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2일 수요일 -
♡ Ola Gjeilo(올라 야일로, 1978~ )
<일출을 위한 미사 / Sunrise Mass>
■ https://www.youtube.com/watch?v=y0lD21h4iR8
지난 밤은 어제 하루 동안 태양이 남긴 열기가 채 식지 않아 후덥지근한 공기로 숙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떠 아파트 주변을 돌며 걸었다. 새벽 다섯 시... 창문을 열고 맞았던 바람보다 훨씬 시원하고 습도도 덜한 바람이 간밤의 불쾌한 수면의 기억을 날려 주었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짙은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새들도 이 상쾌한 아침이 반가워서인지 여느 날보다 더 부산한 울음 소리로, 바람이 지나간 아파트 화단을 채운다. 40여 분 넘게 동네를 돌고 있으니 멀리 동쪽 하늘에서 조금씩 황금빛의 기운이 비치기 시작한다.
내 기억 속 어린 시절 이맘 때는 빗소리에 잠들고 또 그 빗소리로 아침을 맞는 장마가 한창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골목길을 가득 메운 우산들, 일부러 물웅덩이를 밟고가는 노랗고 빨간 색의 짓꿎은 장화들... 기말고사도 끝나 다가올 여름방학에 대한 기대(期待)로 떠들석했던 등교길... 그게 벌써 40여 년도 더 된 기억이다.
10여 년 전 쯤 우리나라에 장마가 사라지고 있다는 내용의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향후 10년 뒤면 우리나라는 여름 장마가 사라지고, 4계절 대신 건기와 우기의 아열대 기후대로 바뀔 지도 모른다고 예견했었는데 설마 그 예상대로 세상이 변하고 있는건지...
아침 산보를 마치고 책상을 정리하며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있는데 문득 '일출을 위한 미사'라는 독특한 제목의 현대 클래식 음악이 떠올랐다. 작곡자 야일로의 곡 소개글이 인상적이었었는데 “(이 곡은) 별들 사이에서 시작해, 점차 지구와 인간, 그리고 나 자신에 이르는 영적·존재론적 여정을 담고 있다"고 했다. 하필 제목에 가톨릭의 전례음악인 '미사(Mass)'라는 제목이 붙어 종교음악으로 작곡된 줄 알았는데, 미사의 형식과 구성은 따왔지만 곡은 현대적인 화성의 우아한 합창과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어울려 울림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다.
요즘은 아르보 패르트나 에이나우디 같은 현대 클래식(?, 크로스 오버!) 음악 작곡가들의 작품들도 유튜브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보니 가끔은 이런 곡들도 소개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을 '고전음악'이라고 기계적으로 번역하기 힘든 이유는 '클래식'이라는 이름의 경계가 역사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흔히 문학과 미술에서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초현실주의 처럼 역사 속에 드러난 사조적 특징을 구분해 부르지만, 클래식 음악은 사실 이 모든 걸 다 아울러 그냥 쿨하게 클래식 음악이라고 통칭하는게 재밌다. 바흐와 헨델(바로크)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고전주의) 그리고, 쇼팽, 슈만, 브람스(낭만주의) 심지어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막스 리히터의 음악까지 다 클래식 음악 장르로 통칭해 부를 수 있으니 말이다. 클래식 음악을 대중들이 좀 어렵게 느끼게 만드는 게 시대마다 장르와 형식에 따라 수많은 이름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인데, 그나마 익숙한 왈츠와 미뉴에트, 세레나데까지는 괜찮은데 에튀드, 녹턴, 현악 N중주곡, 각 악기별 협주곡에 교향시, 교향곡까지 거기다 오페라, 가곡, 발레음악, 민족주의 음악에 까지 이르면 도대체 클래식 음악이란 이름 안에 포함되지 않는 음악이 있을까 싶은 정도다.(그리고 현대 음악들 중에는 '현대 클래식(!) 음악'으로 따로 분류하는 음악들도 있다. 야일로의 '일출을 위한 미사'도 이 장르로 분류될 수 있다.)
이 곡은 노르웨이 출신의 현대 클래식음악 작곡가 올라 야일로(Ola Gjeilo)가 2008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Sunrise Mass>는 합창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4악장 구조의 미사곡인데, 전통적인 라틴어 미사 텍스트를 사용하지만, 각 악장의 제목을 영어로 붙여 음악적·정신적 여정을 표제처럼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The Ground'는 네번째 곡이다.
