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민 살아진다"

- 2025년 7월 4일 금요일 -

by 최용수

♥ 마누엘 드 파야(Manuel de Falla, 1876~1946)

< 발레음악『사랑의 마술사』중 '불의 춤' / 'Danza ritual del fuego' from 『El amor brujo』


https://www.youtube.com/watch?v=-G5PnRDSbDk


태양이 먼 산 사이로 힘찬 빛을 뿜어대며 얼굴을 내밀더니 이내 짙은 구름에 얼굴을 가려버렸다. 요즘 해가 언제 뜨는 지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해 뜰 무렵 시계를 보니 5시 20분이다.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니 대지도 미처 그 뜨거운 열기를 다 식히지 못하는 모양이다. 간밤에 선풍기 바람덕에 잠이 들기는 했는데, 타이머가 꺼지고 나서부터 땀이 옷을 적시기 시작했는지 일어나 보니 면티의 어깨와 겨드랑이 쪽이 눅눅하다. 차라리 집밖을 나서니 어디서 불어오는지 시원한 바람이 밤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

장마가 사라지고, 열대야에 밤잠을 설치고, 무더위에 안타까운 사망소식까지... 이제 겨우 여름의 초입일뿐인데...


우리가 살면서 가장 힘들고 두려운 순간은 아마도 다가 올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어떤 일도 하지 못할 때가 아닌가 싶다. 천재지변(天災地變)처럼 한 개인의 인과율(因果律)을 넘어선, 우주적 인과율에 얽힌 그런 큰 사건은 그냥 받아들이는 일 말고는 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긴 하다.

하지만, 내게 다가오는 미래 시간의 대부분은 내가 과거와 현재에 결정하고 선택했던 일들의 인과율을 따라 벌어지는 일이다. 요즘 지구가 이렇게 뜨겁게 요동치는 이유가 인류의 과도한 탄소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라면, 사실 인간들에겐 아직 미래를 바꿀 희망은 있다. 그런데, 인류의 생존과 존속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을까 싶어도, 지금 세상을 움직이는 자본과 권력들은 '타인들의 미래의 생존'보다는 '지금 당장의 나의 욕망'을 부추기는데만 여념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앞에서의 말을 번복해야겠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힘들고 두려운 순간은 아마도 다가 올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어떤 일도 하지 못할 때'가 아니라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낄 때'라고. 거대한 권력과 자본에 맞설 수 없는 하찮은 개인이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살민 살아진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저 감동적인 대사는 그냥 체념하고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이길 수 없는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안간힘도 다해야 하지만, 또 힘이 생기면 저항하고 부딪히며, 온 몸의 시간이 상처투성이로 뒤덮인 그 신산(辛酸)한 삶을 살아낸, 인간의 위대한 서사가 '살민 살아진다', 이 여섯 글자에 담겨있다. 하찮은 개인(?!)들이 어쩌면 가장 위대한 인류의 참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작은 개인들이 모여 '살민 살아진다'는 각오로 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놓을 순 없을까?




오늘 아침은 지난 밤 후덥지근한 열대야에 잠을 설친 기억때문인지 마누엘 드 파야의 '불의 춤'을 골랐다. 가뜩이나 더워서 힘들어 죽겠는데 '또 불이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음악이야말로 오늘 아침을 또 '살민 살아진다'의 각오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아침 발걸음 같은 느낌의 곡으로 한 주의 마지막날 을 또 힘내서 버텨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 때 PD들이 무의식적으로 드뷔시나 라벨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BGM으로 고르게 되는데 아마도 그건 어떤 상황의 영상이든 현장음을 줄이고 인상주의 음악을 흘려보면 묘하게 영상과 음악이 맞물려 서로 녹아들어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인상파 회화처럼 인상주의 음악은 그 자체로 빛나지 않고 수시로 변화하는 빛에 반응하는 대상의 분위기와 느낌을 눈이 아닌 귀로 보게 하는 착각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마누엘 드 파야의 음악도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처럼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 같다. 아마가 그가 1907년~1914년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교류했던 드뷔시, 라벨, 듀카 등의 영향이 그의 음악에도 스며든 때문일 것이다.


