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6월 30일 월요일 -
♡ 표토르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안단테 칸타빌레' 현악 4중주 제1번 라장조 Op.11 중 2악장/ ''Andante Cantabile' String Quartet No. 1 in D major, Op. 11, 2nd movement>
■ https://youtu.be/ZVs2_EwgkMY?si=9wMVnSxVbkDxfXUl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지 않더라도 이 곡의 이름만큼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안단테 칸타빌레'... 음악 기호 그대로 직역하면 '느리게 노래하듯이' 지만, 개인적으로는 '노래부르듯이 천천히'라는 번역이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악기들이 약음기(弱音器)를 사용하여 연주하기 때문에 소리가 부드럽고 절제되어 있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모든 연주자들이 약음기를 쓰진 않지만) 마치 속삭이듯 위로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같다. 한 달의 마지막과 한 주의 시작이 만나는 오늘같은 날 아침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하기에 잘 어울리는 곡이다.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는 단순한 음악 작품 이상의 깊은 인간적 감동과 예술적 영감이 담겨 있는 특별한 곡이다. 이 곡에 담겨있는 여러 사연들 때문이다. 이 곡은 차이콥스키가 31살되던 1869년 여름, 신경쇠약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시골에 있는 누이동생 알렉산드라(Aleksandra Ilinichna Davydova)의 집에 머물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어느날 차이콥스키는 서재의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는데, 마침 창문 밖에서 일하던 벽난로 수리공(페치카 수리공)이 부르는 러시아 민요 가락이 들려왔다. 이 민요는 '소파에 앉은 바냐(Vanya sat on the couch)'라는 제목의 러시아 전래 민요로, "바냐는 긴 의자에 앉아 럼주를 술잔에 따랐다. 반도 따르지 않고 카치켄카에게 권했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일상의 안온한 느낌을 주는 민요였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차이콥스키에게 이 평범한 일상을 노래하고 있는 민요는 삶이 꼭 고통스러운 면만 있는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 듯하다. 차이콥스키는 즉시 이 멜로디를 스케치해두었고 2년 뒤 그의 현악4중주 제1번 D장조 2악장에 이 선율을 넣어 곡을 완성하게 된다.
* 마침 유튜브에 '안단테 칸타빌레'의 모티브가 되었던 민요 '소파에 앉은 바냐'가 올라와있어 소개한다. 일상의 평범함 속의 작은 행복을 노래하는 이 민요에 감동받은 차이콥스키의 표정이 궁금해진다.(노래는 고작 1분도 되지 않는다.)
https://youtu.be/VwKs3RvC6Ac?si=4d20tfUlA7aBwzHw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평소 차이콥스키의 예술적 재능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다소 인색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1876년 톨스토이가 모스크바 음악원을 방문하는 일이 생기게 되자 음악원에서는 톨스토이를 위해 특별한 환영음악회를 열게되었는데, 이때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가 연주되었다. 민요의 선율이 현악 4중주곡으로 아름답게 재탄생한 이 곡이 시작되자마자 톨스토이는 연신 "아름답다!, 아름답다!"라며 감탄했고, 급기야 "음악이라는 예술의 힘이 이런 거구나!"라며 감동한 나머지 눈물까지 보였다고 한다. 이 모습을 직접 목격한 차이콥스키는 그가 평소 존경하던 톨스토이의 감동받은 모습에 같이 감격했고, 그날의 일을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그때처럼 기쁨과 감동을 가지고 내가 작곡자가 된 걸 자랑으로 생각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며, 무엇보다 기쁜 건 눈물이 많은 남자가 나 말고도 또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나는 그때만큼 작곡가로서의 긍지를 느끼고 감격했던 적이 없었다"라고.
이 곡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어쩌면 차이콥스키의 깊은 고통과 애수가 이 곡에 함께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곡을 쓰기 전 차이콥스키는 벨기에 출신 메조소프라노 가수 데지레 아르토(Désirée Artôt)와 사랑에 빠져 그녀와 결혼하려 했었다가, 주변의 반대와 방해로 무산되면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있었다. 결혼이 무산된 결정적 이유는 아르토를 짝사랑했던 한 남성이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라며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알리면서 급기야 차이콥스키와 약혼까지 했음에도 아르토가 다른 남자(스페인 가수라고 한다)와 결혼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차이콥스키의 동성애 성향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고, 실제 차이콥스키가 아르토에게 이성으로서 사랑을 느끼고 약혼까지 하려고 했던 걸 보면, 오히려 이 사건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물론 차이콥스키 스스로도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더 집착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차이콥스키 연구자들은 차이콥스키의 동성애 성향은 어머니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데, 어릴 때부터 겁이 많고 내성적이었던 차이콥스키는 항상 어머니의 손길과 사랑이 필요했었다. 그런데, 그가 14살 때 어머니가 콜레라로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차이콥스키는 평생 모성애에 대한 갈망을 안고 살았으며 이 때문에 타 여성의 몸에 대한 거부감이 자연스레 동성애적 성향으로 발전했을 거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동성애적 성향은 차이콥스키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제국법률학교(Imperial School of Jurisprudence) 재학시절, 당시 제2의 푸시킨이라 불린 시인 알렉세이 아푸힌(Aleksey Apukhtin)과 블라디미르 제라르드(Vladimir Gerard)와 관계에서 더 발전했을 걸로 보고 있다.(단순한 우정을 넘어서는 관계였다는...)
