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KBS는 방송법 제58조(운영계획의 수립), 정관 제30조 (운영계획의 제출)에 따라 '2026 운영기본계획'을 이사회에 제출하고 사내 업무공지 게시판에 게재하였다. 이사회에 제출된 '기본운영계획'은 이사회의 승인(최종의결)을 받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이하 '방미통위')를 거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보고까지 마치면 KBS 홈페이지에도 게재된다.
'KBS 기본운영계획'은 공영방송 KBS가 공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한 해 동안 추진할 경영 목표, 주요 사업, 그리고 예산 운용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 하지만 20여 년 넘게 공표되어 온 이 법정 경영지침, '기본운영계획'은 그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 그대로 '아날로그 시대의 법제에 박제된' KBS의 씁쓸한 자화상 같다.
'국민의 방송, 신뢰와 혁신의 KBS'라는 경영목표 아래 2025~2027년 중장기계획에 따른 10대 과제와 올해 달성해야 할 17개 세부과제로 구성된 '2026 기본업무계획'은 지난 2001년 이후 한결같이(부서의 명칭과 조직의 이합집산은 거듭되었어도) 전략기획실, 콘텐츠전략본부, 멀티플랫폼센터, 드라마센터, 예능센터, 스포츠센터, 보도시사본부, 교양다큐센터, 라디오센터, 방송인프라본부, 경영본부, 직속부서, 지역국 순으로 지상파 중심의 조직에서 비롯된 과업 분류와 편성시간, 예산 배정 체계가 20여 년 넘게 답습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운영계획'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기존 부서 구조 위에 각 부서의 사업 계획을 적산(積算)한 것이다. 중장기계획에서 도출된 10대 과제는 나름의 시대적 방향성과 전략적 지향을 담고 있지만, 이 10대 과제와 부서별 추진계획 사이의 연결고리는 잘 파악되지 않는다. 각 부서가 자기 영역에서 10대 과제 중에서 올해 하고 싶은 사업들을 정리는 해놓았지만, "KBS 전체가 어디로 가겠다"는 전략적 실천 방향은 잘 읽히지 않는다. 어떤 과제가 어떤 부서의 어떤 사업과 연결되는지, 사 업의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자원 배분의 원칙은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제 "AI 등 혁신 기술을 활용한 방송·미디어 서비스 제공"은 17개 세부과제 중 ⑭ AI 미디어 기술 개발과 ⑮ AI 활용 실감형 콘텐츠·서비스 강화로 구체화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 추진계획을 보면, 미디어연구소의 AI 기반 제작기술, 보도시사본부의 AI 저널리즘, 라디오센터의 AI 오디오 콘텐츠, 콘텐츠전략본부의 AI 앵커, 영상제작국의 생성형 AI, 스포츠센터의 AI 스포츠 툴, 디지털전략국의 AI 챗봇 등 AI 관련 사업이 7~8 개 부서에 분산되어 있다. 이들 간의 조율 메커니즘은 보이지 않는다. 각 부서가 자기 관점에서 AI를 언급하고 있을 뿐, 전사 차원에서 AI를 어떤 전략적 목표 하에 통합적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분기별 예산집행계획을 보면, 2026년 총비용예산은 약 1조 3,646억 원이다. 사업비(방송사업비+시청자사업비)가 약 1조 1,521억 원, 판매비와 관리비가 약 2,015억 원, 사업외비용이 약 110억 원이다. 당기순이익은 약 3.9억 원으로, 사실상 균형수지를 겨우 맞추는 수준이다.
이 예산 구조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방송제작비 내 인건비와 경비의 비율이다. 방송제작비 약 9,280억 원 중 인건비가 약 2,997억 원, 경비가 약 6,028억 원이다. 수신료징수비가 약 1,027억 원으로, 전체 판관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광고운영비는 약 303억 원이다.
문제는 이 예산 배정이 기존의 부서별 구조를 전제로 한 관성적 배분이라는 점이다.
예산국의 운영 방침은 "비용예산 동결 기조 유지 및 긴축 대책 강화"와 "핵심 콘텐츠 경쟁력강화 예산 편성 투자"를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콘텐츠가 '핵심'인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기본운영계획만으로는 알 수 없다. 대형 이벤트(아시안게임, 지방선거)와 대기획(대하드라마 )에 예산을 집중하겠다는 것은 전통적인 지상파 방송사의 접근법이다. 이런 사업방식이 멀티플랫폼 환경에서 KBS의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자본예산도 마찬가지이다. 2026년 자본예산 총 약 607억 원 중, 방송시설 구축/고도화에 약 234억 원, 연구개발·정보화·뉴미디어에 약 111억 원, 방송제작장비 보강에 약 72억 원이 배정되어 있다. 이 투자의 방향이 과연 5년 후의 KBS를 준비하는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인프라를 유지·보수하는 수준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부서별로 핵심사업을 선별하여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주어진 예산을 짜 맞추느라 수많은 직원들이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에 참여한 많은 직원들과 간부들은 과연 이 기본운영계획이 공사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들었을까?
지난 2월 28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이하 '방미통위') 비상임위원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윤성옥 교수, 국민의힘 추천 이상근 교수 등 2명의 추천안을 결재했다. 이로써 지난 5개월째 '개점휴업' 상태였던 방미통위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미통위 비상임위원은 상임위원과 달리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국회는 전날(26일) 본회의를 통과한 민주당의 고민수 상임위원 추천안과 함께 윤성옥 이상근 비상임위원 추천안을 청와대로 보냈고, 청와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 달 1∼4일 싱가포르·필리핀 순방을 마치는 대로 임명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이로써 방미통위는 의사정족수 4인을 넘어서 의사결정이 가능한 5인 체제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이제 개정 방송법에 따른 KBS 이사회 재구성,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 설치, 편성위원회 구성 등의 후속 조치가 줄줄이 이어질 것이다.
게다가 지난 3월 4일 KBS 임시이사회에서는 서기석 KBS 이사장이 불참한 가운데 이사장 불신임 안건을 의결함으로써 2023년 박민 사장 임명과 2024년 박장범 사장 임명을 주도했던 서기석 이사장은 이시장직을 잃게 되었다. 의결에 참여한 이사들에 따르면 "과반 이상이 불신임안에 동의했다"며 "오는 11일 새 이사장을 선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일정대로라면 아마도 6.3 지방선거 이후 KBS의 새로운 지배구조구성을 위한 절차가 본격화될 것이다. 그래서 지난주 회사에서 이사회에 제출한 <기본운영계획>은 그 존재감이 더 퇴색되어 보인다.
