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하늘을 뚫은 한줄기 빛처럼...

- 2025년 7월 1일 화요일 -

by 최용수

♡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즉흥곡 제 3번 내림사장조 Op.90, D.899/ Impromptu No.3 in G-Flat Major, Op.90, D.899>


https://www.youtube.com/watch?v=FxhbAGwEYGQ


새벽 하늘이 회색의 무겁고 짙은 구름으로 덮혀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습하고 뜨거운 아침 공기를 '쏴아아'하고 빗방울들이 떨어지며 잠시 청량한 바람을 일으킨다.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7월의 첫날 아침, 일찍 찾아온 더위를 살짝 누그러뜨려 주는 이 아침 소나기가 나쁘지 않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더울 거라는 뉴스에서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위해 지난 몇 십년간 온 세계가 힘들게 맺은 기후협약이 연이은 전쟁과 침체된 경제부터 살리겠다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무효화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나만 살고 보자'는 식의 이 시대의 어리석은 생존논리가 결국 다음 세대들에게 엄청난 질곡이 될 것이 뻔한데도 이를 뒤엎을 상생과 공존의 논리는 아직 그 힘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우리 세대에 이런 인류의 실존적 위기를 고민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상생과 공존, 지속가능한 미래... 그리고 이 숙제는 우리 세대의 노력만으로도 풀기 어려운 과제다. 자연이 인류에게 남겨준 시간은 이제 정말 얼마 안남았는데 우리 자식세대에게 우리는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마음이 무거운 7월의 첫날이다. 이 무거운 아침의 고민을 덜어 줄 음악을 고르다 회색빛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온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슈베르트의 즉흥곡 3번(Op.90)을 듣는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인류에게 선물한 마지막 선물같은 곡이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운명같은 음악가의 길을 걸었던 슈베르트, 짧았던 일생 동안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던 가난과 질병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류에게 정말 선물같은 곡들을 많이 남겨주고 갔다. 600여 곡의 가곡과 오늘 소개하는 피아노 곡과 실내악곡, 그리고 교향곡까지 무려 1,500여 곡이나 된다. 이제 인류 전체의 자산이 된 그의 많은 곡들 중에서 오늘 소개하는 이 피아노 곡은 슈베르트의 장기였던 서정적인 가곡의 멜로디와 조성의 변화가 이끌어내는 미세한 구조적 아름다움을 함껴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한 곡이다.

처음 슈베르트는 작품번호 90번의 4곡의 즉흥곡들이 4악장의 소나타 형식의 곡으로 출판될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실제 각 곡들은 어느 정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보이기도 하고 4곡을 하나로 모았을 때 구조적 완결성도 조금 느낄 수 있어 실제 하나의 대형 소나타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출판사에서는 대곡 형식의 소나타보다는 즉흥곡, 랩소디, 판타지, 프렐류드, 인터메쪼 등과 같은 소품 형식이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을 위한 악보 시장에서 더 잘 팔린다는 이유로, 제목을 ‘즉흥곡’으로 바꾸어 출판했다고 한다.(그들의 대중적 상술이 얄밉기도 하지만, 긴 곡의 클래식 작품이 경원시 되는 요즘 세태를 보면 그들의 이 얄팍한 상술 덕에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아침의 클래식 소품 하나를 건진 셈이다.) 이로 인해 요즘은 각각의 독립된 소품처럼 연주되지만, 슈베르트 본인은 더 큰 구조적 단위로 의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음악학자들은 이 곡들이 서로 조성이나 형식, 분위기에서 어느 정도 연관성을 보이긴 하지만, 1번을 제외하곤 전통적인 소나타(빠름-느림-스케르초-빠름)의 4악장 구조와 일치하지 않고 곡들의 분위기도 조금씩 차이가 있어 한 곡의 완성된 소나타로 보기에는 쉽지 않다고 한다.


즉흥곡(卽興曲, impromptu)은 작곡가가 즉흥적인 악상에 따라 작곡한 곡을 뜻하는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장르다. 흔히 재즈연주처럼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화음에 맞춰 선율과 리듬을 창작해 연주하는 '즉흥'이라는 의미보다는 일반적인 작곡법(대위법과 규칙적인 화성법에 따르는)에 얽매이지 않고 작곡자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악상과 음악적 영감을 중심으로 작곡한 곡이라는 의미다. 즉흥적인 재즈연주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화성과 리듬 위에 펼쳐지는 변주인 것처럼 낭만주의 시대의 '즉흥곡'들도 고전주의에서 완성된 대위법과 화성의 규칙 위에서 실험적인 형식을 통해 작곡가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화려하고 복잡한 구성의 대곡들이 많았던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들이 소수의 왕족과 귀족들의 취향을 겨냥했다면,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가들은 산업혁명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중산층들이 생겨나고 그들이 집집마다 피아노를 들이기 시작하자 그들의 감수성에 맞는 소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장르들이 즉흥곡, 랩소디, 판타지, 프렐류드, 인터메쪼 등이다.


