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호주에 가서 얼마 되지 않은 시드니 엘리자베스 베이에 살았을 때 이야기다. 이곳은 뭐든지 더블을 줘야 한다는 더블 베이라는 아주 비싼 동네 가기 전에 있는 옆 동네로 킹스크로스와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도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그때 5층 아파트를 렌트해서 살았었고 거실 창이 아주 넓고 환해서 좋았던 집이었다. 특히 일 년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에는 하버브릿지에서 하는 새해 불꽃놀이를 거실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던 집이었다. 이 집에 살 때는 호주에 사는 왕초보자였기에 영어도 많이 서툴렀다. 영어가 서툴어 용기가 없었던 시절에 생긴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그때 우리 집 근처, 우리 동네에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이 가게는 항상 오후 4시 정도면 문을 닫았기에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이렇게 일찍 문을 닫으면 먹고는 살 수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호주는 보통 4시 정도면 가게들이 문을 닫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큰 슈퍼에서 일주일 음식을 장만했고 이 작은 가게는 그냥 지나쳤지 들어가 뭘 사 본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나는 우유가 떨어져 이 작은 가게에 가서 우유를 한번 사 보기로 했다. 가기 전 혹시나 내가 써야 할 몇 가지 영어 문장들도 준비하며 가게로 걸어갔고 작은 가게를 들어서자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점원이 눈에 들어왔다. 몸집은 크고 얼굴빛이 붉은 아저씨가 카운터에 서 있다 가게를 들어서는 나를 흘낏 보았다. 언뜻 보면 술을 꽤 많이 마신 듯한 벌건 얼굴색이었고 쳐다보는 눈길에 친절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가게를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서만 조금 살펴보다 왠지 모를 막연한 불편함과 불안함에 우유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Could you tell me where the milk is?"를 속으로 한번 되내며 용기 내어 카운터에 가서 물었다. "What?" 돌아온 답변이었다. 지금 같으면 돌아온 답변조차 무례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부족한 내 영어를 탓하느라 날 우습게 본다는 것조차 실감하지 못했었다. 분명 그전에 여러 번 물어봤던 똑같은 양식의 질문이었고 비록 몇 번 밖에 되지 않지만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었던 질문이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문장보다는 나의 MILK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줄 알고 "milk, milk"를 몇 번 살짝 다른 악센트로 시도했지만 그 아저씨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엔 내가 먼저 포기했다. "Don't worry about it" 하며 돌아서려 하자 그제야 아저씨가 나에게 "Aha milk" 하며 있는 위치를 손짓으로 알려 주었다.
분명 내 말을 알아듣고도 날 놀린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우유를 사지 않고 우유가 있는 깊숙한 가게 안쪽보다 훨씬 가까운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려 가게를 빠져나왔었다. 웃고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날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아저씨가 주는 불친절한 인상과 태도에도, 그 가게 안에 그 아저씨와 나만 있었다는 것도 불편했고, 나의 밀크라는 발음이 그렇게 힘들게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자체에도 쇼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며 '타국 살이, 여기서 나는 이방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던 첫 번째 날이었다. 그날 저녁은 호주를 와서 처음으로 혼자 우울했던 날이었지만 나의 영어 향상에는 좋은 영향을 주는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나는 그날부터 느슨해진 나의 영어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내가 한 방법 중 하나는 호주 티브를 보는 것이었다. 그냥 보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듣고 귀에 들리는 말은 모두 적고 따라 하며 티브이를 보았다. 그래서 거실 몇 군데 특히 티브이 앞 소파와 식탁에는 항상 공책 한 권과 볼펜 몇 자루씩 놓아두었다. 나는 호주에서 하는 'Neighbours'라는 일일 드라마를 자주 보며 귀에 들리는 거의 모든 말들을 특히 어떤 상황에서 써먹기 좋을 것 같은 문장들은 노트에 적어두고 하루 종일 틈틈이 중얼거리기 영어를 입에 익히기 시작했었다. 특히 내가 어려워하는 단어 발음이 나오면 같은 발음을 내려고 앵무새처럼 따라한 기억들도 많이 난다. 그리고 어린이용 비디오를 빌려와 한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며 발음과 대사를 그대로 따라 하고 외우다시피 한 것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정글북'이었다. 나는 이런 노력으로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고 영어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꽤 잘한다. 여전히 호주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사람들처럼 완벽하진 않겠지만 일하며, 아이 학교 선생님들과 미팅하고, 호주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떨며 쓰고 사는 데는 무리 없이 하고 있다. 29년 사는 동안 이 일이 크게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생생히 기억되는 것은 당근만 주며 느긋하게 지내다 그날 나 자신에게 채찍을 주었던 날로 삼았기에 그리고 그 채찍으로 영어를 하기 시작하였기에 기억이 되는 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