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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Oct 16. 2018

태어나 처음, 대구

first visit in my life.

오늘 기차는 동대구로 간다. 여권은 필요 없어 다행이라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할 만큼, 생소한 지명이었다. 어릴 적 부산의 외갓집에 기차를 타고 내려가던 것도 벌써 10년을 훌쩍 넘긴 일이었으니. 당시 기억하는 기차의 이름은 무궁화호. 그 시절 새마을호는 뭔가 부의 상징이었다. 딱히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일이란 좀처럼 없어진 재미없는 하루에 설레는 파장이 시작되는 오늘. 이유야 어떻튼 지금 나는 인생 처음으로 동대구에 가고 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기차를 타는 과정엔 약간의 긴장감이 수반된다. 혹시 놓칠까 봐 또는 기차를 잘못 탈까 봐. 내릴 때까지 그 긴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요즘 ktx는 맘 놓고 잠들기엔 너무 빠르기에. 자칫 지나치는 일만큼은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다.


ktx는 동대구역까지. 여기서 대구까지는 무궁화호로 갈아타고 들어가야 한다.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대구역 안내방송이 들리고, 사람들은 입구에 줄을 선다. 좌석 간격도 생각보다 아늑하고 널찍하지만 왠지 타임슬립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일까.


대구의 정중앙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택시로 외곽의 예식장을 찾았다. 전날엔 조금 피곤해 보이던 신랑의 얼굴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어려 훨씬 밝아 보인다. 처음은 손님으로 만나 친구 같은 지인으로 수년, 결국은 결혼식까지 내려오고 말았다. 멀리 와주신다며 근사한 호텔을 잡아주던 서글한 웃음에 축하를 전하며 뮤지컬 방식의 상큼한 결혼식을 온전히 누리고 나왔다. 물론 식보다 식사시간이 더 길었던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 워낙 가짓수가 많았던 뷔페 식장에서 제법 묵직하게 여러 접시를 비우고 일어섰다. 안타깝게도 뭘 먹었는지 기억하기란 어려웠지만.



동대구로 오는 krx안에서 어떤 분의 대구 카페 여행이라는 포스트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 맞다. 그리고 그분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 방문한 대구에서 기막힌 카페에 방문하는 행운을 누렸다. 왜 이름이 오랑오랑인가. 블로그 사진 너머로 구경한 것보다 더 여유로운 공간에서 모처럼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나같이 게으른 이에게도 무심결에 휴대폰 카메라를 켜게 만들었던 소박한 벽돌 공간. 오늘 같이 가을볕이 눈부신 토요일 오후 한 시, 여기가 어딘가 싶다.


타고나길 방향감각이 엉망인 내게 가이드를 맡기는 것은 다소 위험한 일이다. 구글 맵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정반대 편으로 도시를 가로질렀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처음 내린 길 위에서 다른 풍경들을 보아가며, 방향까지 찾기란 벅찬 감이 있다. 그렇게 불과 10여분을 헤매고 대구의 핫한 카페들을 거쳐 안심할만한 대구 역 근처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구역 안에 들어오니, 긴장이 풀리고 어디 앉을 만한 곳을 찾게 된다. 안타깝게도 토요일 오후 대구의 명동 같은 동성동 카페들은 2층까지 올라가 본 들 앉을자리 하나 없었지만. 결국 역사에 들어와 코레일 매점 옆 카페에 앉았다. 앉고 보니 핫도그를 주로 파는 곳인가 싶다. 아직 차 시간까지 40여분. 유난히 여행지에서 남은 시간은 아까운 느낌이 든다. 언제 여길 또 올 수 있을까. 기약이 없다. 



일행을 앉혀두고, 다시 역사 밖을 나왔다. 이제는 발걸음이 바빴다. 도대체 대구에 있다는 근대거리는 무엇이며, 그 골목의 정취가 어떤 건지. 실은 옛 도시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잽싸게 골목으로 들어서니 건물 하나 건너 하나 꼴로 헌 건물들이 보인다. 나름 몇 공간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지 디자인 회사들이 다시 꾸며 놓은 카페나 서점들도 아기자기하게 살아 있다. 진작 알았으면 이 쪽 카페에서 쉬는 건데. 지금 짬으로는 바삐 걸어도 30분 내에 이 블록을 한 바퀴 돌아야 하니, 커피 한 잔 살 겨를이 없다. 골목들을 전시장 돌 듯, 눈으로 스캔하며 잰걸음을 돌렸다. 수리되지 않은 옛 건물에 그 방식 그대로 살고 계시는 모습이 익숙해질 즈음 '빨간 구두'축제를 벌이고 있는 수제화 구두 거리를 만났다. 상인들은 수제화를 가게 앞에 내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안타깝게도 구경꾼이 너무 없다. 행사장에서는 한잔 걸치신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는 트로트 가수의 구성진 소리만 스피커로 골목 안을 쨍하게 울려댈 뿐이다. 언뜻 스치는 골목 너머의 근대역사박물관을 겉핥기로 스치며 경상감영이었다는 정원을 거쳐 다시 역사로 돌아왔다. 딱 30분 만에 대구의 근대골목을 스쳤다.


여행의 백미는 쇼핑 이건만, 대구역엔 딱히 살 것이 없어 서운했다. 다행히 동대구역엔 ktx 손님들을 위한 먹거리가 많은데, 전부 빵이다. 팥빵만 베이커리가 세 개에 꽈배기까지. 호기심에 식탐을 더해 세 가지 다른 팥빵을 사서 기차에 올랐다. 직접 만든 팥소는 어디에서 만들어도 매력적이다. 빵 한 개를 흡입하자마자 곧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광명, 서울역이다.

생애 처음, 미지의 대구로부터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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