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주권'과 '생존' 사이

- AI 주권을 위한 KBS의 역할과 사명

by 최용수

2026년은 대한민국 AI의 생태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KBS는 디지털 전환에 실패하면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에서 그 존재감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지만, 혼돈의 AI 시대에서 어쩌면 작은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그 가능성의 일단을 모색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2026년 1월, 대한민국은 치열하고 거대한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다. 그리고, 전대미문의 ‘인공지능(AI)이라는 기술 패권을 둘러싼’ 생존을 위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 선택은 단순히 "어떤 기술을 쓸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선다. 향후 10년, 우리가 디지털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기술 강대국의 하청 기지로 전락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생존의 문제다.


현재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과 전문가들은 두 가지 거대한 흐름 사이에서 치열하게 논쟁 중이다. 한쪽에는 하정우 대통령 AI 미래 기획수석이 이끄는 '소버린 AI(Sovereign AI)' 진영이, 반대편에는 이경전 교수, 강정수 박사로 대표되는 '시장 실용주의' 진영이 있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의 AI 정책 방향에 대한 논란이 길어지고 대응이 느려지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또한 현재의 갈등 국면에서 공영미디어 KBS는 현명하게 이를 활용할 방법을 찾을 필요와 의무가 있다.


AI 관련 의제는 너무 전문적인 용어가 많고 소통되는 정보의 속도조차 빠른 탓에 낯설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 잡아야 한다.


1.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 '천재 모델'의 시대에서 '가성비'의 시대로


불과 2~3년 전인 2023년과 2024년만 해도, 전 세계는 "누가 더 똑똑한 AI를 만드는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마치 인류 최고의 천재를 키워내듯, 더 많은 데이터를 먹이고 더 거대한 슈퍼컴퓨터를 돌려 '가장 똑똑한 AI 모델'을 만드는 것이 곧 국력이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게임의 법칙은 완전히 바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고 성능의 AI 모델 만들기 경쟁'은 끝났다.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중국산 AI'의 역습이다. 중국의 '딥시크(DeepSeek)'나 '큐원(Qwen)' 같은 모델들은 미국의 최신 모델과 대등한 성능을 보여주면서도, 사용료는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예전에는 최고급 셰프가 만드는 10만 원짜리 파스타(미국 AI)만 있었는데, 맛은 거의 똑같은데 가격은 5천 원인 편의점 도시락(중국 AI)이 쏟아져 나온 격이다.

이제 AI 모델은 특별한 발명품이 아니라, 전기나 수도처럼 누구나 끌어다 쓰는 '기반 시설(Infrastructure)'이 되었다. "AI 패권의 기준이 '누가 만들었는가'에서 '누가 그 위에 무엇을 쌓는가'로 바뀌었다".


2. 엔비디아의 '그록(Groq)' 인수, 마지막 희망을 삼키다


지난달(2025년 12월 25일) 전해진 엔비디아(NVIDIA)의 그록(Groq) 인수 소식은 아마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에겐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을 포함한 비주류 국가들은 엔비디아의 GPU 독점에 맞서기 위해, '탈(脫) 엔비디아' 진영의 선두 주자인 그록(Groq)과 같은 NPU(신경망 처리 장치) 스타트업에 기대를 걸어왔다. "엔비디아가 너무 비싸니, 가성비 좋은 그록 칩을 사서 우리만의 인프라를 꾸리자"는 ‘소버린 AI(Sovereign AI)’ 입론의 근거에 그록(Groq)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약 200억 달러(약 29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으로 그록을 사실상 인수해 버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AI 학습(Training)' 시장을 독점한 엔비디아가, 이제 막 열리던 'AI 추론(Inference)' 시장의 싹까지 잘라버리고 자신들의 제국으로 편입시켰음을 뜻한다.

이로써 "틈새시장을 노려 독자적인 하드웨어 생태계를 만들자"는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제 인프라의 모든 길목은 엔비디아가 지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세금을 들여 '국산 AI 모델' 개발에만 몰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질문이 AI 업계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이 논란에서 절대적 승자는 없다.


