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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Mar 11. 2018

김의 맛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면 


유일하게 늦잠이 허용되는 주말 오전, 느지막히 일어나면 가장 먼저 허전한 것은 뱃속이다. 지난 주 숨가쁘게 지내왔다면,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기 일쑤고 지금부터 장보러 가긴 힘이 모자란다. 어짜피 저녁은 나가서 먹을 텐데, 간단히 한 끼 먹을만한 게 없을까 찬장을 뒤지다 보면 운 좋은 날은 김부각 한 봉지 건질 수도 있다. 김은 언젠가부터 집밥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 왔다. 학생시절부터 딱히 먹을 게 없으면 계란 후라이에 김 한 봉 열어 한 끼 해결했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김을 발견했다면 밥상의 절반은 얻은 셈이다. 이젠 계란이 한 알 남아있기를 기도해 보자. 그도 없다면, 지난 달 엄마가 놓고가신 장아찌라도 몇 쪽 남아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 본다. 간단해도 제법 든든한 한 그릇으로 여유롭게 주말을 시작할 수 있도록!



김에서는 무슨 맛이 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릴적 기억 중에 식탁에 앉아 10장씩 김재우기를 했던 순간들이 남아 있다. 김을 한 장씩 펴 놓고 솔로 참기름을 펴바르고 맛소금을 뿌리면 완성. 그렇게 만든 10장의 김을 돌돌 말듯이 한번씩 꼭꼭 접어 주었다. 기름과 소금이 잘 배어 들라고. 그리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약하게 올린 뒤 가볍게 김을 올렸다 뒤집는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김이 타서 구멍이 뚫려 버리고 말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쳐다보고 서서 구워줘야 하는 것이 맏딸의 숙명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트에 자동 김구이 기계가 들어오면서 그 심부름은 졸업했지만, 아직도 김 재우고 난 손가락에 남았던 참기름과 맛소금의 자극적인 조합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렇듯 수십년간 김을 먹어 왔겠지만 머릿 속엔 대부분 참기름과 소금의 맛만 남아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김은 추운 겨울에 자라는 해초라고 한다. 초겨울에 김발을 내려두면, 처음에는 푸른 빛이 도는 파래김이 붙고 그다음엔 돌김이라고 알고 있는 엉성한 김들이 붙어나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까맣고 윤기나는 김이 빼곡히 발에 붙기 시작하는 것은 12월부터 1~2월까지. 봄이 되고 4월 수온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김이 노랗게 변해서 더 이상 김을 수확할 수 없는 때가 오는 셈이다. 색이 검고 맛이 달큰하며 바다향을 가득 품고 있는 것을 상품으로 친다고 들어도 먹어서 구분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1년에 한 번 제철이 오는 김이기에 잔뜩 살이 오르는 겨울에 좋은 김을 사서 냉동고에 보관하면서 두고두고 먹으면 된다. 제철의 김을 구했다면, 이제 어떻게 먹을 것인가 이 질문만 오롯이 남아 있다.

  


김부각이 유명한 남원에서는 예전부터 김을 부각으로 먹어 왔다고 한다. 집집마다 편히 만드는 밑반찬 중 하나였다고 하시는데, 정말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한 장의 김을 2겹으로 겹쳐 놓고 육수를 끓여 감칠맛을 내고, 그 육수로 찹쌀풀 죽을 쑤어 김에 발라 딱딱하게 말려 둔다. 잘 마른 부각은 건조하게 보관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기름에 튀겨 상에 올리면 된다. 바로 튀겨낸 부각의 바삭함은 김의 맛과 함께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의 사랑을 받는다. 대체로 울던 조카들에게 부각 하나를 쥐어 주면 한 입만에 뚝 그치는 극적인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바삭한 김이라면 과자처럼 그냥 먹어도 좋지만, 오늘 같은 날 혼자 먹는 밥상에서 그 놀라운 위력을 발견할 수 있다.




- 김부각 올린 간장 계란밥

집에 계란 1~2알만 있다면 근사한 간장 계란밥을 먹을 수 있다.   

 

1) 계란을 잘 풀고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해 준 뒤, 넉넉히 기름 두른 팬에 부어 준다.

2) 약불에서 계란이 다 익기 전에 재빠르게 저어 스크램블을 만들어 주고, 밥을 넣어 같이 섞어 준다.

3) 접시에 따끈한 계란밥을 올려 주고 먹고 싶은 만큼 부각을 넉넉히 부숴 올려준다. 

4) 혹시 집에 일본식 다시간장(쯔유)가 있다면 금상 첨화! 없다면 진간장으로 간을 맞춰주면 완성.    




- 김부각 오차즈케

계란도 없다면, 오차즈케. 집에 밑반찬으로 보내 주신 장아찌 한 두조각이라도 찾아보자.   

오차즈케는 녹차에 말아먹는 밥을 말한다. 물에 말아먹는 밥의 일본버전이랄까. 우메보시같은 장아찌부터 구운 연어까지 다양하게 얹어먹는다. 간간한 장아찌를 몇쪽 얹어 주고 김부각을 부숴 올려주면 제법 발란스가 잘 맛는 오차즈케를 즐길 수 있다. 


1) 따끈한 밥에 집에서 주셨던 장아찌를 얇게 저며 올려준다.

2) 먹고 싶은 만큼 부각을 넉넉히 부숴 올려준다. 

3) 밥이 잠기도록 우려낸 녹차를 넉넉히 부어 주면 완성.   


* 튀겨진 부각의 맛보다 김의 맛을 뚜렷이 느끼고 싶다면, 오차즈케를 선택하는 편이 좋다. 녹차에 담궈 먹으면 상대적으로 김의 맛이 선명해지는 편이다. 부각의 김맛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팁을 하나 공개하자면, 라면이다. 끓여먹는 라면을 불에서 내릴 때 쯤 부각을 올려 라면 국물에 샤브샤브 먹듯이 담궈 드셔보시길.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부각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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