야일로는 앞서 이 곡을 소개하며 인용한 글처럼 이 작품을 통해 현대인들이 현재의 불안에서 벗어나 우주에서 비롯된 '나'라는 존재에 대한 탐색의 여정을 거쳐 치유와 위로, 자기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을 듣다보면, 고통스런 현재를 천천히 지우고 해방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일출을 위한 미사'의 각 악장별 표제와 설명은 다음과 같다.(곡의 각 악장별 소개글을 유튜브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어 부득이하게 퍼플렉시티 AI에게 조사시켜 얻은 내용임)
The Spheres(Kyrie): 우주의 신비와 무한함을 표현하는 듯한 몽환적이고 투명한 화성, 현악기의 미세한 떨림과 합창의 긴 호흡이 어우러진다.
Sunrise(Gloria): 서서히 밝아오는 빛과 희망을 상징하는 듯, 리드미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펼쳐진다.
The City(Credo): 인간의 삶과 공동체, 도시의 역동성을 반영하며, 다양한 리듬과 하모니가 교차한다.
Identity & The Ground(Sanctus/Benedictus & Agnus Dei): 자기 발견과 영적 귀결, 그리고 ‘대지’에 뿌리내리는 안식의 감정을 담는다. 마지막은 해방, 해소, 평온의 정서로 곡이 마무리된다.
<Sunrise Mass>는 이미 유수의 세계적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자주 연주되는 곡이며 현대 합창음악의 대표곡으로 인정받고 있는 작품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올라 야일로(Ola Gjeilo)는 1978년 노르웨이 스쿠이(Skui)에서 태어났다. 이 친구(연하기도 하지만, 이 호칭은 조금 질투에 가깝다)도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시작할 정도로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노르웨이 음악원(Norwegian Academy of Music)에서 클래식 작곡을 공부한 후, 영국 왕립음악원(Royal College of Music)과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The Juilliard School)에서 수학하여 작곡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프리랜서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그의 작품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합창곡들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고, 정통으로 클래식 과정을 공부했지만, 재즈와 영화음악, 심지어 미술과 건축 등 다양한 방면의 관심과 재능을 음악으로 녹여내 그 폭과 깊이가 상당하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도 뛰어나 자신의 합창곡 위에 즉흥연주를 더하는 공연도 그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다.
그의 작품에 대해 야일로 본인 스스로 "헨델, 모차르트,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등 고전 작곡가뿐 아니라, 영화음악 작곡가 토마스 뉴먼,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 팻 메시니 등에게서도 영감을 받았다. 또한 유리 예술가 데일 치훌리, 건축가 프랭크 게리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으니 이 젊은 작곡가(?! 올해로 벌써 47살이다.)의 폭과 깊이가 부러울 따름이다.
■ 그가 2012년에 발표한 합창곡 <Serenity (O Magnum Mysterium)>도 함께 감상해보자, 이 곡은 라틴어 성가 텍스트인 ‘O Magnum Mysterium(오 위대한 신비여)’를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이 곡은 SSAATTBB(8성부 혼성합창)와 바이올린 또는 첼로 솔로가 함께하는 편성으로, 약 6분 길이의 작품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Al6CMyLmOvU
■ 야일로는 직접 자신이 피아노를 즉흥적으로 연주하며 합창단과 공연하기도 하는데 Sofia Vokalen Ensemble과 야일로가 함께 한 연주 'Ubi Caritas'(성 목요일 발씻김 예식의 송가)도 감상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OZpQv_EZipQ
■ 야일로는 피아니스트로서도 아름다운 피아노 솔로곡을 많이 작곡했는데, 그의 피아노 솔로 앨범전체가 유튜브에 올라와있어 소개한다.(편집용 BGM을 찾다가 알게 된 멋진 곡들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fxLA1Cl2n34
■ <Sunrise Mass> 전 곡을 처음에 소개한다는 게 아침 바쁜 시간에 놓쳐버렸다. 빌니우스 벨칸토 합창단과 리투아니아 국립 필하모닉의 연주로 전곡을 감상해보자. ( 00:28 1. The Spheres 05:51 2. Sunrise 16:53 3. The City 27:57 4. Identity & The Ground)
- https://youtu.be/-NXEVaciIKM?si=DRY2AFaMUXmN6Yi8
♥ 일출
- 함기석
팽팽한 대기
팽팽한 지평선
차디찬 적막이 흐르고 적막이 흐르고
눈 덮인 들판 끝으로
먹물처럼 퍼지는 여인의 외마디 비명
놀란 새가 푸드덕 허공에 희디흰 칼금을 긋는다
하늘의 회음부가 예리하게 절개되고
아기 울음 터진다
사방으로 빛이 터진다
눈 뜨는 돌
눈 뜨는 대지
샘물이 걷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