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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궁인 Nov 27. 2024

Ep. 4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들었다

우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황금돼지의 해 '2019'년이 밝았다.

그리고 그때의 델리 겨울만큼 차갑고 나의 눈물만큼 뜨거웠던 

우리 사랑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작년 12월에 인연을 맺고 

누구나 그렇듯 연애를 시작한 초반의 여느 커플들처럼

우리도 달달함 최고치의 장밋빛 길을 걸었다. 

물론 그를 향한 내 마음이 훨씬 컸고 무한히 확장되고 있던 때였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파악하고자 하는 배움의 욕구만큼

그를 사로잡고 싶은 욕망 또한 강렬했다. 


우리의 서사가 조금씩 어긋나고 비틀어지기 전

1월 26일, 인도 '공화국의 날(Republic Day)'이 찾아왔다. 

인도가 헌법을 발포하고 민주공화국이 된 날을 기념하는 큰 연례행사이자 최대 국경일이다.

우리나라 제헌절과 같은 개념이다. 

*인도 공화국의 날은 인도 독립기념일(8월 15일, 대한민국과 동일)과 간디 탄생일(10월 2일)과 함께

인도 대표 3대 공휴일 중 하나이다.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그에겐 아주 바쁜 나날들이었다.

군 최고통치권자(Supreme Leader)인 인도 대통령은 공화국의 날을 맞이하여 

대통령 궁이 있는 Rajpath 길에서부터 인도판 개선문인 India Gate에 이르기까지

공화국의 날 기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준비한다. 

보통 인도와 친선관계에 있는 국가원수 및 고위급 인사를 주빈으로 초대한다. 

*올해 초에는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주빈으로 참석함


나 또한 아소카 기둥에 장엄한 자태로 앉아 있는 사자상의 인도 국장이 그려져 있는

Republic Day Parade 초대장을 받았다. 

남자친구가 개인 비서를 통해 대사관으로 전달했다. 

직접 내 이름을 쓴 그의 필체를 보는 데 어찌나 뿌듯하던지.

인도 주재 각국의 대사, 외교관 및 관계자, 각 분야의 전문가(언론, 문화 기관, 학계, 싱크탱크 등) 그리고 

인도 시민들의 발길로 인산인해의 풍경을 이룬다.


퍼레이드 참석을 위해 델리 교민인 콜카타 출신의

남자친구의 벵갈리 친구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향했다. 그것도 새벽 6시 30분부터. 

좋은 자리에 착석하기 위해서 일찌감치 눈을 떴다.

어딜 가나 앞자리가 귀하지 않나 싶다. 

퍼레이드 행렬 인파로 가득한 모습. 헬리콥터 대대 등장

퍼레이드에는 진기명기한 볼거리가 많다. 

인간탑을 쌓은 채 오토바이 위에서 저 세상 영역 자세를 취하거나

인도 특정 지역 색이 뚜렷한 유서 깊은 전통 무예가 펼쳐지거나

인도 육, 해, 공 각 부대 소속 군인들의 위엄 있는 행진과 웅장한 연주

뛰어난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형형색색의 장식물을 휘날리는 춤사위의 향연

한-인도 국방관계의 핵심 딜인 K-9 자주포를 위용 있게 자랑하는 행렬도 선보인다.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내내 

인구 14억 대륙 스케일에 걸맞은 화려한 장면들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했지만

내 눈은 계속 그를 찾는데 뻐근했고 보이지 않는 모습에 안달 나는 마음이었다. 

종 잡을 수 없는 그의 업무 일정과 숨 가쁜 움직임에 괜히 철없는 집착녀가 되고 싶지 않아

잠자코 연락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정도 정리되면 연락하겠지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행사 후 자연스레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애프터 파티까지 흥겹게 즐기고 돌아온 

그 후에서야 한숨 돌렸다는 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얼어있던 내 마음에 한 줄기의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는 듯

다시 사랑의 싹이 피어올랐다. 


나흘에 걸친 공화국의 날 기념행사의 종료 행사인

Beating Retreat 참석차 다시 대통령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 행사 또한 군사의식의 일부로 기원은 17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가 

인근 순찰대를 성으로 불러들이는 데서 처음 시작됐다. 

전쟁터에서 잠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쉬어가는 시간에 숭고한 의미를 담는 것이다.  


대통령궁을 둘러싼 국회 및 정부부처 건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Government Complex, 우리나라의 세종시 같은 느낌)

Rajpath를 따라서 Vijay Chowk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인도 대통령이 대통령 전속 경호팀의 호위를 받고 등장하며

차례로 모디총리 그리고 다른 정부 인사 및 귀빈들이 도착하면서 

국기 게양과 동시에 인도 국가인 'Jana Gana Mana(그대는 민중을 다스리는 자)'를  

모든 국민이 한 목소리로 겸허히 따라 부르며 행사가 시작된다.  

영국 식민 시기 무굴 건축양식의 건물들, 군악대 등장 및 행사 마지막 순서 라이트 쇼

그 의미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도 웅장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 속에 하나 됨을 느끼며 

'그래, 나는 지금 인도에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아주 깊은 동질감을 가졌다. 

