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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Sep 05. 2018

바람앞에 서다.

가을 언덕에 서서


거리를 걷는 것이 익숙한 도시의 일상 속에서 

언덕에 서는 일은 일상적인 경험은 아니다. 

가릴 것 없는 언덕에 서서 온도가 달라진 바람을 세차게 맞고 있다보면

파도에 휩쓸리다 거대한 바다 속에 잠긴 듯한 착각까지도 들곤 한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능선을 올라 하늘과 맞닿은 지점에 서는 오늘,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곳을 실은 가득 채우고 있던 바람 앞에 온 몸으로 서게 된다. 


언덕 너머의 거대한 능선들을 융단처럼 빼곡히 채우고 비탈에 서 있는 사과나무들의

발 뒷꿈치가 보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즈음이면,

비탈과 흙바닥에 익숙치 못한 발목이 조금씩 시큰거리는 기분이 든다.

산세가 험하다는 말이 보일 정도로 세차게 굽은 골짜기를 보노라면,

어릴 적엔 마지막 정류장에 내려 저 길을 다 걸어서 들어왔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수확을 앞둔 사과나무들 덕분에 언덕 언저리에 온통 반짝이는 은박융단을 깔아 

갈색빛 언덕의 한 귀퉁이는 쿠킹호일을 감아놓은 듯 휘황찬란하기 짝이 없다.

일년에 한 두번 방문하는 우리에게는 가장 사치스러운 풍경이 가득 들어차고

매일 이 언덕을 넘으며 은박 융단을 다 깔았다 걷어야 하는 농부님께는

그저 평범한 하루의 풍경이 골짜기의 세찬바람을 따라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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