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 young in season Sep 26. 2019

the wild, grapes

산에서 자라는 야생 포도의 오래된 이름, 머루

우리 집은 산골이 확실했다. 

엄마가 앞마당에 덩굴채 자라는 머루 포도를 몇 송이 보내주마 했을 때 기대했던 것은 이런 자잘한 열매가 아니었다. 포도알을 떼어먹으면 달큰한 물이 떨어지는, 최소한 거봉이나 캠벨 같지는 않아도 포도송이의 형태를 이루는 열매를 몇 송이 받게 될 것이라고. 이런 안일한 생각을 산산조각 낸 것은 어제 오후에 받아 든, 까만 열매가 가득 들어찬 상자였다.



족히 10킬로는 넘는 무게였다. 열어보니, 오미자 사촌같이 생긴 검붉은 열매가 깨알같이 작은 가지에 붙어 조롱조롱 열린 송이들이 가득했다. 초록창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한국의 산에서 자라는 야생 포도 머루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럼 그렇지. 농원에서 받아 드는 열매란 언제나 생각처럼 수월한 분량이었던 적이 없었다. 씻어 그냥 먹기엔 '포도'로의 만족감을 찾기 어려운 자잘한 열매들을 내려다보다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 포도로 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쉽게 떠올리자니 와인으로 시작해, 마지막엔 식초까지 갈 수 있을까 싶다. 긴가민가한 마음을 가지고, 서둘러 와인 효모를 주문했다. 


일반적인 과일청이나 효소를 담그는 일은 간단한 편이다. 대체로 재료와 설탕을 동량으로 넣고 실온에서 설탕이 녹기를 기다려 일정기간 숙성되면 재료를 걸러내고, 냉장 보관하며 먹거나 또는 일정기간 추가로 상온 숙성을 시켜 먹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그런데 식초가 되는 길은 좀 더 까다롭고 남다른 조건이 붙어 있다. 먼저 과일에 적은 설탕을 넣고 2~3주간 알코올 발효를 거친 후, 다시 그 발효액으로 초산발효를 시켜야 완성되는 두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끓는 물에 소독한 밀폐용기에 깨끗이 식초물로 씻어내어 물기를 말려둔 머루와 분량의 설탕을 넣고 포도를 알알이 깨트려 액이 온전히 배어 나오게 만든 다음 와인 효모를 넣어준다. 공기가 잘 안 통해야 좋은 알코올 발효를 위해서 밀폐용기의 입구를 깨끗한 비닐로 단단히 싸맨 뒤, 윗면에 바늘구멍을 한 두 개 정도만 뚫어주면 완성.



2~3주간 부글부글 끓어 올라오는 알코올 발효가 끝나면 포도 알갱이에서 액을 걸러내는데, 이 발효액을 오크통에 넣고 잘 숙성시키면 머루 와인이 되는 셈이다. 식초로 만들 때는 이 발효액에 종초(초산 발효를 도와주는 천연식초 원액)를 10% 정도 추가로 넣고 공기가 잘 통하는 면포로 덮어 25~32도 정도의 초산발효가 잘 일어날 수 있는 따뜻한 실내에서 숙성시킨다. 초산 발효가 잘 일어나면 식초 위로 초막이 형성되는데, 이 초막을 깨어주면 더 활발한 발효가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타인의 기록을 지켜보는 것만큼 본인의 실전과정도 순조롭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효는 살아있는 생명의 작용이기에 변수가 많다. 만드는 장소에 따라, 그곳의 온도에 따라, 그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미생물에 따라 발효 자체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요소가 도처에 깔려 있는 셈이다. 매일 반죽을 발효시켜 빵을 굽는 베이커에게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 그 날의 발효라는 고백을 들은 바 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이 정도가 아닐까 추측해 보게 되는 기준 역시 어떤 날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기도 한다는 점이 문제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빚어보는 와인과 식초라니. 오늘만큼은 설렘으로 두근거린다.



직접 내 손으로 하는 일은 포도와 설탕을 비벼 놓고, 효모를 더해 미생물들이 열심히 작용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뿐. 용기 속에 준비된 전부를 넣었다면 이제는 멋진 와인이 될 수 있도록 아직 왕성한 볕 아래 따뜻한 곳에 병을 놓아주면 된다. 지금의 설렘이 무사히 알코올 발효가 끝나는 3주간 계속되기를 기대하면서. 일단 식초는 먼저 와인이 되고 나서의 이야기다. 인시즌의 머루와인 거르는 날을 같이 기다려주면 좋겠다.


머루 와인/식초 담그기              

the wild grape wine / vinegar


Ingredients        

머루(포도), 

설탕 머루 양의 5%

와인 효모 (10리터 기준 2~2.5g) 


Methods

1. 머루(포도)를 식초물에 5분 정도 담근 뒤 흐르는 물에 흔들어 씻어 채반에 받쳐 물기를 말려준다.

2. 머루 와인/식초를 담아 둘 밀폐 유리병을 끓는 물로 소독한 뒤, 물기를 말려둔다.

3. 유리병에 포도와 분량의 설탕을 넣고, 실리콘 장갑을 낀 손으로 포도알을 알알이 터트려준다.

    (장갑을 끼지 않으면, 포도의 산에 의해 손등의 피부가 자극되어 붉게 달아오를 수 있습니다.)

4.  그 위에 분량의 와인 효모를 넣고 잘 저어준 뒤, 입구를 비닐 팬으로 밀봉하고 윗면에 바늘구멍을 내어준다.

5. 2~3주를 기다려 알코올 발효를 완성한다.

6. 3주가 지난 발효액을 체에 걸러 액만 병에 담아 숙성시키며 와인으로 즐기거나, 2차 초산 발효를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의 끝. 저 너머의 바다가 부를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