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3일 목요일 -
♡ 카를 오르프(Carl Orff, 1895~1982)
<『카르미나 부라나』중 '오 운명의 여신이여' / 'O Fortuna' from『Carmina Burana』>
■ https://www.youtube.com/watch?v=Yb6jULNu5ik
아침 일찍 동네 주변 산보를 마치고 아파트로 들어오다가 주차장 한 켠 조팝나무 사이에서 외롭게 참나리 한송이가 덩그러니 피어 있는 걸 발견했다. 한 줄기밖에 심겨져 있지 않았지만, 이어서 터질 꽃봉오리 예닐 곱 개가 함께 줄기에서 뻗어져 나온 꽃대에 매달려 있다. 참나리는 7월부터 피기 시작해 8월까지 피는 우리나라의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다. 키는 1~2m까지 크게 자라고 화려한 주황색 꽃잎에는 검은(짙은 자주색) 표범모양의 반점이 있어 서양에서는 ‘호랑이 백합(Tiger lily)’이라고도 부른단다. 꽃말이 '순결', '깨끗한 마음', '존엄'이라 우리 민족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도 이 꽃을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서 접두어 '참'자를 붙여주었던 모양이다.(같은 나리래도 '개나리'는 봄 한철 무리지어 피다보니 접두어로 '개'가 붙은 셈이고 참나리는 가장 뜨거운 여름 한철 도도하고 우아하게 펴서 '참'자가 붙었을 게다.)
'꽃'을 피우는 식물(현화식물 顯花植物, phanerogams)들에게 '꽃'은 그들 존재의 '절정(絶頂)'이다. 꽃이 피어야 열매와 씨앗이 맺히고, 씨앗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그들의 영원한 삶도 보장받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현재 약 37만~39만 종의 식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현화식물(顯花植物은 피자식물/속씨식물 Angiosperms이라고도 한다)은 약 35만~37만 종 정도 된다고 한다. 전체 식물 종의 90~94%가 꽃을 피우는 셈이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사군자(四君子)라고 해서 선비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식물 4종을 꼽았는데, 매란국죽(梅蘭菊竹 순서대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그 중에 꽃이 두 종류가 포함되어 있다.(난초와 대나무도 모두 현화식물이지만, 사군자의 상징으로 쓰인 뜻이 꽃의 그것이 아니라서) 매화는 이른 봄, 추위 속에서도 꽃을 피워 낸 인내와 절개를 상징하고, 국화는 가을 찬 서리를 맞으면서도 늦게까지 피어있어 의로움과 절개를 상징한다.(이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이른 봄과 늦은 가을, 꽃이 피는 계절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매화와 국화는 그 상징성만큼이나 존재하는 방식도 다르다. 매화는 나무의 꽃이고, 국화는 풀의 꽃이다. 매화는 나뭇잎 순이 열리기 전에 먼저 피어나 겨울잠에서 덜 깬 곤충들에게 가장 먼저 소중한 꿀을 나눠주고 가장 먼저 열매를 맺는다. 그 덕에 매화나무는 1년 내내 무수한 잎들을 내어 그 화려한 푸름을 뽐내는 반면, 국화는 봄이 지나고 뜨거운 여름녁에도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매화가 폈다 지고 벚꽃, 배꽃나무, 복사꽃, 라일락, 등꽃, 수국, 작약, 아카시아, 밤나무꽃, 모란, 참나리, 벼꽃까지... 그 모든 봄과 여름의 꽃들이 다 폈다 지고 난 뒤, 찬 서리가 세상을 덮기 시작할 때 국화는 핀다. 세상 모든 아름다운 꽃들이 그 이름을 다 알린 뒤에...