방미통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2025년 12월 11일, 방미통위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첫 업무보고를 진행하며 2026년 핵심 추진 과제를 공개했다. 류신환 방미통위 위원장 직무대행은 "지상파가 OTT나 뉴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다"면서 "방송·광고 규제 등을 완화해 생태계를 복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공성을 확충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며 다음의 3대 분야의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1) 안전한 방송미디어통신 환경 조성: 허위조작정보 대응, 투명성 센터(가칭) 설치, 재난정보 제공
(2) 규제와 진흥의 조화를 통한 산업혁신 활성화: 방송미디어 규제 개선, AI·디지털 기술 도입, 미디어 통합 법제 마련
(3) 미디어 국민주권 강화: 합리적 공영방송 제도 안착, 미디어 접근권 보장,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 교육
이 중 KBS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핵심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편성 규제의 대폭 완화이다. 국회 과방위 통합미디어법 TF가 2026년 1월 26일 발표한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가칭) 초안에 따르면, 편성 의무를 부과하는 전문편성 개념을 삭제하여 보도를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편성·배치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하는 방향이 제시되었다. 이남표 용인대 객원교수는 "현재의 종합편성채널은 보도채널로 보면 된다"고 부연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동안 KBS 1TV와 2TV의 편성 정체성을 규정해 온 보도·교양 비율 규제, 오락물 편성 상한(60%), 수입물 편성 상한(90%) 등의 규제가 완화 내지 폐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광고 규제 체제의 전환이다. 방미통위는 "미디어 이용행태 변화, 온라인 광고 성장 등으로 방송 광고 시장 매출이 급감함에 따라 방송에만 적용되는 광고 규제 불균형 해소 추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구체적으로 2026년 상반기 중 광고 일총량제 확대(17%→20%) 및 개선, 중간·가상·간접광고 규제 완화, 광고 규제 체계의 네거티브 방식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본운영계획에서 마케팅국이 "광고 제도 환경 변화 대응"을 과제로 명시하고 있지만, 이 변화의 스케일이 과연 한 부서의 대응으로 충분한 것인지 근본적으로 물어야 한다.
셋째, 공영방송 협약제도의 도입 논의이다. 통합미디어법 TF는 공영방송에 대해 협약제도를 도입해 규제기관과 6년 단위로 공적 책무, 이행 방안에 대한 협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것은 BBC의 '로열 차터(Royal Charter)'와 유사한 구조로, 공영방송의 의무와 권한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되, 그 이행에 대한 책임도 함께 부과하는 방식이다. KBS가 이러한 협약제도에 대비하려면,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 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공적 책무 이행 계획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넷째, 통합미디어법의 본격 추진이다. 방미통위는 민관 합동 '미디어발전위원회'가 구성되면 통합미디어법 추진에 본격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현행 방송법,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IPTV법), 전기통신사업법 등으로 분산된 미디어 법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이다. 통합미디어법이 제정되면, '지상파방송사업자'라는 KBS의 법적 지위 자체가 재정의될 수 있다. 이 변화를 KBS는 수동적으로 기다릴 것인가, 능동적으로 독립적인 '한국방송공사법' 제정과 같은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규제 환경의 변화와 함께, KBS의 지배구조 자체도 근본적인 전환기에 있다. 2025년 8월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방송법 개정안은 38년 만의 가장 대대적인 수술로 평가되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KBS 이사 수 확대: 기존 11명에서 15명으로 확대
(2) 추천 주체 다양화: 국회 교섭단체 6명, 시청자위원회 2명, KBS 임직원 3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 2명, 변호사 단체 2명
(3)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 설치: 100명 이상의 국민으로 구성, 사장후보자의 경영계획발표·면접·숙의토론을 거쳐 3명 이하 복수 후보 추천
(4) 특별다수제 도입: 이사회 재적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사장 후보 의결
(5) 편성위원회 설치 의무화: 방송사업자 추천 5인과 종사자 대표 추천 5인, 총 10인으로 구성
(6)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도입: 보도 분야 종사자 과반수 동의 필요
현재 방미통위 5인 체제 가동 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방송 3법 후속조치, 즉 KBS 이사회 구성 규칙 개편이다. 방송 3법 부칙에 따라 지난해 12월까지 마무리되었어야 할 이 작업이, 방미통위의 파행으로 지연되어 왔기 때문이다. 현직 사장과 부사장, 감사 등은 개정법에 따라 후임 사장이 선임·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런 전환기에 KBS 내부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재원 측면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2025년 10월, 수신료 통합징수가 본격 시행되었다. 2023년 7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시행령 개정으로 분리 징수가 시작된 이후, KBS는 연간 700억 원 이상의 미납금과 400억 원 이상의 추가 징수 비용이 발생하는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었다. 수신료 통합징수가 재개됨으로써 이러한 재정적 출혈은 상당 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재정이 안정화되는 이 시점이야말로, 단순히 과거의 지출 구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맞는 새로운 투자와 조직 설계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정리하면, 규제 환경의 전환(방미통위의 편성·광고 규제 완화, 통합미디어법 추진, 공영방송 협약제도 논의), 지배구조의 변화(방송3법에 따른 이사회 재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 변경), 재원의 안정화(수신료 통합징수 재개)라는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는 것은 KBS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과거에 못했다고 해서 현재도 좌절하고 말 것인가. 올해 새롭게 구성된 방미통위는 과거의 규제틀을 과감히 깨겠다고 선언했다. KBS에겐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언제 올지 모른다.
