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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Aug 21. 2019

여름의 끝. 저 너머의 바다가 부를 때

I miss the sea of summer, so much.

아직도 더운 낮에 습관적으로 에어컨을 켜 두고 실내에 있다 보면, 창 밖 더위는 그저 남의 일처럼 실감이 나질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훅하고 덮어오는 솜이불 같은 공기 속을 헤치며 길을 다녀야 했는데, 이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도는 것이 신기하다. 벌써 올여름도 다 지나갔구나 싶다가 문득 멍해졌다. 마지막으로 여름 바다를 본 게 언제였을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다 이런 비극이! 산보다 바다를 좋아했고, 어릴 적부터 남해안의 외가 덕에 여름이란 으레 바닷가에서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웠건만. 일을 시작하고는  제주에 가도 산속 과수 농원에서 종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바닷바람 맞는 정도가 전부였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올여름 마저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고. 바다란 아직 태양이 모래 위에서 지글지글 끓어오를 것만 같은 불볕이 살아있는 동안에 가 줘야 제맛이 아닌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성수기라는 말이 발목을 잡아당겼지만 눈 딱 감고 강릉에 숙소를 잡았다. 생각은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니까. 일단 당장 떠나야 했다. 바다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는 지금, 강릉행 ktx안에 앉아버렸다.


기차로 오는 강릉은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아마도 '동해안'이라는 불분명한 카테고리 속에서 해변을 따라 들르던 도시 중의 하나였으니까. 경포대와 오죽헌은 입에 익지만, 강릉이라는 시가지는 해외의 어느 도시만큼이나 낯설었다. 중심 시가지에서 해변까지 차로 달려 10분 거리인 만큼, 도시의 어느 구석에서도 묘한 구수한 향기와 바다내음이 꿉꿉한 기운과 함께 공기 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분명 온 도시에서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것은 아닐 텐데, 호텔에 들어서서도 꼭 건어물 전시장 옆 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나절에 서울을 떠난 탓에, 강릉에 도착했을 즈음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당장 이 밤에 바닷물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면, 최소한 바다향기를 먹어줄 필요는 있었다. 



숙소에서 추천해 주시는 근처 물회 집에 들어가서 한 30분 기다렸을까, 처음 보는 물회(산더미 같이 회가 쌓인)가 나왔다. 이 물회의 특별한 점은 분명 새콤 달콤할 뿐인 빨간 국물인데, 회 더미에 부어 넣으면 기막힌 맛의 균형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인생 물회를 만나는 감격 하나만으로도, 강릉행 ktx 티켓이 아깝지 않았다. 


느지막이 시작한 다음날엔 테라로사 커피 팩토리를 견학하고, 거래처를 거쳐 소원하던 바다를 만났다. 강릉 시내에서 가장 가깝고 자그마한 강문해변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다행히 흐린 하늘 덕에 내리 꽂히는 더위는 좀 피해 갈 수 있었다. 막상 저 앞에 넘실거리는 바닷물이 있는데, 한 걸음에 뛰어들기엔 너무 많은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갈아입을 옷까지도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수건을 빼먹은 스스로를 발견하자마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파도에 무릎까지 내어주는 정도랄까. 바지 자락을 올리고 파도 끝자락에 서서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생각보다 서늘한 수온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바닷물에 들어가 있었다. 한 순간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기분과 발만 담그고 싶은 생각이 무수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닷물이 발가락 사이로 감겨들고 발목과 무릎 정도는 단숨에 삼켜내기 시작했다. 물론 파도가 쓸어내려가면 동시에 무자비한 모래들이 온 다리에 감겨들었지만.



그렇게 얼추 십 년 만에 십여분, 동해안의 바다를 만졌다. 바닷바람으로 온 머리가 뻤뻤해지고, 팔다리엔 소금기가 끈적거렸다. 그렇게도 막연히 보고 싶었던 여름바다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바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지난 1박 2일 내내 코 끝에서 떠나지 않던 냄새를 따라 마른오징어를 몇 마리 사 들었다.


원래 여름철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날 생선회는 그리 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운 날씨에 입맛이 쉽사리 돌아오지 않을 땐, 매콤하거나 새콤달콤하게 무친 시원한 해산물이 답이다. 한국식 해답이 꼬막비빔밥이나 물회에 가깝다면, 남미에선 셰비체가 답이 된다.



시트러스 계열의 산미만을 가지고 해산물을 살균하고 익혀 먹는 특유의 시원한 저장 요리. 이 셰비체는 같은 문화권인 스페인, 포르투갈을 걸쳐 유럽에서도 비네그렛(식초) 드레싱으로 마리네이드 한 해산물 샐러드로 발전되었다.



요즘 마트에 가면, 커다란 문어를 삶아 다리의 무게를  달아 놓고 파는 '자숙 문어'가 한창이다. 유럽식 비네그렛 샐러드는 양념이 비교적 덜 자극적이라 문어 속에 감춰진 여름 바다의 향기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당장 강릉까지 내려가 물회를 먹을 수 없다면, 일단 자숙문어 한 팩을 사 들고 우리 집에서 올여름 바다향기를 느껴보자.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것은 모두가 아는 팁인 셈이다.



배식초 문어 마리네이드.

Pulpo a la vinagreta

배식초의 시원하고 부드러운 산미는 적당히 탄력 있는 식감의 문어와 잘 어울린다. 여름철 더위와 함께 사라진 입맛을 돋우기에도 적당한 새콤달콤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피망과 양파의 여름 채소 향기에 올리브의 맛이 문어의 쫀득한 식감과 어우러져 지중해식 여름 샐러드의 맛을 완성한다. 시원한 화이트 와인 안주로 제격이다!


1~2인분


ingredient

삶은 문어 다리(자숙 문어) 60g

피망 큰 것 1개

양파 중간 크기 1/4개

그린 올리브 6알

배식초 드레싱 : 배식초 2큰술, 소금 1/3작은술, 올리브 오일 1큰술


method

1. 자숙 문어 다리를 3~4mm 두께로 얇게 썰어준다.

2. 피망은 단면이 보이도록 5mm 두께로 썰어주고, 양파는 2~3mm 두께로 썰어 준다.

3. 볼에 1,2를 넣고 위의 배식초 드레싱 재료를 넣어 잘 섞은 다음, 냉장고에서 식혀준다.

4. 2시간 이상 맛이 충분히 배어들면, 꺼내서 먹는다.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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