그런데, 과연 매화와 벚꽃과 수국과 작약과 모란과 참나리 등등의 꽃들의 가치는 그 모양의 차이만큼 모두 다를까? 매화가 국화보다 더 가치가 있을까? 참나리가 개나리보다 더 아름답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들이 지구 식물종의 90% 이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서로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그 절정의 순간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 내 존재감도 없는 풀로 뜨거운 여름을 버텨낸 국화와 이른 열매를 얻기 위해 잎보다 먼저 피어나 매서운 꽃샘 추위를 버텨야 하는 매화는 서로 절정의 순간이 달랐을 뿐 그 존재적 가치는 장미와 호박꽃, 수박꽃, 난꽃과도 다르지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금은 그저 평범하고 존재감 없는 얼굴로 살고 있지만,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 모두가 존재감을 잃고 시들어가고 있을 때 홀연히 늦게 나타나 국화처럼 가장 빛나는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올 지...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이 겸손(謙遜)일 지 모르겠다. 나와 결코 그 존재의 무게가 다르지 않은, 서로 다른 수많은 절정의 순간을 기다리는 그들과 내가 별반 다르지 않기에...
"오! 운명이여,
그대는 달처럼
참으로 변화무쌍하구나.
끊임없이 차오르는가 하면
곧 사그라드는구나.
가증스러운 삶,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가혹하게 몰아쳤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루만져 준다.
가난도, 권력도 모두 얼음처럼 녹여 버린다..."
(칸타타『카르미나 부라나』1곡 '오 운명의 여신이여' 중에서)
이 곡은 제목은 잘 몰라도 연주가 시작되면 누구든 '아'하고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음악이라고 느낄 것이다. 특히 제1곡 "운명의 여신이여"와 제2곡 "운명의 상처에 탄식하노라"는 짧은 연주시간때문에 자주 묶여서 영화 OST나 CF로 많이 이용되다보니 귀에 익숙할 것이다. 내가 이 음악을 특히 오래 기억하는 것은 중학교 3학년 무렵 시내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 <엑스칼리버>(1981, 존 부어만 감독)의 그 압도적인 느낌이다. 숨가쁘게 몰아오는 합창과 금관, 그리고 우렁찬 타악기의 리듬이 극장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며 내 몸으로 전해지던 소리의 진동, 지금 영화관 기준으로 보면 큰 화면은 아니었지만 눈 앞으로 튀어나올듯이 달려오는 기사들의 모습, 그리고 아더왕과 마법사 멀린이 빚어내는 예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신화같은 이야기들 모두 너무 압도적이었다.
* 잠시 그 시절의 흥분을 다시 느껴보기 위해 OST 트레일러를 찾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4aQXehmVDLc&list=RD4aQXehmVDLc&start_radio=1
(지금 다시 봐도 이 영화는 음악이 영화의 긴장을 유지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작곡가 칼 오르프가, 그의 인생 절정의 시기 1935~1936년에서 작곡한 그의 대표작, 칸타타『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는 13~14세기 독일 바이에른의 베네딕트보이엔 수도원에서 발견된 중세 시가집 ‘카르미나 부라나’에서 24편의 시를 골라 '무대 칸타타'로 만든 것이다. 이 시들은 대부분 라틴어(일부 독일어)로 쓰였으며 중세시대의 자유분방한 사랑, 술, 인생의 덧없음 등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오르프는 이 시들을 반복적이고 원시적인 리듬, 단순한 화성, 강렬한 합창과 오케스트라로 재해석했다. 특히 서곡(제 1곡) ‘O Fortuna’는 오늘날까지도 영화, 광고 특히 스포츠 등에서도 자주 쓰일 만큼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 곡의 제목『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는 라틴어로 '노래'를 뜻하는 carmen의 복수형 'Carmina'와 보이에른(Beuern)의 라틴어 이름 부라나(Burana)를 합친 말로 '카르미나 부라나'를 이렇게 번역해 읽으면 '보이에른의 시가집(Song of Beuern)'이란 뜻이 된다. 이 시가집이 1803년 독일 뮌헨 남쪽 바이에른 지방의 베네딕트보이에른(Benediktbeueen)수도원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시가집의 가사를 따서 지은 곡의 이름도 '카르미나 부라나'가 되었다.
칸타타『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는 모두 25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보통은 5개 주요부분(운명의 여신 포르투나, 봄에/초원에서, 주점에서, 사랑의 궁전, 블란지플로르와 헬레나)별로 2~4곡이 배치된다.