'기본운영계획에는 연간 경영 목표와 부서별 추진 과제는 물론, 세부 예산 편성안과 채널별 방송제작 및 편성 시간계획이 상세히 포함되어야 한다. 계획서의 작성 또한 매년 초 사장의 경영 방침에 따른 탑다운 방식과 실무 부서의 제안 사업이 바텀업 방식으로 취합된다. 모든 계획안이 그렇듯이 현실에서의 실행은 기본계획의 틀을 따르더라도 계획안대로 실행되기는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좋은 계획은 현실에서의 변동성을 어느 정도는 예측하여 사업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 공사의 기본운영계획은 신설 규제기구인 방미통위의 정책방향에 따른 변동요인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전략기획실의 경우 중점사업인 "방송법 개정 후속조치 및 공사 보유자산 활용 방송법 개정안 등을 위한 대외 협력 강화"의 실제 사업 내용을 보면, "개정 방송법 이행을 위한 방송편성규약 개정", "공사 경영과 연관성이 높은 법령 제·개정 적극 대응"처럼 반응적(reactive) 접근에 머물러 있다. 방미통위가 추진하는 편성 규제 완화, 광고 규제 개혁, 공영방송 협약제도 도입, 통합미디어법 제정이라는 거대한 정책 변화에 대해, KBS가 선제적(proactive)으로 우리의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관점이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연구소(공영미디어연구부)의 사업을 보면, "AI를 활용한 콘텐츠 혁신 전략과 미디어 시장 변화 연구"에 6백만 원, "KBS 브랜드 파워 제고와 콘텐츠 유통 전략 제시"에 1,400만 원, "KBS 공적 재원 안정화를 위한 여론 파악과 국민 인식 개선"에 1억 7,600만 원이 배정되어 있다. 브랜드 전략과 콘텐츠 유통 전략 같은 핵심 연구에 고작 1,400만 원을 배정하고서도 정교한 KBS의 미래 전략들이 나올 수 있을까
멀티플랫폼센터의 운영목표는 "전략적 기획과 데이터 기반 투자로 콘텐츠 경쟁력 발굴·확대"이다. 중점사업에는 글로벌 OTT 프로그램 기획, 디지털 콘텐츠 수익성 증대, 유튜브 채널 투자, KBS 디지털서비스 경쟁력 제고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이 센터가 편성전략국, 편성주간, 디지털전략국, 콘텐츠사업국, 마케팅국을 아우르는 방대한 조직이면서도, 실제로는 각 국(局) 단위의 사업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편성과 디지털, 유통과 마케팅이 하나의 전략 아래 통합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아니라, 각자 자기 영역에서의 사업 목표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콘텐츠사업국의 "Wavve-TVING 기업결합을 통해 플랫폼 경쟁력 제고 및 유통 확대 적극 추진"이나 "OTT(Netflix 등) 투자유치 및 콘텐츠 공급 확대" 같은 과제는 KBS의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이것이 일개 국(局)의 사업 항목으로 처리될 문제인가. 전사 전략 차원에서 KBS의 플랫폼 전략, 콘텐츠 유통 전략, IP 확보 전략이 총체적으로 설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보도시사본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26년 중점사업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선거 보도·방송"에 24억 원, "AI 기반 차세대 보도정보시스템 구축"에 7.2억 원이 배정되어 있다. 선거방송 예산은 계기적 지출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AI 기반 보도정보시스템은 KBS 저널리즘의 미래를 좌우할 인프라 투자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보도국 내부의 효율화 도구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멀티플랫폼 환경에서 KBS 뉴스의 도달력과 신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인지는 전사적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보도 부문의 구조적 문제이다. 유튜브 등 디지털 뉴스 콘텐츠 부분에서 타사와 경쟁에서 현저히 뒤처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뉴스 제작·보도 시스템을 바꿀 계획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디지털뉴스국의 〈크랩〉 유튜브 구독자 100만 달성 목표는 의미가 있지만, 이것이 KBS 뉴스 전체의 디지털 전환 전략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의 그림이 필요하다.
정통 대하드라마 〈문무〉 제작에 147억 원(유보), 미니시리즈에 315억 원, 연속극에 450억 원(유보)을 투자하기로 한 드라마센터는 과연 이 규모의 투자로 KBS 드라마의 글로벌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몬스터유니온과 협업 강화로 KBS드라마 외연 확대"라는 과제 항목에서 "현재 예산 상황으로는 KBS 편성 미니시리즈 한정적"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한계를 돌파할 구조적 방안은 제시되지 않는다.(주지하듯이 이 문제는 KBS 드라마센터를 포함한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다. 글로벌 OTT가 대한민국의 드라마판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OTT의 대작 드라마를 만든 이들이 다 KBS를 포함한 지상파 PD들이다.)
교양다큐센터의 "콘텐츠 차별화, 미래 어젠다 주도, K-컬처 확산, 공존의 가치 구현, AI 제작 선도"라는 중점사업 방향은 공영방송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부분이다. 〈2026 AI 빅퀘스트〉, 〈인재전쟁〉 시즌2, 〈역사스페셜 – 시간여행자〉, 〈AI 영상복원 프로젝트 – 우리의 얼굴〉 등의 기획은 의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지상파 편성 슬롯에 갇혀 있는 한, 도달할 수 있는 시청자의 범위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양질의 콘텐츠를 어떻게 멀티플랫폼으로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연계되어야 한다.
그나마 라디오센터의 혁신 시도가 가장 눈에 띈다. "버추얼 아이돌 DJ" 콘텐츠 개발은 흥미로운 시도이다. "경량화한 실행구조로 인력 비용 리스크 최소화", "외부 사업자와 공동 추진"이라는 접근법은 실용적이다. 라디오야말로 BBC Sounds의 사례처럼, 선형적 채널 중심에서 탈피해 개인 맞춤형 오디오 플랫폼으로 재설계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 시도가 하나의 부서 내 실험에 그칠 것이 아니라, KBS 오디오 전략 전체와 연결되어야 한다.
기본운영계획에서 가장 심각한 부분은 지역국이다. 지역국의 비용예산을 보면, 방송제작비가 약 1,066억 원, 시설운영비가 약 623억 원이다. 전체 사업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이 인건비와 기본 운영에 소요되고 있다. 지역 프로그램의 혁신, 지역 시청자와의 소통 강화, 지역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등과 같은 사업을 이 예산 규모에서 어떻게 모두 추진할 수 있을까?
기본운영계획을 읽으면서 가장 답답한 것은, 이 계획이 대답해야 할 근본적인 질문들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의 질문들에 대해, 이 계획서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 1: KBS 1TV와 2TV의 채널 정체성은 무엇인가? 편성 규제가 완화되면, 보도·교양 비율이 자유로워진다. 그때 KBS 1TV는 무엇이고, 2TV는 무엇인가. 각 채널이 어떤 시청자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기본운영계획은 기존의 채널 구조를 전제로 편성 전략을 논하고 있을 뿐이다.