파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카디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발렌시아 출신의 상인이었고, 카탈루냐 출신의 어머니는 교양있고 피아노도 잘 치는 그런 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파야는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피아노와 예술적 교양을 배웠다. 파야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뿐만 아니라 문학, 연극에 관심이 많았는데 집에서 직접 인형극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공연하기도 했고, 작은 규모지만 잡지도 발간하는 등 소위 예술적 싹수를 일찍부터 보였다. 하지만 가족의 경제적 상황이 항상 넉넉했던 것은 아니어서 가족들이 마드리드로 이주한 후 형편이 어려워지자 파야는 피아노 교습을 하며 생계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마드리드 음악원에 입학하게되고 당시 스페인 민족음악 부흥의 선구자인 펠리페 페드렐(Felipe Pedrell)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스페인 고유의 민속적 요소와 예술음악의 결합이라는 평생의 음악적 방향성을 이 무렵부터 확립하게 된다.

파야의 음악은 스페인 사람들의 정열과 삶에 대한 낙관, 그리고 안달루시아 지방의 플라멩코와 칸테 혼도(깊은 노래)에 담긴 정서가 예술적으로 승화되고 있다고 평가받는데,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스페인의 고유한 색채와 민족적 리듬을 고집스럽게 지켜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교류했던 드뷔시, 라벨은 그의 이런 음악적 어법을 한층 세련되게 만들어주는데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파야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페인으로 돌아와, 이후 대표작인 발레음악 <사랑은 마술사(El amor brujo)>를 작곡한다. 이 작품은 안달루시아 집시 전설을 바탕으로 한 발레-판토마임으로, 1915년 마드리드 테아트로 라라에서 초연되었다. 초연 당시에는 집시 무용수 파스토라 임페리오(Pastora Imperio)의 요청으로 집시적 색채가 강한 ‘기타네리아’(집시극) 형식으로 만들어졌고, 이후 몇 차례 개정되어 오늘날의 관현악 버전으로 자리잡았다.


오늘 소개하는 ‘불의 춤(Danza ritual del fuego, Ritual Fire Dance)’이 바로 발레음악 <사랑은 마술사> 중 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다. 이 곡은 극중 여주인공 칸델라가 죽은 남편의 유령을 쫓아내기 위해 밤중에 불가에서 집시들과 함께 추는 주술적 의식의 춤을 묘사하고 있다. 집시들은 원을 그리며 불을 피우고, 칸델라는 강렬하고 반복적인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음악은 스페인적 선율, 기타를 연상시키는 피아노와 현악기의 리듬, 그리고 불꽃이 튀는 듯한 트릴과 불협화음이 어우러져 있다. 이 춤을 통해 유령이 불길 속으로 사라지며, 칸델라는 마침내 자유를 얻게된다는 것이 이 곡 속에 담겨있는 서사다.(곡의 소재가 된 집시들의 '불의 춤'은 실제로 집시 공동체에서 행해지던 전통적인 불 숭배 의식이라고 한다.)

파야는 <사랑의 마술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직접 집시 공동체를 찾아가 그들의 음악을 채집하고, 무용수들의 지도를 받으며 함께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초연 당시에는 이런 집시적 요소가 너무 강해 일부 평론가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안달루시아의 민속적 정서와 현대적 예술성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음악 자체의 독창성과 강렬함은 곧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인정받았다.

이 곡은 피아노, 기타, 관현악 등 다양한 편곡으로 전 세계적으로 연주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스페인적 정열’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곡이 되었다.


■ 앞서 피아노의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피아노 연주로 감상했다면, 이제는 피터 토마스의 지휘와 오클랜드 심포니의 관현악 버전으로도 감상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Qbx5i4A_XMc


루빈스타인의 피아노와 오클랜드 심포니의 관현악 버전을 들어보았다면 마지막으로 좀 더 스페인스런 악기 기타 합주로도 감상해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jLIkkiPwtc&list=RD-jLIkkiPwtc&start_radio=1



들녘에서


- 황지우


바람 속에

사람들이......

아이구 이 냄새,

사람들이 살았네


가까이 가보면

마을 앞 흙벽에 붙은

작은

붉은 우체통


마을과 마을 사이

들녘을 바라보면

온갖 목숨이 아깝고

안타깝도록 아름답고


야 이년아, 그런다고

소식 한장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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