제1곡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와 제2곡 '운명의 상처에 탄식하노라'를 묶어 "Fortuna imperatrix mundi(운명의 여신, 세계의 왕비)'로 명명하고 별도의 전주부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제1곡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는 마지막 25곡에도 같은 곡으로 쓰인다. 이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고 도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카를 오르프(Carl Orff, 1895~1982)는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20세기 대표적 작곡가이자 음악 교육가이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오르간, 첼로 등을 익혔고, 16세에 이미 50곡이 넘는 가곡과 대작 합창곡을 쓸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1914년 뮌헨 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쟁 이후에는 뮌헨과 만하임, 다름슈타트 등지의 가극장에서 지휘자로 활동했고, 이후 음악 교육과 작곡에 힘을 쏟았다.
오르프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드뷔시 등 당대 대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나,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초기 낭만주의적 작품에 불만을 느끼고 독자적 양식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는 음악, 언어, 동작(특히 무용)의 완전한 일치를 추구했으며, 극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오르프는 어린이 음악 교육에도 큰 관심을 갖고, ‘오르프 슐베르크’라는 혁신적인 음악 교육법과 교육용 악기를 개발했다. 이 교육법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그가 아동용 보급악기로 리코더를 활용한 덕에 지금도 리코더가 초등학교 음악교육의 상징처럼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오르프의 대표작은 단연코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다. 이 곡을 완성한 뒤 오르프는 “이제까지 발표한 내 작품들은 다 폐기처분해도 좋다. 내 음악은 이것으로 시작이다.”라고 말할 만큼 이 작품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졌다. 실제로 이 곡의 성공은 오르프를 세계적인 작곡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는 이후 <카툴리 카르미나(Catulli Carmina)>, <아프로디테의 승리(Trionfo di Afrodite>와 함께 그의 ‘승리(Trionfi) 3부작’으로 불린다.
오르프가 <카르미나 부라나>를 작곡하던 시기는 독일 사회가 격동하던 1930년대였다. 작품 발표 시기가 나치 집권기와 겹치면서, 오르프가 친 나치성향이 아니냐는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이 작품의 구상은 이미 1913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르프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본연의 본능과 삶의 기쁨, 운명의 아이러니를 음악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한다.
오르프의 개인사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그의 아내이자 독일의 저명한 작가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1911~2002)다. 린저는 전후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자 평화운동가로, 1954년부터 1959년까지 오르프와 결혼 생활을 했다. 린저는 나치에 저항하다 투옥된 경험을 바탕으로 <감옥에서의 일기> 등 감동적인 작품을 남겼으며, 오르프와의 결혼생활 중에도 자신의 창작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는데, 결국 린저는 “오르프와의 결혼이 내 창작력을 억누를까 두려워 이혼했다”며 그와의 짧았던 결혼생활을 마쳤다. 두 사람은 예술적 영감과 자유, 그리고 시대적 고난을 함께 나누었으나,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루이제 린저는 직접 북한을 다녀와 1988년 <또 하나의 조국>이란 책을 출판했는데, 당시로서는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것처럼 비춰진다해서 금서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대학시절 그녀의 이름이 쓰여진 책도 본 적 있었는데 그녀의 한 때 남편이 카를 오르프였다는 사실은 방송국에 입사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의 가장 유명한 연주 버전으로 요이게 요훔과 베를린 독일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전곡 버전을 들어보고,
https://www.youtube.com/watch?v=9V--qKKcUAg
■ 제1곡과 제2곡의 "Fortuna imperatrix mundi"연주는 이탈리아 라 페니체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실황연주로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GrMprOYFYg4
♡ 가르침
- 김광렬
무섭다 나뭇 잎들이
저리 소리 없이 지고 있으니
나는 너무나
많은 말들을 주절거리는데
바다 속 같은
연꽃 같은
저 깊은 무언의 가르침
무욕의 눈빛
그게 온통 나를 찔러
파르르
작둣날 위 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