질문 2: 공적 서비스와 상업적 활동의 경계는 어디인가? 수신료로 제작되는 콘텐츠와 광고·유통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콘텐츠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기본운영계획에서 "수입 구조 개선을 통한 재정 안정화"(과제 ⑩)와 "전략적 제작 투자·유통 확대를 통한 수익성 강화"(과제 ⑫)를 동시에 추구하면서도, 이 두 목표가 충돌할 때의 원칙은 제시하지 않는다.
질문 3: 디지털 플랫폼 전략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KBS+, Kong, 유튜브 채널, OTT 유통 등 다양한 디지털 접점이 언급되지만, 이것들이 어떤 통합 전략 하에 움직이는지 불명확하다. "KBS라는 그릇(채널)을 고집하지 말고, 시민들이 있는 곳으로 콘텐츠를 유통시켜야 한다"는 독일 funk의 교훈을 우리는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질문 4: 조직의 인력 구조는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정책기획국의 "과도한 정·현원 격차 해소 및 정원 규모 현실화" 과제는 중요하지만, 이것은 인원 감축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역량을 가진 사람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AI가 보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RF 중심의 기술 인력, 나인투식스(9 to 6) 근무 형태의 경영 인력, 기획력이 약화된 제 작 인력이라는 구조가 과연 지속가능한가?
질문 5: KBS의 5년 후 모습은 어떠한가? 기본운영계획은 "2025-2027 중장기계획"을 언급하고 있으나, 2027년의 KBS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은 제시하지 않는다. 비전 없는 계획은 관성의 산물이다.
<KBS 기본운영계획>의 한계를 인식한다면, 이제 대안을 이야기해야 한다. 대안의 방향은 우선 그동안 논의는 많았지만 실제 어떤 방식으로 추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공적 영역과 상업적 영역을 구분이다. BBC STUDIO와 같은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맞는 조직개편을 추진하는 것이다.
BBC는 2017년 4월, 기존의 인하우스 프로덕션 팀을 분리하여 BBC Studios를 상업적 자회사로 설립했다. BBC Studios는 프로그램 제작, 유통, 판매를 담당하는 영리법인으로, BBC의 공적 서비스(Public Service Broadcasting)와는 별도의 '암즈 렝스(arm's length)' 관계에서 운영된다.(직역하면 '팔 하나 간격'이라는 뜻으로 한 집안 식구(BBC 그룹)이긴 하지만, 서로 팔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절대로 엉겨 붙지 말라는 원칙)
BBC의 운영 분리 원칙은 이 분리의 규범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BBC Studios는 BBC Commercial Holdings Ltd 산하의 상업적 자회사로서, 공적 서비스와 분리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상업적 활동은 상업적 자회사를 통해 공적 서비스와 독립적(arm's length)으로, 상업적 조건에 따라 수행되어야 한다.
(2) 상업적 자회사는 뉴스 프로그램을 제외한 대부분의 프로그램 제작을 입찰에 부쳐 다른 독립 제작사와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하고 있다.
(3) BBC 뉴스와 BBC 라디오는 BBC 내부의 별도 제작 부서로 남아 있으며, 상업적 자회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4) BBC Studios의 조직 구조는 Corporate Centre, Studios Productions, Content Partnerships, Global Distribution, UK(& UKTV) 등 운영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약 2억 파운드를 배당금 및 콘텐츠 투자 형태로 BBC에 환원하며, 2022/23년 기준 매출 27억 파운드, 순이익 2억 4천만 파운드를 기록했다. 또한 2022/23년부터 5년간 BBC에 15억 파운드를 환원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 상업적 수입은 공적 서비스를 보완하는 재원으로 활용된다.
KBS에 이 모델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규모도 다르고, 법적 체계도 다르며, 시장 환경도 다르다. 하지만 다음의 원칙은 분명히 배워야 한다.
첫째, 공적 재원(수신료)으로 운영되는 서비스와, 상업적 수익을 추구하는 활동을 조직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시민단체나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회계 분리도 실질적으로 가능해진다. 지금 현재의 KBS 업무와 회계에서 엄밀하게 공공 영역과 상업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하는 순간 정쟁의 빌미만 제공할 뿐이다.
둘째, 상업적 영역이 공적 영역의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을 저해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한다. BBC의 경우, 상업적 사업을 시행할 때 독점적 지위로 인한 경쟁 제한 문제 등에 대한 사업 평가를 받아야 한다.(현재는 KBS가 시장의 경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지 못하지만, 기본 원칙은 필요하다.)
셋째, 상업적 영역의 성과를 통해 공적 서비스를 확대한다. 수신료 재원은 시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영역이다. 상업적 수익을 벌어들여서 공적 서비스를 확대한다면 시민들은 환영할 것이다.(BBC STUDIO의 존립근거)
새로운 이사회와 사장이 오기 전에, 현재의 기본운영계획 범위 안에서라도 조직개편의 큰 그림을 준비해야 한다. 다음은 그 방향에 대한 제안이다.
첫째, KBS 그룹 재편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현재 KBS에는 KBS비즈니스, KBS미디어, KBS아트비전, KBSN, KBS미디어텍, KBS시큐리티, 몬스터유니온 등 다수의 계열사가 있다. 기본운영계획에서 정책기획국은 "계열사 핵심사업 내실 강화 및 신사업 적극 발굴"을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am p;am p;nb sp;그렇다면, 이 계열사들을 BBC Studios처럼 하나의 상업적 그룹으로 묶어서 재편하는 것은 어떨까? 자회사들을 묶어서 하나의 KBS 커머셜 그룹으로 만들고, 이 그룹이 콘텐츠 유통, OTT 사업, 광고 사업, 해외 사업 등 상업적 활동을 통합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타 지상파방송사는 물론 종편채널들도 반대할 것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공적 서비스의 핵심 영역을 재정의해야 한다. 뉴스와 저널리즘, 재난방송, 교육·문화·다큐멘터리, 지역방송, 소외계층 서비스 등 공적 재원으로만 수행해야 할 서비스의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BBC의 경우에도 BBC 뉴스와 BBC 라디오는 상업적 자회사에 포함되지 않고 BBC 내부의 공적 서비스 부서로 남아 있다. 이것은 방미통위가 추진하는 공영방송 협약제도에 대한 우리의 답이기도 하다. 기본운영계획에서 보도시사본부, 교양다큐센터, 라디오센터의 공적 서비스 기능은 어느 정도 드러나 있으나, 이를 전사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셋째, 편성 전략의 근본적 재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방미통위의 편성 규제 완화는 KBS에 양날의 검이다. 규제가 풀리면 자유도가 높아지지만, 동시에 KBS 1TV·2TV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 이미 OTT가 방송 시장을 황폐화시켜 놓은 지금에서야 편성 규제 완화가 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이것이 시작이다. 적어도 이제 편성과 관련해서 우리가 독자적으로 큐레이션도 해볼 수 있고, 전략적 시도도 가능해졌다.
