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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May 26. 2020

비 오는 연남동

서늘하고 꿉꿉한 오늘이라면  

생각보다 오늘의 날씨는 하루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모처럼 걷기 좋은 오월, 한가한 오후라면 그 영향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집에서 나설 때 입어야 하는 옷차림부터, 한 손은 하루 종일 묶여 다니는 것만 같은 우산까지. 습기가 높아진 공기는 누군가에게는 습관 같은 두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빗 속 공기에 눅눅해진 옷자락들은 마음속까지도 눅눅하게 적시고 만다. 매일 고집하던 아이스커피도 오늘만큼은 따끈하게 마실까 고민이 되는 오후, 연남동 거리가 모처럼 한산하다. 작은 동네의 걷기 좋은 골목들로 인파가 몰리던 요즘, 지난주까지 붐비던 사람들의 모습은 간 데 없고 모처럼 예전의 고즈넉한 동네 모습이 돌아온 것도 같다.  



처음 영어를 배울 때, 세 번째로 배웠던 문장은 날씨에 대한 것이었다. "How's the whether today?" 교과서에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름도 묻기 전에 날씨를 묻는 대화가 적혀있었다. 사람을 만나면 주로 밥을 먹었는지부터 묻는 우리식 정서로는 도통 이해가 어려웠다. 하루에도 서너 번은 날씨가 뒤집히는 런던에 가서야 왜 그런 질문이 필요한지 이해가 되었다. 아침이 아무리 맑았어도 오후엔 비바람이 몰아치는 일이 허다하기에, 지금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에게 날씨를 묻는 편이 지혜로웠다. 날씨로 인한 당장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오늘의 날씨가 미치는 수많은 영향 중 가장 뚜렷한 것이 있다면 '지금의 기분'이라는 감정선일 테다. 물론, 날씨와 관계없이 기분이 좋기도 나쁘기도 하겠지만, 미묘하게 아침부터 시작되는 날씨라는 분위기는 우리의 정서를 고요하게도, 활기차게도 바꾸어 준다. 그런 여러 가지 의미에서 비 오는 연남동 매장에 들어서면, 마냥 멍 때리고 앉아 취하고 싶은 정서가 거의 백만 가지.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에 조금은 어질한 기분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부터 거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말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나보다.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어두워진 하늘을 보니, 금세 밖에서 들이치는 바람이 서늘하다. 길가에 내리는 빗 속에서 섬 같은 사무실의 창문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바닥을 두드리는 일정한 소리에 취해 넋을 잃고 있자니, 갑자기 속이 허하고 배가 고팠다. 창문만 열어도 서늘하고 축축한 탓에 한동안 피해 다녔던 뜨끈한 국물이 당긴다. 너무 느끼하거나 무겁지 않은 전골이랄까... 메뉴를 고르다 보니, 문득 어느 비 오던 날엔 먹었던 요리 하나가 떠오른다. 일본 가정식 요릿집에서 먹었던 토마토 나베. 춥고 허기진 마음에 토마토소스가 적절히 풀린 육수에 버섯과 피망, 비엔나 소시지를 넣고 즐기는 나베는 무척 따뜻했던 것도 같다.



우산을 들고 가까운 슈퍼에 들러 토마토와 피망, 새송이버섯과 양배추 그리고 비엔나 소시지를 사 왔다. 다행히 냉장고엔 먹다 남은 토마토소스가 있고, 치킨 스톡은 없을지라도 사골육수 팩은 하나 남아 있었다. 바닥이 두꺼운 전골냄비(또는 무쇠냄비)를 꺼내 놓고 재료들을 모두 한 입 크기로 썰어준다. 양배추와 토마토, 버섯, 피망, 그리고 소시지까지 냄비에 넣었다면 요리는 거의 다 된 셈이다. 육수를 부어 끓이다가 토마토소스로 간을 맞춰 주면 완성. 야채가 익고 국물이 졸아들면 불을 끄기 전에 모짜렐라 치즈나 파마산을 조금 갈아 올려 밥이나 빵을 곁들이면 뜨끈한 식사가 된다. 이쯤이면 심야식당까진 어렵더라도, 비 오는 연남동에서 따끈하게 먹기엔 나쁘지 않다.






토마토 나베



ingredient

토마토소스

사골육수 1팩 또는 치킨 스톡 1개를 물에 풀어 육수를 만들어 줌

토마토 2개, 양파 반개, 양배추 1/8통, 비엔나 소시지 원하는 만큼(6~10개), 피망 1개

작은 새송이 버섯 1 봉지 또는 새송이 버섯 2개

 

method

1. 전골에 들어갈 야채와 버섯, 소시지를 한입 크기로 썰어 준다.

2. 냄비에 준비한 재료를 모두 담고 육수를 부은 뒤 센 불에서 한 소금 끓인다.

3. 한 번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 중불에서 야채가 익을 때까지 끓여주고 토마토소스로 간을 맞춰 준다.

4. 곁들일 밥이나 빵을 준비한 뒤, 먹기 직전에 치즈를 뿌리고 냄비를 불에서 내려 맛있게 먹는다.

* 토마토소스는 시판하는 파스타 소스 토마토 맛으로 대체 가능합니다.

* 제대로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고 육수를 우리면 좋겠지만,

   없을 경우엔 치킨 스톡 큐브를 활용하거나 사골 육수 팩으로 대체해서 끓여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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