즉흥곡을 하나의 장르로 유행시킨 이는 보헤미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인 얀 바츨라프 보리세크(Jan Václav Voříšek, 1791-1825)로 알려져 있다. 그는 프라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음악을 공부하다 빈으로 건너와 네포무크 훔멜(1778~1837)로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이 당시 그가 작곡한 미뉴에트를 중심으로 하는 가벼운 3부 형식(미뉴에트-스케르초-첫 미뉴에트의 변형 반복인 트리오)의 곡들이 빈에서 유행하며 '즉흥곡' 장르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즉흥곡' 장르가 유행할 당시 슈베르트는 징병을 피해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시기 그는 다수의 가곡들과 기악곡을 작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반대로 음악가의 길을 걸을 수 없게 되자 교사를 그만두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정교사를 하며 나그네같은 고달픈 삶을 살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작품들은 당시에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는데, 베토벤이 죽기 1년 전 그가 1827년(오늘 소개하는 '즉흥곡'(D.899)도 이해에 발표되었다)에 펴낸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 중 일부 악보를 보게되고, 그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해주게 되는데 이로써 슈베르트의 이름도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슈베르트의 아버지도 슈베르트가 음악가로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베토벤은 이내 사망하였고, 슈베르트 또한 그 이름을 채 알리기도 전인 1828년 갑작스런 병으로(식중독?, 장티푸스?, 매독?!) 세상을 뜨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슈베르트는 어린시절 미성의 목소리로 합창단 활동을 했던 때문인지 '가곡의 왕'이라 불리며 평생 600여 편의 가곡을 썼지만, 다수의 교향곡과 소나타와 같은 기악곡 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오페라도 작곡했다. 슈베르트는 평생 베토벤과 같이 구성적으로 잘짜여진 기악곡을 쓰고 싶어했었는데, 어쩌면 그의 '즉흥곡'(D.899)은 그가 쓴 수많은 가곡들에 담긴 감성과 베토벤과 같이 구성적으로 잘짜여진 기악곡을 쓰고 싶어했던 욕구가 절충된 곡일지도 모르겠다. 선율의 아름다움과 간결하지만 짜임새있게 감정을 전달하는 구조를 가진 이 곡은 이후 쇼팽의 '즉흥 환상곡'처럼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다양한 '서정적 성격 소품'들에 영향을 끼쳤다.




즉흥곡 3번에는 악보 출판과 관련하여 좀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슈베르트가 1827년 Op.90의 즉흥곡 4곡 의 작곡을 마쳤을 때 출판사는 이 중 1번과 2번만 먼저 출판하였다. 그리고 3번과 4번은 슈베르트 사후 30년이 지나서야 칼 해스링거(Carl Haslinger)에 의해 출판되었다. 그런데 이 당시 칼 해스링거는 어처구니없게도 즉흥곡 3번의 조성을 바꿔버린다. 슈베르트의 원래 자필악보에는 명백히 G♭ Major(내림사장조) 2/4박자로 표기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출판사는 G♭ Major라는 흔하지 않은 조성(플랫 6개)이 아마추어들이 배우기 까다롭다는 이유로 G Major 4/4박자(사장조)로 바꾸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슈베르트 사후의 일이긴 하지만 생전에 슈베르트는 이러한 출판사의 '조바꿈'을 무척 싫어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G Major로 바뀌면 곡의 따뜻함이 없어지고 너무 밝고 가벼운 곡으로 변한다며 강하게 반대했다고 하는데, 사후에 인정받기 시작한 슈베르트의 악보를 앞다퉈 팔기 위해 저지른 출판사들의 횡포가 씁쓸한 대목이다. 흥미롭게도 프란츠 리스트가 이 곡을 편곡한 버전도 존재한다.

리스트의 편곡 버전은 곡의 시작 부분에서 다섯 번째 마디에 나오는 왼손의 세 번째 음을 살짝 바꿔 곡의 분위기를 리스트적인 느낌으로 만들었고, 곡이 다시 처음의 선율로 돌아오는 재현부에서 원래 슈베르트는 단순하고 담백하게 멜로디를 반복했다면, 리스트는 여기서 훨씬 화려하게 두 손으로 옥타브(같은 음을 높이만 다르게 동시에 치는 방식)로 아르페지오(여러 음을 빠르게 흩뿌리듯 연주하는 기법)를 넣어 곡을 꾸몄다. 이 부분은 피아노로 연주할 때 손이 크게 움직이고, 소리도 훨씬 웅장해진다. 이렇게 바뀐 곡을 들으면, 원곡의 소박하고 서정적인 느낌보다는 조금 더 화려하고 과장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어떤 평론가는 “이렇게까지 꾸미면 피아노보다는 오히려 하프 같은 악기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고...(리스트와 슈베르트의 삶이나 음악 스타일이 원체 다르다 보니 살짝만 손을 대더라도 그 차이는 정말 크게 느껴질 법도 하다.)


■ 앞서 전설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의 연주로 감상했다면, 역시 내면적 성찰이 깃든 연주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연주로 3번을 비교 감상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v84VqlMP9So


■ 즉흥곡 3번과 함께 가장 많이 연주되는 2번은 연세가 드실수록 더 소리가 따뜻해지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로 감상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f1p75jqhXqI


■ 글을 올리고 나서 이 곡을 G Major 4/4박자(사장조)로 연주한 재밌는 영상을 찾았다. 기타 듀오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3번도 은근히 매력이 있다. 피아노보다 연주하기가 더 까다로운 기타라서 그런지, 사장조로 들어도 크게 거부감은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MSiXdJOoP8E&t=23s



기다림


- 박경리


이제는 누가 와야 한다


산은 무너져 가고

강은 막혀 썩고 있다

누가 와서

산을 제자리에 놔두고

강물도 걸러내고 터주어야 한다


물에는 물고기 살게 하고

하늘에 새들 날게 하고

들판에 짐승 뛰놀게 하고

초목과 나비와 뭇 벌레

모두 어우러져 열매 맺게 하고


우리들 머리털이 빠지기 전에

우리들 손톱 발톱 빠지기 전에

뼈가 무르고 살이 썩기 전에


정다운 것들

수천 년 함께 살아온 것

다 떠나기 전에


누가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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