넷째, 디지털 플랫폼 전략을 전사 차원으로 격상해야 한다. 현재 기본운영계획에서 디지털 관련 업무는 멀티플랫폼센터의 디지털전략국, 보도시사본부의 디지털뉴스국, 각 센터별 디지털 콘텐츠 담당 등으로 분산되어 있다. 이를 통합하여, KBS의 모든 콘텐츠가 디지털 환경에서 최적화되어 유통될 수 있는 전사적 디지털 전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 AI 전략의 통합과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AI 관련 사업이 7~8개 부서에 분산되어 있다. 미디어연구소의 기술연구, 보도의 AI 저널리즘, 제작의 생성형 AI 활용, 아카이브의 AI 검색, 재난방송의 AI 앵커 등이 하나의 전략적 프레임워크 안에서 조율되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은 항상 인문학적 철학과 사유를 통해 그 기능적 유용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기자와 PD들이 원하지 않는 기술은 KBS에서 필요하지 않다. AI 기술이라 하더라도 기자들이 필요한 내용, PD들이 필요한 내용들이 보완적으로 제공될 때, 기술 직종이야말로 가장 필요하고 유용한 직종이 될 수 있다.
여섯째, 글로벌 콘텐츠 유통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BBC의 월드와이드 서비스처럼, 영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콘텐츠 이용 대가로 구독료를 받는 모델을 참고할 수 있다. KBS가 그 정도 규모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한류 콘텐츠, 다큐멘터리, 사이언스 뉴스 등 몇 가지 특화된 분야에서는 가능하다.
기본운영계획에서 KBS WORLD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콘텐츠사업국의 해외 유통은 언급되어 있으나, 이것이 전체 KBS 그룹의 글로벌 전략과 어떻게 맞물리는지의 그림이 필요하다. PBI(세계공영방송) 2026 서울 총회 개최는 좋은 기회이다. 이 자리에서 KBS의 글로벌 비전을 세계에 선보일 수 있도록 전사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조직개편은 구조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다고 했다. 조직의 역량은 리더의 역량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KBS가 현재의 모습으로 쇠락해 온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리더십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리더십을 만들어 낸 법과 제도의 문제였다.
만약 개정 방송법이 어느 정도의 정치 후견주의를 걷어낸 건강한 리더십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어떤 콘텐츠 제작사, 지상파 방송, 기획사, 유튜브든 넘어설 역량이 충분하다. 조직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과자들을 대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본운영계획에서 "부서성과평가제도 개선으로 조직 역량 강화"가 과제로 제시되어 있다. "업무 효율성 및 수익성 강화를 위한 평가 설계"가 언급되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각 부서별 KPI가 무엇인지, 개인의 성과와 목표에 따른 보상 체계는 어떠한지, 정말 전문적이고 최신의 인재 관리 논리가 왜 KBS에서는 이야기되지 않는지를 물어야 한다.
초(超) A급 성과자들에게는 가장 미션 난이도가 높고 파급력이 큰 업무를 맡겨야 한다. 그 경우에는 다양한 영역의 엘리트들이 협업하게 만들어야 한다. 뛰어난 성과를 낸 사람들의 경험이 다음 성과자들에게 전수되는 시스템을 조직이 만들어야 한다.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능력이 다 다르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프로그램 제작에서 초(超) A급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조직 관리 능력, 경영 능력, 홍보 능력 등 모든 것을 다 갖춘 슈퍼 울트라 능력자는 세상에 없다. 서로 다른 능력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서로 다른 영역의 고성과자들 간의 협력과 협업 모델이 나올 것이다.
조직개편의 방향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KBS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정치학자 베넷(W. Lance Bennett, 2008)은 디지털 환경으로 인해 시민성의 개념이 디지털 전환 이전의 의무적 시민모형(Dutiful Citizen Model, DC)에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자기실현 시민모형(Actualizing Citizen Model, AC)으로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성세대가 강조하는 의무와 복종 중심의 시민성이 약화되고, 상호작용적인 디지털 정보기술을 통해 적극적 참여와 자기표현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민성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베넷의 주장이 발표된 지 18년이 넘었지만, 현재의 디지털 환경에서 그 적실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오늘날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가치 소비(Value Consumption)'나 특정 기업 불매운동은 베넷이 예견한 자기실현적 시민의 전형이다. 정당에 가입하지 않아도 나의 소비가 곧 정치적 메시지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디지털 플랫폼은 개인이 직접 의제를 설정하고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대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동시에 비판적 한계도 명확하다. '자기표현'과 '개인 목표'를 우선시하는 시민성은 자칫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히기 쉽다. 내가 보고 싶은 정보만 소비하며 타인과 소통을 거부하는 극단적 파편화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슬랙티비즘(Slacktivism), 즉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거나 해시태그를 다는 정도의 가벼운 참여에 그쳐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 리고 2026년의 가장 첨예한 이슈로, 생성형 AI가 만든 정보들 사이에서 진위 여부를 가려내야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자기실현적 시민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이 분석의 핵심은 이것이다. KBS가 강조해 온 '의무적 수신료 납부'와 '일방적 정보 전달'은 디지털 환경에서 자기실현적 시민(AC)들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KBS의 경영 비전의 핵심은 "전통적 의무감으로 버티던 KBS가, 자기 취향과 주관이 뚜렷한 디지털 시민(AC)들에게 어떻게 다시 사랑받을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
베넷의 이론에 따르면, AC(자기실현적 시민)들은 "법이니까 내라"는 식의 강요에 가장 강하게 저항한다. 이들은 '내가 지지하는 가치'에 지갑을 연다. 유럽 방송연맹(EBU)의 보고서들에 따르면, 공영방송(PSB)에서 공영미디어(PSM)로의 전환 핵심은 '공익적 가치의 가시화'이다.