어떻든 아르토와의 결별에 충격받은 차이콥스키는 끔찍한 신경쇠약증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이때문에 1869년 그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누이동생의 집으로 요양을 갔다. 그리고 그 덕에 이 곡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차이콥스키 개인으로선 가슴아픈 사연이지만, 그 고통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되어 우리에게 남았다는 점에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차이콥스키가 이 곡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24년 뒤 이 곡은 또 한 번 세상을 감동시키게 되는데 그 사연의 주인공은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다. 그녀는 생후 19개월에 뇌척수막염으로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고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다 가정교사 앤 설리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말과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고, 두 사람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마침내 미국 최초의 시청각장애인으로 학사 학위를 따낸 여성이다. 이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몸으로 작가이자 교육자, 그리고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며 장애인 권익과 여성 참정권, 노동자 권리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1917년 당시 미국의 유명한 현악 4중주단 중 하나였던 졸너 4중주단(Zoellner Quartet)은 헬렌 켈러의 초청으로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녀는 그들에게 '안단테 칸타빌레'를 연주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졸너 4중주단은 정성을 다해 연주를 시작했고, 헬렌 켈러는 악기소리에 공명하는 탁자 위에 손끝을 올려 진동을 느끼며 음악을 "들었고", 시간에 맞춰 몸을 흔들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연주 후 그녀는 이 경험을 "기적이 일어났다. 시각장애인에게 시력이 주어지고, 청각장애인의 귀가 달콤하고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며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몸으로 전해진 이 곡의 놀라운 감동에 대해 감격했다.(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옴직한 이야기여서 검색해보니, 1922년에 창간된 리더스 다이제스트에는 실려있지 않고, 1917년에 '뮤지션'이란 잡지에 이 사연이 소개되어있다.)
'안단테 칸타빌레', 본래 '노래 부르듯이 천천히'라는 뜻의 음악 용어지만, 이제 이 곡은 워낙 유명해져서 현악4중주 전체보다도 2악장만 독립돼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민요를 가장 예술적으로 조화시킨 기악곡'이라는 평가와 함께) 앞서 요요마의 첼로와 현악 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안단테 칸타빌레'를 감상했는데, 이는 1888년 2월 파리에서 러시아 첼리스트 아나톨리 브란두코프(Anatoly Brandukov)의 연주회가 열렸는데 이때 그를 위해 차이콥스키가 직접 첼로와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버전이다.
첼로 버전은 첼로의 깊고 풍부한 음색으로 이 곡이 가진 애수에 찬 선율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요즘은 현악 4중주 버전보다 첼로와 현악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이 더 자주 연주된다.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를 포함하고 있는 현악 4중주 1번은 차이콥스키가 모차르트에게 바치는 오마주같은 성격도 가지고 있다. 단순한 단선율에서 시작해 복잡한 대위법적 구조로 발전하는 형식이나 부드러운 부분과 강한 부분이 날카롭게 대비되며 드라마틱한 구성을 보여주는 형식이 그렇다. 그래서 음악 평론가들은 현악 4중주 제 1번을 고전적 형식과 러시아적 정서의 완벽한 결합이라며 높게 평가한다.(러시아 최초의 현악 4중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러시아 작곡가가 작곡한 현악 4중주 곡 중에서는 최고라고 평가받는다.)
■ 앞서 첼로와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을 감상했으니 이번에는 원래의 현악 4중주 버전으로 가장 유명한 연주버전 중 하나인 율리아 피셔 4중주단(Julia Fischer Quartet)의 2022년 라인가우 음악제에서의 실황연주로도 감상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1w7w6J5ODqc (11:45부터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 요요마의 첼로 버전 못지 않게 사랑받는, '녹아내리는 아름다움의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미샤 마야스키의 첼로가 전하는 감동적인 해석으로도 감상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J0JmiZ57Akk
♥ 우연의 음악
- 유 하
꽃피는 소리, 민들레의 음표들,
브라스 밴드 행렬로
나무를 타고 오르는 나팔꽃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의 종달새 울음
그리고, 내 수만의 몸들을 빠져나와
달려가는 영혼의 바람소리
그대가 받은 이 生도
아주 우연한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