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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May 18. 2020

salting citrus

#2. 하귤 소금

좋은 소금이란 어떤 소금을 말하는 것일까?


어릴 땐, 비싸면 다 좋아 보였다. 프랑스에 가서 꼭 사 오던 게랑드 소금처럼, 작은 용기에 비싸게 매기는 가격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어느 요리라도 그 소금만 넣으면, 마법의 수프처럼 기막힌 맛이 나지 않을까 상상도 했었다.


처음 선물 받았던 소금은 일본 오키나와 산이었다. 150g 남짓의 작은 병 하나에 만원보다 비쌌는데, 이를테면 일본에서 가장 청정한 바다인 오키나와 해역에서도 가장 깊은 수심의 해수를 건조해 만들기 때문에, 일반 소금보다 미네랄이 몇 배나 더 풍부하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 때나 쓰지 못하고, 가장 비싼 소고기를 굽는 날에만 아껴가며 찍어먹었던 것도 같다.



소금이 반드시 흰색이라는 편견을 깨 준 것은 히말라야 핑크 솔트였고, 특히 식품 박람회에서 처음 본 북유럽의 소금들은 총 천연색을 자랑하면서도 소금 입자의 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꽂혀 있는 것 역시 제법 비싼 트러플 솔트. 감자튀김이나 돈가스를 찍어 먹으면 기막힌 트러플의 풍미가 짭짤한 소금의 맛과 함께 어우러져 맛의 균형을 잡아주지만, 작은 한 병에 2만 원부터 시작하다 보니 마음껏 먹기엔 역시 어려움이 있는 편이다.


가까운 지인 중에 집안에서 염전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할머니의 염전을 대대로 이어 지금 손녀대까지 물려받아 직접 식구들끼리 수작업으로 만들고 계신다고 했다. 하루 종일 바닷물과 씨름해야 하는 고된 작업에 비해, 대량 수매되는 가격이 너무 낮아 속상한 경우가 비일비재라고. 특히 소금을 만드는 과정 중에는 염전을 깨끗이 관리하는 것이 제일 어렵고 힘든 부분인데, 결과물인 소금을 육안으로 봐서는 그 차이를 알기 어렵단다.



그 친구의 입버릇 중에 '소금은 시간을 두면 둘수록 가치가 비싸지기 때문에 보관만 해도 돈을 번다'는 말이 있었다. 하루는 그게 무슨 말인지 물어보니, 바닷물을 말려 만드는 천일염의 경우는 소금을 만든 뒤부터 창고에 저장해 두면 '간수'가 빠진다고 한다. 대체로 이 간수(소금 내 불순물)가 다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년 정도라고 하는데,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소금의 맛이 더 정갈해지고 효능도 좋아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니 20년씩 숙성시키는 발사믹 식초처럼은 아니더라도, 일단 만들어 놓은 소금은 잘 보관하기만 하면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셈이란다.



굳이 부모님 세대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소금에 무엇을 절이는 것은 우리에게도 제법 익숙한 과정이다. 매번은 아니라도 일 년에 한 번쯤은 김장 덕에 온 가족이 모여 배추와 무에 어마어마한 소금을 치기 마련이다. 제주여행을 다녀오는 길이라면 엄마를 위한 몇 가지 젓갈을 사 오기도 하고, 소금에 절인 자반을 택배로 부치는 것도 종종 있는 일이다. 고기나 생선 요리의 밑간을 위해서는 보이는 것보다 더 듬뿍 소금을 올려주고, 채소의 숨을 죽이는 것 역시 늘 사용하는 소금의 역할 중 하나다.


그동안 무수한 재료에 소금을 넣어 절여 보았지만, 그 대상이 과일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물론 단맛을 더 잘 느끼게 하기 위해서 설탕과 함께 소금을 약간 곁들이는 경우는 존재하지만, 본격적으로 과일에 소금만 넣고 절여 본 적은 없었다.


과일에 소금을 치다니. 지금껏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지중해 연안의 식생은 기후와 토질부터 여러 가지 여건이 우리와 판이하게 다르다. 대체로 따뜻하고 건조한 이 지역에서는 올리브 나무나 포도나무 또는 시트러스 열매들이 잘 자라는 편이란다. 블러드 오렌지가 핏빛의 붉은색을 온전하게 내는 경우는 원산지인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이 유일하고, 레몬에이드의 원료인 리몬첼로가 이탈리아 술인 것처럼, 유독 감귤계 열매들이 종류 별로 풍성한 편이다. 덕분에 이들의 양념 중에는 preserved lemon이라고 불리는 '소금에 절인 레몬'이 존재한다.