기본운영계획에서 여러 부서가 "수신료 가치 실현"을 언급하고 있다. 아나운서실의 "수신료의 가치를 고품격 방송 진행으로 실현", 교양다큐센터의 "수신료 가치 실현을 위한 차별화된 콘텐츠 제작", 스포츠센터의 "수신료 가치 실현 및 시청자 만족도 제고" 등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급자의 관점이다. 시청자에게 "우리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수신료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 시청자가 스스로 "이 수신료는 나의 가치를 대변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수신료를 세금이 아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문화를 지키는 멤버십 비용"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개인 맞춤형 수신료 리포트를 통해 "당신이 낸 2,500원이 이번 달에 어떤 가짜뉴스를 팩트체크했고, 어떤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했는지"를 디지털 대시보드로 보여주는 방식은 AC의 '자기표현'과 '가치 확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이제 기본운영계획에서 시청자에 대한 관점을 혁신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AC(자기실현적 시민)는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직접 참여하고 변형하기를 즐긴다. KBS는 이제 '방송국'이 아니라 '국민의 콘텐츠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베넷이 말한 '연결적 행동(Connective Action)' — 현대 시민들이 '조직'이 아닌 '개인 대 개인'의 연결을 통해 행동한다는 원리 — 을 KBS의 플랫폼 전략에 적용해야 한다.
KBS 오픈 아카이브(Open Archive) 전략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KBS가 보유한 방대한 영상 데이터를 API 형태로 공개하여, 1인 크리에이터(AC)들이 이를 활용해 2차 창작물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기본운영계획에서 디지털전략국의 "비디오 아카이브 구축을 통한 콘텐츠 활용 강화"는 "본사 레거시 테이프 인제스트 추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기초 작업이지만, 그 아카이브를 어떻게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KBS를 '민주적 담론의 원재료 공급처'라는 대체 불가능한 지위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연결되어야 한다.
기본운영계획에서 인프라전략국은 "AI기반 아카이브 검색기능 고도화" 사업에 2.44억 원을 배정하고 있다. AI 기반 장면 분석 기술, 음성·문자 인식 기술 도입은 의미 있지만, 이것이 내부 제작자만을 위한 도구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플랫폼의 기반이 될 것인가에 따라 투자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자기실현에 관심이 많은 디지털 시민(AC)들은 알고리즘의 편의성을 즐기지만, 동시에 확증편향에 대한 불안감도 가지고 있다. BBC와 독일 ARD 등은 현재 '다양성을 증진하는 알고리즘', 즉 '공공 서비스 알고리즘(Public Service Algorithms)'을 개발 중이다. 단순히 사용자가 좋아하는 것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알아야 할 반대편의 시각을 세련되게 끼워 넣는 기술이다.
KBS 앱(KBS+ 등)에서 AC(자기실현적 시민) 사용자의 취향을 존중하되, "오늘 당신이 놓치면 안 될 대한민국의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의 큐레이션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은 베넷이 우려한 '파편화된 개인'을 다시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테크놀로지 기반의 해법이다. 기본운영계획에서 "AI 챗봇 서비스 운영 고도화"나 "AI 프리뷰 서비스 품질 개선"이 언급되지만, 이것은 기술적 개선에 그칠 뿐, 공공 서비스 알고리즘이라는 근본적인 철학 전환을 담고 있지 않다.
글로벌 공영방송사들이 '자기실현적 시민(AC)'의 욕구를 정조준하여 위기를 돌파한 사례들은 지금의 KBS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될 것이다. 이들은 "나의 참여가 세상을 바꾸고 나의 취향이 존중받길 원하는" 새로운 시민들의 니즈를 기술과 콘텐츠에 성공적으로 녹여낸 근래 가장 주목받는 공영미디어들의 혁신 사례다.
가장 파격적인 사례는 노르웨이 NRK의 실시간 참여형 드라마 <Skam(스캄)>이다.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는 청소년과 청년이 더 이상 TV를 보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실시간 참여형 드라마를 만들었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SNS 계정을 실제로 운영하고, 방송 전에 실시간으로 클립을 공개하여 시청자를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로 만들었다. 그 결과 노르웨이 인구 약 500만 명 중 주간 순 방문자 수가 120만 명을 넘었고, 전 국민의 50% 이상이 시청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주목할 점은 NRK가 이 드라마를 처음 론칭할 때 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AC들이 '발굴'하는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독일 ARD/ZDF의 <funk(풍크)>는 "공영방송은 왜 꼭 TV 채널이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담한 도전이었다. 그들은 아예 TV 채널이 없는 '콘텐츠 네트워크'를 론칭했다. "KBS 앱으로 오세요"라고 강요하지 않고,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 AC들이 이미 놀고 있는 플랫폼에 70개 이상의 전문 채널을 운영했다. 그 결과 독일 14~29세 인구의 80% 이상이 SNS를 통해 funk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소비하며, 연간 예산은 약 4,500만 유로(약 650억 원) 수준이 소요되었다. 내부 반대가 엄청났지만 경영진은 "시민들이 거기 있는데 우리가 안 가는 게 직무유기"라고 밀어붙였다. 콘텐츠 제작은 외부 인플루언서에게 맡기되, 팩트체크와 윤리 가이드라인은 공영방송 전문가들이 전담하는 협업 모델을 구축했다.
기본운영계획에서 디지털전략국의 유튜브 채널 전략은 "토털 리뷰 기반 채널 등급 산정 및 A등급(연수익 1억 이상) 채널 집중 투자"이다. 이것은 수익 관점의 접근이다. funk의 교훈은 수익이 아니라, 공영방송의 가치를 시민들이 있는 곳에서 전달하는 것이 먼저라는 점이다.
BBC Sounds는 전통적인 라디오를 AC들을 위한 개인 맞춤형 오디오 플랫폼으로 재설계했다. 선형적 채널 중심에서 탈피해, 개인이 좋아하는 음악 믹스, 팟캐스트, 라이브 방송을 모듈화 하여 제공했다. 주간 이용자 수 약 500만 명을 돌파했고, 특히 35세 미만 젊은 층의 이용률이 매년 20% 이상 성장 중이다. 핵심은 넷플릭스처럼 단순히 '많이 본 것'만 추천하지 않고, BBC 전문 큐레이터의 '인간의 추천'과 'AI 추천'을 5:5로 섞었다는 점이다. 독립 제작사와의 상생도 특징으로, 내부 제작물만 고집하지 않고 역량 있는 독립 팟캐스트 제작자들에게 플랫폼을 개방해 생태계를 구축했다.
