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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Dec 07. 2019

Soup and soul

우리네 국밥 같은 영혼의 위로

요즘처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따뜻한 액체는 받는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 보잘것없는 보리차 한 잔에도 어색함으로 잔뜩 얼어있던 표정에 혈색이 돌고 딱딱하던 표정부터 풀어진다. 따뜻한 차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 금세 온몸에 온기가 돌고 찻잔을 붙잡은 두 손에 건네준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담담하게 전해지는 것만 같다. 


창문 밖, 몰아치는 바람이 차갑고 거셀수록 우리의 기분은 날씨와 온도의 영향을 크게 받고, 생각보다 작은 따스함에도 쉽게 감동이 밀려온다. 이런 추운 겨울 날 손님이 찾아오면 뜨끈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말아 대접하던 옛 어른들의 정서가 쉬이 공감이 된다. 어릴 적 엄마가 끓여주던 혀가 델 것만 같던 뜨거운 곰탕이나 미역국 생각이 나는 오늘같은 날엔, 누구나 따뜻한 국물 한 그릇에 깊은 위로를 받는다. 일본 동화 속의 따뜻한 우동 한 그릇, 중국 길거리의 완자탕, 뉴욕의 치킨 수프처럼.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뜨끈한 영혼의 한 그릇이 존재한다. 추운 날, 감기에 걸릴 것 같이 몸이 으슬으슬하고 속이 허전할 때면, 우리는 국물 혹은 수프로 속을 든든하고 따뜻이 채워가며 감정의 비어있는 구석까지도 같이 채워 올리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수프는 국물의 주가 되는 육수가 중요하다. 수프의 주 재료는 호박부터 해산물까지 다양하지만, 그 메인 재료의 향과 맛 아래서 나지막이 안정적인 맛의 베이스를 잡아주는 육수, 스톡이 안정적인 수프의 맛을 완성한다고도 볼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수프스톡은 역시 치킨. 닭 육수만큼 담백하고 부드러운 감칠맛을 내는 육수도 드물다. 좀 더 조개류의 감칠맛을 더하고 싶다면 클램 차우더처럼 대합류나 바지락 육수도 추천할 만하다.(봉골레 스파게티의 소스와 비슷한 베이스가 완성된다) 그리고 우리에겐 익숙한 곰탕 육수(소뼈를 고아 만든)도 수프에 활용하기엔 나쁘지 않은 편이다. 물론 아주 담백한 맛이 필요할 땐 야채들을 썰어 넣고 야채만으로도 깨끗한 육수를 만들고, 일본식으로 가쓰오부시 육수를 활용하는 등 육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맛의 변형은 무궁무진한 편이다. 더 이상 수프 파우더만을 의지해서 끓이지 않는다면, 육수를 따로 끓이는 수고로움을 더한 만큼 수프의 맛은 그 값어치를 분명히 발휘해 줄 것이다.



언제나 수프는 누군가가 끓여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꼭 그 수프의 맛으로만 평가하긴 어렵다. 대체로 컨디션이 안 좋고, 몸이 춥고 쓸쓸할 때 누군가가 애써 끓여 건네는 수프 한 그릇은 마음속 깊은 곳에 소중한 기억으로 고스란히 켜켜이 쌓이는 법이다. 엄마도 없는 저녁, 오한이 나서 누워있는 침대 머리맡에 요리도 서투른 아빠가 타다 준 파우더 스프 한 컵처럼. 부엌에 제대로 들어간 적도 없는 아빠가 어떻게 찬장 구석에서 스프 파우더를 찾아냈는지가 더 신기한데, 차마 파우더가 뜨거운 물에 고루 녹지도 않아 덩어리 진 수프는 첫 스푼부터 너무 맛이 없었다. 눈물 나게 텁텁해서 한 모금 넘기기도 어려운데 그걸 애써 타다 주신 아버지의 어설픈 손길이 너무 따뜻해서 그 기묘한 맛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혼자 살기 시작한 지 어언 십 년이 되고 보니, 어지간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은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혼자 남은 휴일에 스며드는 한기를 느낄 때면, 여전히 엄마 밥이 그리운 마음을 품고 가까운 죽집으로 가서 호박죽을 한 그릇 먹곤 했다. 달고 뜨겁고 쫀득한 한 그릇이면 마음속에 잠시 내려앉은 서운한 감기가 금세 쭉 밀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가을 마지막 감기가 지나던 무렵엔, 조금 더 힘을 내어 단호박으로 걸쭉한 수프를 끓였다. 당장 부엌에 있는 것으로 끓이자니, 닭뼈가 있을 리 없다. 급한 대로 먹다 얼려둔 곰탕 국물을 녹여 육수를 삼고, 버터에 갈색 나도록 볶은 양파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양파와 호박의 달큼한 감칠맛이 구수한 육수의 맛에 볼륨을 넣어주면 부드러운 우유를 더해준다. 



생크림이 없는 냉장고를 보다가 냉동실 구석에 남겨진 파마산 치즈 꼬다리를 꺼내 스프 냄비에 넣었다. 역시 발효식품은 국물의 맛에 깊이를 더해준다. 이제 전부 부드럽게 갈아내고, 달콤 고소한 애플 아몬드를 부숴 올리면 완성. 수프를 끓이다 너무 신이 나버렸을까. 오븐에 구워낸 바게트 한 조각을 올려 한 그릇 담아 앉고 보니, 먹기도 전부터 온몸이 따뜻해진 기분이 들었다.




Pumpkin soup

단호박 스프


재료

단호박 반개, 양파 1개

버터, 소금, 후추, 허브 믹스, 육수, 생크림 또는 우유, 치즈 꼬다리, 꿀, 애플 시나몬 아몬드


1. 단호박은 썰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 익혀주고, 껍질을 벗긴다.

2. 냄비에 버터를 넣고 양파를 슬라이스 하여 투명해질 때까지 볶다가 단호박을 넣고 볶는다.

3.  2에 육수를 부어 끓이다가 호박이 다 익으면 생크림 또는 우유를 넣고(파마산 치즈 꼬다리 넣기) 중불에서 좀 더 끓인다.

4. 블렌더에 내용물을 갈아 넣고 소금과 후추, 허브로 간을 맞춘 뒤 애플 시나몬 아몬드를 부숴서 올리면 완성.

(단호박이 안 달면 꿀을 좀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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