쌀쌀한 오전 시간대의 안개와 이맘때쯤 델리 특유의 뿌연 먼지가 어우러진 경치에 

언덕 너머로 경호팀과 행진 대형이 희미하게 지평선 위로 나타났을 때,

나는 수 세기 전 그들의 시간으로 미끄러져 섞여 들어갔다. 뭉클한 기운이 퍼졌다.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모시는 훌륭한 남자친구 덕분에

난 VIP석에 가까운 세 번째 줄에 앉을 수 있었고 

행사 당일 No.1(5명의 ADC가 돌아가며 대통령 및 영부인 관련 업무를 수행, 1번은 대통령과 24시간)에

해당하는 남자친구가 대통령 경호 차량에서 함께 내리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대규모 행렬, 광활한 풍경, 내로라하는 인도 고위급 인물들은 서서히 어두워지며,

그의 차분한 품위와 강인한 모습만이 내 시선에 담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섞인 무대에서 그에게만 조명이 쏟아지는 듯했다.


행사의 본격적인 시작과 동시에 관객석에서부터 

VIP 전원 착석 후, ADC 5인은 일정 대형을 갖춘 채 각자 맡은 인물을 위해 그들의 옆으로 이동한다. 

그의 측면을 잠시 볼 수 있었다. 나는 열심히 손을 흔들어 '나 여기 있어. 한번 봐줘'라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중차대한 임무에 무아지경으로 빠져 나를 확인할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서운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업무에 임하는 그 사람의 열정과 진정성이

더 돋보였고 멋스러움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공화국의 날로 시작해 비팅 리트릿으로 끝나는 

양대산맥의 크고 중요한 순간들 속 한자리에 있었지만

결코 단 둘이 있을 수 없었고 그 존재감 또한 일방적이었다.

(항상 나는 그를 향한 시선이었지만 그는 나를 볼 수 없었다.)

그렇게 2주간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다가 

하루 밤은 '너를 봐야 할 것 같아서 달려왔어. 우리 너무 오래됐잖아. 못 본 지'라며 

그의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기쁜 마음에 집 밖으로 내달렸다. 


우리의 데이트는 늘 그랬다. 

보다 안정적인 업무 흐름과 규칙적인 일정을 갖고 움직이는 나는

항상 변수가 많고 불규칙적으로 '최종의 최종을' 겪는 그를 기다리는 편이었다. 

업무가 끝나고 나는 내 할 일을 하면서 항시 스탠바이 같은 연애를 했다. 

사랑하면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는 말, 나를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는 말.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의구심이 아닌 보기 좋게 그런 말은 진실이 아님을, 

저마다의 다른 상황에 처하면 꼭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어폐가 있다며 반박하고 싶었다.

내 마음 다치지 않으려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나는 기다려도 좋았다. 만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좋은 시간을 함께한다면은.

어느 한 날의 데이트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다가 

그 안에 존재하는 잠깐의 이야기 속에 내가 등장한다면 

사소한 갈등에 대한 저항 없이 서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며 

계속해서 서로의 일상생활에 현존해 가는 것이다. 

줄곧 이런 긍정적인 감정의 유효기간을 늘리며 2월을 맞이했다.


난 그 사이 인도 국내 여행도 다녀오고 나름 인도살이를 충만히 즐기고 있었다.


2019년 2월의 마지막, 

난 끔찍한 일을 겪어야 했다. 선명히 기억하는 2월 26일.

젊은 시절인 20대에 우리 모두는 대개 변화무쌍한 형태로 큰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변화를 겪는다고 하지만 나에게 찾아온 상실과 시련의 형태는 그 규모가 더욱이 크게 느껴졌다. 

'Balakot Airstrike' 발라콧 공습이 우리 서사에 기어코 잿빛 먹구름을 몰고 왔다.


2월은 여느 때처럼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었다. 

인도 북부의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인 카슈미르 지역에 놀러 갈 생각으로

민간 공항이 있는 스리나가르 향발 티켓도 예약해 뒀었다. 

그리고 몇 주 간 또 바빠진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는 뜸해졌고 

야속한 마음 그리고 금방 눈 녹듯 녹는 마음 반으로 지나가다 

어느 날 대사관 인근 호텔에서 업무 회의를 마치고 저녁에 호텔 매니저 그리고 동료 언니와 함께

술 한 잔 마시던 중 사라졌던 남자친구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미약한 원망이 강력한 두려움으로 확산되는 찰나였다.


난 그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이 언제나 그랬듯 먼저였다. 긴 기다림 뒤에도.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원인 모를 불안과 긴장이 서려있었다.

나는 단숨에 느꼈다. 뭔가 잘못됐음을. 그리고 우리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도. 


현재 얽매여 있는 중대한 사건이 있어 몇 주 연락을 제대로 못했다며,

미안하다는 말이 그가 건넨 첫마디였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진 않았다.

본인 상황 설명만 하고 언제 다시 볼지 기약하기 어렵다는 말로 통화가 마무리됐다.