KBS 라디오센터는 이 모델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기본운영계획에서 Kong 앱의 "UI/UX 전면 개편 및 멀티포맷(보이는 라디오 등) 확대"가 언급되어 있으나, 이는 BBC Sounds 수준의 통합 오디오 플랫폼 전략과는 거리가 있다.
NHK는 AC들이 가장 중시하는 '개인적 효용성'에 집중했다. 단순 뉴스 앱을 넘어, 사용자의 현재 위치 기반 초정밀 재난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민들이 직접 재난 상황을 촬영해 올리는 기능을 포함했다. 앱 다운로드 수 2,000만 건 이상을 기록했으며, 시민들의 제보가 AI 필터링과 데스크 검증을 거쳐 실시간 뉴스 속보로 활용된다. 시민들은 자신의 제보가 뉴스에 반영되는 것을 보며 "나도 공공 안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효능감을 느끼고, 이 효능감이 곧 수신료 납부의 정당성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KBS 재난미디어센터의 "재난K 통합뷰어와 AI 재난 속보영상 구축 활용"은 이 방향의 시도이다. 그러나 NHK 수준의 시민 참여형 재난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려면, 재난미디어센터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사적 플랫폼 전략과 연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공 사례들은 세 가지 공통된 전략적 결론으로 귀결된다. 첫째, 결정적인 순간에 'TV라는 그릇'을 포기하고 가치가 소비되는 지점으로 이동했다는 점. 둘째, 시민에게 콘텐츠 내부의 자리를 내주어 놀게 함으로써 '참여적 시민성'을 높여 주었다는 점. 셋째, 공영의 기준을 품격 있는 교양에서 '시민이 필요로 하는 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재정의
박장범 사장체제에서라도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큰 그림은 법과 제도를 아우르는 거시적 설계가 나온 다음에 가능하겠지만, 그 큰 그림조차도 미리 그려놓고 있어야만 새로운 지배구조가 만들어졌을 때 그 방향을 유도해 낼 수 있다. 새 사장이 와서 새 인력을 구성해서 처음부터 시작하면 너무 늦다. 지금 우리가 당장 현재의 기본운영계획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보자.
1) 전사 차원의 '혁신 태스크포스' 구성: 기본운영계획의 전략기획실 과제 중 "(필요시) 전략 사업 실현을 위한 전사적 현안 회의체 운영"이 언급되어 있다. '필요시'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하다. 방미통위의 정책 방향 변화(편성 규제 완화, 광고 규제 개혁, 공영방송 협약제도, 통합미디어법), 지배구조 전환(이사회 재구성, 사장 선임), 재원 안정화(수신료 통합징수)에 대응하는 전사적 태스크포스를 즉시 구성해야 한다. 이 태스크포스는 보도, 제작, 기술, 경영, 지역 등 각 분야의 중견 실무자들로 구성하여, 새로운 지배구조에 제시할 KBS 혁신 청사진을 내부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2) 공적 서비스와 상업적 활동의 내부 구분 작업 착수: 현재의 사업 구조 안에서, 공적 재원(수신료)으로 수행되어야 할 사업과 상업적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구분하는 기초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회계 분리의 전 단계이며, 향후 BBC 모델의 공적/상업적 영역 분리를 준비하는 작업이다. 기본운영계획의 예산 구조에서, 각 사업의 재원 출처(수신료, 광고, 유통수익, 국고 등)를 명확히 태깅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3) 편성 전략 시뮬레이션: 편성 규제 완화가 현실화될 경우를 대비한 편성 전략 시뮬레이션을 시작해야 한다. KBS 1TV와 2TV의 채널 재정의, 디지털 플랫폼과의 연계 편성, 장르별 최적 유통 경로 설계 등을 전략기획실과 멀티플랫폼센터가 공동으로 연구해야 한다. 기본운영계획에서 편성전략국의 "스톰(StoRRm) V2.0 구축"은 "TV를 포함한 멀티플랫폼 통계 데이터 분석 모델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도구를 활용해, 규제 완화 시나리오별 편성 시뮬레이션을 실시하는 것이 가능하다.
4) 디지털 전략의 통합 거버넌스: 현재 분산된 디지털 관련 업무를 조율하는 전사적 디지털 전략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멀티플랫폼센터의 디지털전략국, 보도시사본부의 디지털뉴스국, 각 센터의 디지털 콘텐츠 담당, 방송인프라본부의 관련 부서 등이 정기적으로 모여 KBS 디지털 전략의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
5) AI 전략의 통합: 앞서 지적한 7~8개 부서에 분산된 AI 관련 사업을 통합 조율하는 AI 거버넌스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미디어연구소의 AX프로젝트팀이 "AI 기반 로봇 프로덕션 요소 기술 개발" 및 "제작 플랫폼의 AI 전환 사업 추진"을 과제로 가지고 있으므로, 이 팀을 중심으로 전사 AI 전략을 조율하는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 다만 기술 중심이 아니라, 제작·보도·편성 현장의 수요를 반영하는 인문학적 관점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6) 지역 서비스 혁신 파일럿: 기본운영계획에서 지역국의 사업은 대체로 기존 프로그램의 유지·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지역 기능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지역 프로그램의 디지털 전환, 지역 시청자 참여 확대, 지역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등을 실험할 파일럿 지역을 선정하여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6시 내고향〉의 "고향아 부탁해" 현지 특별 생방송이 분기별로 계획되어 있으므로, 이를 확장하여 지역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는 시도가 가능하다.
7) PBI 2026 서울 총회를 전략적 기회로 활용: 기본운영계획에 포함된 PBI 서울 총회는 세계 공영방송사들과 KBS의 비전을 공유하는 최고의 기회이다. '서울 선언'을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KBS 내부에서 먼저 혁신의 비전을 정리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 제시해야 한다. 이 총회를 계기로 BBC, NRK, ARD/ZDF, NHK 등과 구체적인 협력 사업(공영방송 공동 OTT, 콘텐츠 교환, 기술 공유 등)을 논의할 수도 있다.