레몬을 껍질째 소금에 절인 뒤 길게는 1년씩 숙성발효시켜 통째로 갈아 쓰는 이 조미료는 독특한 시트러스 향을 가득 농축시킨 짠맛을 내는데, 음식에 독특한 감칠맛을 선사한다. 소금에 레몬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보니 생선이나 고기의 밑간을 할 때 사용하면 간을 맞추면서 동시에 잡내를 잡아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레몬 소금이지만, 사실 유자나 하귤처럼 신 맛을 가진 감귤계 열매라면 무엇이든지 같은 방식으로 응용이 가능하다.


오월 올해 가장 좋은 하귤이 넘치는 지금, 우리는 본격적으로 이 과일에 소금을 치기 시작했다.



만드는 방법은 이보다 더 간단할 수 없다. 껍질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잘 씻어낸 하귤을 잘라 씨를 빼 준 뒤, 일정 비율로 소금에 절여주는 것이 전부다.



다만 만들면서도 멀쩡한 과일에 소금을 듬뿍 치자니,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은 괜한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이 모든 불신이 사라진 것은 담근 날로부터 딱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였다.



충분히 삼투압 과정을 거쳐 소금에 절여진 하귤을 시험 삼아 믹서기로 갈아 페이스트를 만들었다.



정말 닭다리의 잡내를 하귤 소금만으로 잡을 수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밑간을 마쳤다.


외국 잡지에서 발견한 '닭다리를 오렌지와 감자와 함께 구워내는 오븐 요리' 레시피를 목표로 팬에 불을 올리고 버터에 닭다리를 올렸다. 양면이 갈색으로 잘 읽도록 구워준 뒤, 오븐 팬에 올려 미리 구운 감자와 하귤 위에 올려 함께 구워내니 완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귤 향이 향긋하게 깔린 닭다리는 완벽했다. 이제 하귤 소금으로 도전해 볼만한 요리는 무궁무진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올해 내게 남은 하귤 전부를 소금에 절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귤과 감자, 당근을 곁들인 닭다리 오븐 구이

Chicken, carrot and citrus tray bake



4인 분


Ingredient

닭다리 밑간 용 하귤 소금 약간 

닭다리 4개

한 입 크기로 썬 감자 500g 정도

절반으로 썰어 놓은 하귤 2개

통마늘 1개 또는 깐 마늘 12알 정도

길게 썬 당근 1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60ml

하귤 차이브 컴파운드 버터: 

125g 상온 버터 + 간 마늘 반티 스푼 + 하귤 제스트 반개 + 하귤 소금 1 티스푼 + 잘게 다진 차이브 1/3 컵(한 줌)


Method

1. 닭다리는 표면에 하귤 소금을 적절히 발라 2~30분 간 미리 마리네이드 한다

2. 오븐을 230~250도로 예열시킨 뒤, 오븐 팬에 썰어 놓은 감자와 당근, 마늘과 하귤을 넣고 올리브 오일 2큰술을 버무려 오븐에 넣어 준다.

3.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른 뒤 센 불에서 닭다리를 넣은 뒤 표면이 갈색이 나도록(한 번 만 뒤집어 대략 4분 간) 구워준다. 

4. 오븐 속의 야채 팬을 꺼내 양면으로 색을 낸 닭다리를 그 위에 올린 뒤, 하귤 버터를 절반 정도 닭다리 위에 발라주고 야채와 치킨이 충분히 익도록 (대략 20~25분간) 구워준다. 

5. 꺼내기 3분 전에 오븐을 열고, 나머지 버터를 트레이에 적당히 고루 뿌려 녹여주면 완성. 

6. 다 구워진 플레이트를 꺼낸 뒤 먹기 전에 오렌지를 닭다리 위에 올려 즙을 뿌려주고, 장식용으로 남겨 둔 차이브를 뿌려 먹으면 하귤 향 가득한 치킨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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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귤 소금을 이용한 추가 레시피는 이번 주 클래스에서 진행됩니다.


<인시즌 클래스> - 하귤 청과 하귤 소금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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