울적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지만 술기운에 흘려보내며,

'그래도 살아는 있네, 목소리는 들었네' 하면서 시원섭섭한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인도-파키스탄 발라콧 공습 사건

며칠 뒤, 아무렇지 않게 그와 약속을 잡고

난 백화점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데이트를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만나서 1시간 채 안되게 같이 있다가 그는 급하게 연락을 받고 업무에 복귀했다.

(국가가 우리를 이어줬지만 국가가 우리를 갈라놓기도 한다.)

그때가 당분간의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불가항력적인 미래이지만서도 후회가 됐다. 

조금 더 붙들어 둘걸 내 옆에.



그리고 항상 긴장상태에 있는 인도-파키스탄 분쟁이 공습으로 터지고 말았다.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면 이러하다.

2월 14일 (목) 인도령 카슈미르의 풀와마(Pulwama) 지역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인도 경찰 40명이 사망했고 사건 직후 무장단체(Jaish-e-Mohammed, JeM)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주장.

2월 26일 (화) 새벽, 인도 공군은 이에 대응하여 전투기 12대를 동원, 파키스탄 발라콧에 위치한

무장단체 근거지를 공격해 JeM 테러리스트 다수를 사망케 했다. 

2월 27일 (수) 오전 파키스탄 공군은 인도-파키스탄 통제선을 넘어온 인도 전투기 격추 및 

인도인 조종사를 체포, 인도 공군은 인도 영공을 침범한 파키스탄 전투기를 격추하는 것으로 맞대응.

사건 당시 외교부의 해당 지역 적색경보 발령 상황

준전시상황(準戰侍像態)이 발생한 것이다. 난 어안이 벙벙했다. 

이것이 21세기의 지극히 안정적이고 현대적이며 편리한 내 일상에 찾아올 수 있는 일인가. 

그때 내 머릿속은 번뜩이는 그의 흔적을 담은 몽타주들이 일렁이며 어지러웠다.

짧은 만남에 갑작스레 헤어짐을 고하고 돌아서던 그의 발길이, 보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렸던 지난 시간들이

하나둘씩 애써 지워버렸던 기억의 파편들이 다시금 모여 완성된 그림으로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왜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나라 간의 분쟁으로 아주 개인적인 남자친구를 양보해야 하는 시련이 닥친다 말인가... 

그에 대한 생각도 잠시 난 본부에 보고할 전문 작성과 

한국 교민들을 위한 진전 상황 공지 및 주의 사항 안내로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이 시각 그 또한 ADC로서 대통령 근처를 맴돌며 

저 건너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도움이 방법이 없는 건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군인들과 매한가지로 같은 처지였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열정은 아주 조용히 하지만 패기 넘치게 국방부 차관 앞으로 

전쟁상황에 놓인 작전지에 배치해 달라는 요청서한을 발송하는 것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닥친 것은 돌아서야만 하는 국가를 위한 그의 지고지순한 애국심만이 남긴

차다 못해 시린 정제된 냉정함과 깨어지지 않는 분명한 그의 결심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 한 날 아직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 한 스타벅스에서 

사형선고 판결 후 불안함과 막연함 속에 

집행날짜만을 기다리는 죄인 마냥 그를 마주한 채 이별통보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넌 어디로 가고 그 이후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지

난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어떤 것도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난 정말 그 자리에서 무기력하게 꽁꽁 얼어버렸다.


그가 날 집에 데려다주는 길 

온 힘을 다해 여차하면 한가득 차오르다 흠뻑 떨어질 것만 눈물을 부여잡느라 

내 몸은 내 속도 모르고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말 마지막일 것 같은 갑자기 죽어버린 우리의 열정

아니, 정말이지 너무나도 일방적인 그의 냉정과 열정 사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란스러움은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두 줄기 눈물을 훔치는 그의 따스하고 큰 손뼘에 감추어졌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디로 가는지도 말할 수 없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인데.

내 마지막 발악은 그의 품 안에서 훌쩍이면서도

'깊이 사랑하면 힘이 나고, 깊이 사랑하면 용기가 생긴다' by. 노자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라며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그동안 널 많이 사랑했다고 이제 막 시작했지만 너무 커져버린 내 마음을

직설적이고 지극한 고백으로 꾹꾹 눌러 담으며 이토록 어려운 헤어짐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대문을 닫고 자동차 엔진 소리의 여운만을 남기고 흔들림 없이 떠나가는 그를 뒤로한 채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가만히 서있고만 싶었다. 

마침내 완벽한 고독이 찾아왔을 때 난 하염없이 무너져버렸다. 

돌아서는 그의 등 뒤에 터지던 내 울음은 

홀로 남은 조용한 공간에서 가려질 수 없었던 

강인함 속에 숨어있던 연약함이면서도 

너무 큰 절규였고 더 사랑하지 못한 나의 절망이자 절절함이었다. 


그렇게 냉정과 열정 사이 피지 못한 우리 사랑은

상실감에 자리를 내어주며 끝이 나버렸다.    


우리 참 좋았는데...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전개된 이야기이며 기타 배경은 인도 외교부 언론 보도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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