3. 첫 번째 딜레마: '소버린 AI'라는 방패


그렇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미국과 중국의 기술 식민지가 되어야 하는가? 여기서 '소버린 AI' 진영의 반론이 나온다. 하정우 수석 측의 논리는 명쾌하다. "남의 집에 얹혀살면 언젠가 쫓겨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의 AI에 전적으로 의존하다가, 어느 날 미국이 "보안 문제로 한국 접속을 차단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디지털 석기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독도 문제나 역사 문제를 AI에게 물었을 때, 일본이나 미국의 편향된 시각으로 대답하는 AI를 우리 아이들이 쓰게 될 수도 있다.

즉, '데이터 주권'과 '문화 정체성', 더 나아가 '국가 안보'를 위해 우리만의 'AI 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비용 효율을 떠나 주권 국가로서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4. 두 번째 딜레마: '디지털 갈라파고스'의 공포


반면, 시장 실용주의자들의 경고 또한 섬뜩하다. "애국심만으로 비싸고 성능 떨어지는 국산 AI를 기업에 강요할 수 있는가?"

경쟁사는 성능 좋고 저렴한 중국산 모델로 월 100만 원에 서비스를 돌리는데, 한국 기업만 '애국'을 명분으로 월 500만 원짜리 국산 모델을 써야 한다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것이다. 정부가 보조금으로 억지로 국산 AI를 쓰게 한다면, 한국은 세계와 단절된 '디지털 갈라파고스'가 될 수도 있다.


5. 해법: 공공은 '지키고', 민간은 '풀어라'


우리는 '자주 국방'도 해야 하고, '무역 전쟁'에서도 이겨야 한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까? 해법은 "역할 분담"에 있다.

첫째, 정부와 공공 영역은 '소버린 AI'를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

국방, 행정, 교육, 그리고 공영방송 같은 영역은 효율보다 '안전'과 '주권'이 우선이다. 예컨대 KBS가 보유한 방대한 현대사 아카이브를 외국 AI에게 넘길 수는 없다. KBS가 자체 소버린 AI를 갖는 것은 기술 자랑이 아니라, 우리 문화와 역사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공공 투자다.

둘째, 민간 기업은 '완전한 자유'를 줘야 한다.

스타트업에게 "국산을 쓰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그들이 그록을 쓰든, 딥시크를 쓰든, 가장 싸고 좋은 도구를 자유롭게 선택해 글로벌 시장에서 돈을 벌어오게 해야 한다.

셋째, '추론 인프라'의 틈새를 공략해야 한다.

엔비디아가 그록을 인수했지만, 아직 퓨리오사 AI나 리벨리온 같은 한국의 토종 NPU 기업들이 남아 있다. 정부는 무모한 '모델 개발' 경쟁보다는, 이들 국산 칩이 엔비디아의 빈틈을 파고들 수 있도록 '실증 단지'를 만들어줘야 한다. "모델은 수입하되, 그 모델이 뛰어놀 운동장(인프라)은 우리 것으로 만드는 전략"만이 기술 종속을 피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길이다.


6. 자립과 개방의 균형, KBS의 존속가능한 모델이 필요하다


2026년, 엔비디아의 독주와 중국 AI의 저가 공세 속에서 한국 AI 정책의 정답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국가는 지키고, 시장은 연다"는 지혜로운 이분법이 필요하다.

정부는 안보와 문화가 걸린 영역에서 뚝심 있게 디지털 방벽을 쌓되, 민간에는 무한한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 거대 빅테크가 인프라를 독식하는 상황일수록, 우리는 그 틈새에서 '가장 영리한 사용자'이자 '독자적인 인프라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2026년이 그 균형점을 찾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KBS는 이 중요한 논란의 중심에 서서 우리의 오래된 과제, 방대한 아카이브를 AI를 활용해 활용가능한 아카이브를 만드는 일에 정책적 역량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1. 강정수. (2025). 2026년 AI 경제: AI 패권은 모델이 아니라 인프라에서 갈린다. (미간행 리포트).

2. 유덕관. (2025년 12월 25일). 엔비디아, AI 칩 스타트업 '그록' 기술 라이선스 계약... 사실상 인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236537.html

3. Bean, N. (2025, December 28). The Nvidia-Groq Transaction: Strategic Consolidation in the Era of Inference. Medium.

4. Nellis, S. (2025, December 26). Nvidia to license Groq's AI chip technology and hire its CEO. Reuters.

5. 하정우. (2024, May 22). 각 국가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소버린 AI는 왜 중요한가? [Video].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wIfRJJFxl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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