8) 구성원 소통과 혁신 공감대 형성: 조직의 개편과 혁신은 리더의 생각과 노력만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혁신에 동의하고, 다양한 현장의 아이디어들이 결합해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이런 활력 있는 논의를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 기본운영계획에서 대외협력국의 "사보 다양화로 공사 이미지 제고와 대내외 소통 활성화"와 "디지털 사보 개편으로 시청자 의견 수렴"이 언급되어 있다. 사보의 기능을 넘어, 사내 게시판이든 타운홀 미팅이든,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KBS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활성화해야 한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어떤 선택에도 기회비용은 따르게 마련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목표를 세우고, 약간의 부침이 있더라도 그 선택이 최선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각 직종마다 서로 다른 비전을 이야기할 수 있다. 보도 부문에서는 가장 신뢰도 높은 뉴스를 위한 투자를 바랄 것이다. 제작 부문에서는 감동과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을 위한 자원 배분을 원할 것이다. 기술 부문에서는 AI 시대에 유니크한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요구할 것이다. 경영 부문에서는 상업적 수익 확대를 통한 공적 서비스 확장을 목표로 할 것이다.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에 공통의 합의된 목표를 정하고 실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흩어진 목표를 아우를 수 있는 비전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과거 우리는 제한된 상황에서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런데 선택과 집중은 결국 누군가를 배제하고 자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결국 누군가는 소외를 느낄 수도 있고, 자기 업무에 대해 회의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조화와 균형에 대한 비전이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에 조화와 균형이 뒷받침되면, 당장에 우선순위를 갖지 못하더라도, 구성원들은 다음 선택지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계획을 통해 뒷받침된다면, 좌절 없이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KBS는 민간 조직이 아니다. 이 조직은 만들어질 때부터 선험적으로 요구되는 목표와 가치가 내재되어 있었다. ‘공공성’과 ‘공익’이 그것이다. 이 두 개의 가치는 KBS라는 조직의 모든 전략 수립과 정책 실행의 상수(常數)다. 미디어 환경이 아무리 변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전략적 목표와 계획은 이 두 가치 위에서 구축되어야 한다.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AI의 등장으로 과거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통찰을 요구한다.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시청자들은 고독하고 불안한 존재가 되었다. 지금 이들에겐 신뢰할 만하고 정신적 위안을 줄 수 있는 자기실현적 미디어와 콘텐츠가 필요하다. 과거 KBS는 공동체 미디어로서 아니 지금도 ‘6시 내고향’과 ‘아침마당’, ‘한국인 밥상’과 같은 공동체의 기억과 위로의 DNA를 가지고 있다.
바로 그 공동체의 DNA를 되살려보자. 단 ‘공급자’의 마인드는 내려놓고 시청자, 시민들과 함께 KBS 구성원들이 함께 주인으로 운영하는 공동체 공영미디어의 꿈을 꾸어보자.
방미통위가 가동되고, 방송 3법 후속 조치가 시행되고, 새로운 이사회가 구성되고, 새로운 사장이 오기까지 — 그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침묵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 혁신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 방향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준비할 것인가.
선택의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선택할 기회는 남아있다.<ㅇ>
<참고자료>
Ⅰ. 법률 및 공식 문서
「방송법」(법률 제20570호, 2025. 8. 25. 시행).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s://www.law.go.kr
「방송문화진흥회법」(법률 제20612호, 2025. 8. 26. 시행).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s://www.law.go.kr
「한국교육방송공사법」(법률 제20635호, 2025. 8. 26. 시행).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s://www.law.go.kr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법률 제20571호, 2025. 10. 1. 시행).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s://www.law.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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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판결 및 법원 결정
서울행정법원2026. 1. 22. 선고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 판결— KBS 이사7인 임명 취소 처분 취소 소송. [윤석열 전 대통령이2024. 7. 31. 임명한KBS 이사 권순범·류현순·서기석·이건·이인철·허엽·황성욱에 대한 임명처분 취소]
서울행정법원2026. 2. 3. 결정— KBS 이사7인 임명처분 집행정지 신청 인용. [본안 소송 항소심 선고일로부터30일까지 효력 정지]
Ⅲ. 뉴스 보도 및 언론 자료
전병남. (2025. 12. 11.). 방미통위"방송·광고·편성 규제 완화해 생태계 복원". SBS 뉴스. https://v.daum.net/v/20251212160000197
동아일보. (2026. 2. 27.). 방미통위5인체제 가동 눈앞… 국회의장, 비상임위원2명 결재.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60227/133440218/2
파이낸셜뉴스. (2026. 2. 23.). 방미통위 정상화 또 불발… 위원 추천안 무산에'개점휴업' 5달째 장기화. 파이낸셜뉴스.
뉴스1. (2026. 2. 19.). '체제 정당성' 분란 덜어낸 방미통위… 3월'개업' 가시권. 뉴스1. https://www.news1.kr/it-science/cc-newmedia/6076640
뉴스토마토. (2026. 2. 19.). 방미통위 정상화 초읽기… '1호 안건' 시선 집중. 뉴스토마토.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291782
최성진. (2026. 2. 9.). 방미통위, 출범 넉 달 만에 정상화 눈앞… 12일 국회 몫 위원 의결 전망.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244287.html
한겨레. (2026. 3. 4.). 방미통위·방미심위 가동 임박… 자격논란 등 파장도. 한겨레. https://v.daum.net/v/20260304085453985
네이트뉴스. (2026. 2. 26.). 방미통위3인 체제로… 방송3법 규칙 마련 표류 지속. 네이트뉴스. https://news.nate.com/view/20260226n40732
성윤수. (2026. 1. 22.). 법원"KBS 이사7명 임명 취소"… 박장범 사장 퇴진 요구 커질 듯. 국민일보. https://www.kmib.co.kr/article/view_amp.asp?arcid=1769071638
최성진. (2026. 2. 3.). 법원, '임명취소' 항소한KBS 이사7명에 거듭'임명 정지' 결정.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243331.html
지디넷코리아. (2026. 1. 21.). 법원, 2인체제 방통위가 추천한KBS 이사7인 임명 무효. 지디넷코리아. https://zdnet.co.kr/view/?no=20260122224814
조선일보. (2026. 1. 22.). 법원"'2인 체제' 방통위KBS 이사 임명 취소".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6/01/22/XE6NY2HIIJAVPM2VTPQAYR2Q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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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 (2025. 8. 5.). 방송법 개정안 통과에"공영방송의 새로운 시작". 한국기자협회. https://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59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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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학술 논문 및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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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혜. (2017). 디지털 시민성의 개념 탐색— '자기실현적 시민모형'을 중심으로. [학술 논문; 본 논평의 첨부 파일'혁신의 방향과 제안'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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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해외 공영방송 관련 자료
BBC Studios 및 BBC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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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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