게 해 준 모닝티 파티에 다시 초대받다.
아침 조회를 마치고 전과 같이 간부들 부모들은 학교 측에서 주체하는 모닝티 파티장으로 갔다. 파티장에 가서 있으니 이번엔 교장선생님이 제일 먼저 학생회장 엄마인, 나에게 걸어와 인사를 해 왔다. 아들 찰리의 자랑을 엄마인 나에게 늘어놓으며 3년 전과 완전히 달라진 행동에 나는 솔직히 당황스러웠지만 표시 내지 않고 잘 받으며 감사함을 전했다.
아들도 이날 교장 선생님의 행동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고 교장 선생님이 다른 부모 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아들이 다가와 전해준 말이 있었다. 아무리 막판 뒤집기 단독 결정권을 가지고 계신 교장선생님이라도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찰리는 그동안 자신의 실력을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선으로 끌어올렸다고 했다. 거기에 자신의 스피치와 투표 결과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의 강력한 추천서들이 아무리 마지막 결정권을 지고 있는 교장선생님이라 해도 그것을 뒤 없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9학년 때 내가 아들에게 했었던 말을 아들은 이렇게 모두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의 성장이 참으로 고마웠다.
학생회장의 시간은 바쁘다.
그렇게 학생회장이 된 아들은 12학년 내내 하루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시간을 쪼개며 지냈었다. 7학년 때의 초등학교 전교 학생회장과는 9학년 때 학생회장과는 천지 차이로 고등학교 12학년 전교 학생회장은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은 듯 보였다. 하지만 잘 처리하며 잦은 회의로 빠지는 수업도 잘 따라잡으며 훌륭히 학생 회장 역할, 12학년을 소화해 나갔다.
12학년 때는 화학 수업을 일찍 끝내며 받은 혜택으로 대학 수업을 듣는 바람에 더욱 바빠졌고 엄마인 나도 덩달아 바빠졌다. 점심시간에 고등학교에서 픽업해서 대학교로 데려갔고 대학교에서 화학 강의가 끝나길 기다렸다 다시 고등학교로 데려다주는 일을 일주일에 두 번을 했다.
테니스와 색소폰도 병행
테니스로 여전히 주말이나 주중에 한두 번은 친구들과 놀이 겸 운동으로 했고 색소폰을 8등급을 취득했며 등급은 여기서 끝을 냈다. 그 후의 자격증은 색소폰을 전문으로, 음악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자격증이라 혼자 힘으로 취득할 수 있는 등급을 다 취득한 샘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일 년 전부터 건강상의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었고 아들 뒷바라지만을 하며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일하지 않고 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었고 또한 내가 조금 심각히 아플 땐 거기까지 신경 써야 하는 아들이 안쓰럽기도 했었다. 아들은 아픈 엄마를 돌보는 역할도, 학교 생활이며 공부며 악기며 모든 분야에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최고의 성적으로 모든 분야를 휩쓸었다.
친구들을 가르쳤다.
그렇게 바빴던 고3 생활 중에서도 아들은 아침 등교시간보다 한 시간씩 일찍 학교를 가서 그 전날 배운 수학 C나 물리 수업을 이해하지 못한 친구들의 요청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선생님들에게도 발견이 되었고 나에게도 선생님들 인터뷰 때 전해 들어올 정도였다. 아들이 친구들을 가르치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아침에 한 시간 이상 일찍 서둘러 학교로 출발해야 하는 사정상 나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고 우리는 보통 6시 전에 일어나 준비하고 7시 전까지 학교에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친구를 돕는 이 행동에 의해 잠시 아들에게 혼란이 찾아왔다.
친구를 도우면 안 되는 호주 입식 방식
호주의 대학입시인 OP 방식 때문이었다. 찰리가 도와주는 친구들은 다들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아이들이었고 A 점수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되면 최고를 달리고 있는 찰리에게는 친구를 가르치지 않은 것이, A의 실력을 비슷하게 키워주는 것이 불리하다는 말이 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내 아들 찰리가 A10을 가지면 다른 친구들은 A를 받아도 10 근처에 오면 아들 찰리에게 불리해진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학교를 가서 친구들을 가르치는 찰리에게 몇 분의 선생님들이 그런 행동을 멈추라고 OP시스템을 다시 한번 알려주며 찰리 자신을 위해 멈추라는 충고를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나의 생각을 물어왔었다. 나도 이런 대학 입시제도가 낯설었지만 나의 생각은 흔들림 없이 분명했다. '배우고자 노력하는 친구들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친구는 함께 커 나갈 때 가장 아름답다'라고 말해주었다. 나중에 대학 가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너의 친구들이 각 분야에서 모두 다 잘되어 있다면 멋질 거라 말해주었다. 그래서 대학을 가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은 함께 끌고 가라고 말했다. 아들은 나의 생각에, 답변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꼭 안아주며 자신의 생각도 나와 똑같다는 말을 해 왔다. 훌쩍 커버려 엄마를 안아주는 아들에게 안겨 나의 아들이 바르게 잘 자라주었구나 싶어 흐뭇했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어워드 날
아들은 열심히 고등학교 생활을 했고 고등학교 생활 마지막쯤에 P자 운전면허를 취득해서 혼자서 차를 몰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었다. 모든 시험이 끝이 나고 졸업을 앞두고 일 년을 마무리하는 '어워드 날'까지 아들 찰리의 역할은 대단했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를 맡았고 소속한 3곳의 밴드부들의 공연도 했어야 했고 특히 행사 진행 사회를 보다 많은 상을 받으러 마이크를 놓고 수차례 상을 받는 모습에 보는 이들을 종종 웃게 만들었다. 일 년 열심히 보낸 결과로 맞는 마지막 찰리의 학창 시절 바쁜 모습일 거라 생각이 들어 아들의 마지막 고등학교 유니폼 모습, 유난히 빨간색이었던 재킷을 받아보고 놀랬었는데 어느덧 그걸 입고 있는 내 아들이 모습을 잊지 않으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깊게 새기듯 보며 즐거웠다.
마지막 스피치에 모든 사람들이 감동을
그리고 마지막에 일 년의 보낸 학생회장의 단독 스피치는 우렁찬 박수와 함께 듣는 모든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특히 많은 부모들이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고 나는 울컥 눈물도 지었던 멋진 스피치였다. 학생들 뒤에서 조력자로 계신 모든 부모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직접 감사함을 표현하는 바람에 나는 관중석에 앉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거의 모든 상의 휩쓸었다.
모든 과목에서는 최우수상을, 그리고 학교에서 주는 거의 모든 상장들과 트로피들을 다 받아 행사에 참석한 전 학년의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놀라움을 사기도 했었다. 행사가 끝나고 쇼핑 카트가 필요할 정도로 상장과 트로피들로 넘쳐났으며 친구의 도움을 받아 차로 옮겨 실을 수 있었다. 여러 대학교에서 장학금과 함께 입학 증서를 미리 보내왔지만 아들이 원했던 대학교의 의대에 지원을 했고 합격이 되었고, 의대 지원생이라 모든 장학금에서 제외가 되었지만 그해 대학교 지원 합격자 중 최고 우수성적자로 선정돼 6만 불이라는 대학교에서 주는 최고 높은 장학금을 받고 의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