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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May 01. 2020

reading recipe

#1. 하귤 마멀레이드 로즈마리 파운드 케익

타인의 레시피를 읽는다는 것


스크랩은 마음에 드는 요리를 모아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오랜 버릇 중 하나였다. 헌책방에서 상처 입은 과월호 잡지를 권당 천 원에 사서 받아 들면, 집에 오자마자 방에 처박혀 본격적인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먼저 빠르게 스캔하며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레시피부터 주섬주섬 뜯어낸다. 스캔이 끝나고 나면, 뜯어낸 부분을 다시 꼼꼼히 읽어가며, 마음에 드는 부분을 오려내면 끝. 그리고는 시간 날 때마다 스크랩한 종이들을 펼쳐, 해보고 싶은 방법이나 재료를 정리해 메모를 덧붙여 둔다.



이 버릇은 학창 시절 당시 학교와 집, 학원에 갇혀 있던 자신이 유일하게 타인의 주방을 접할 수 있던 창문과도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작 남은 것은 모아 놓은 자료가 아니라는 점이 함정. 아마도 이 덕분에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아닌지 자신 속에 분명한 선택의 기준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아 보이는 요리책을 보노라면, 이번만큼은 책 속의 모든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다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1개의 레시피라도 시도해 본다면 다행이다. 사실 한 권의 책 안에 정말 알고 싶은 레시피는 몇 개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계절이 바뀌면, 먹어 볼 만한 재료는 계속 달라지고 레시피 또한 같을 리 없기 때문이다. 가끔은 책장에 고이 모셔놓은 요리책들을 가지고 낱장으로 해체한 뒤, 좋아하는 메뉴들만 묶어서 책을 재편집해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레시피 자체를 만들어 내긴 어렵지만, 음악 Playlist처럼 목적에 따라 레시피를 선택하는 것은 딱히 어렵지 않기에. 하지만 문제는 그대로 하면 어떤 맛이 나올까를 알 수 없다는 점, 레시피의 신뢰도에서 발생한다.  


연남동에 Someone's recipe라는 공간을 오픈하면서, 이름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의 요리는 맨 처음 누군가의 레시피를 흉내 내는 것부터 시작해 왔다. TV에서 요리사들의 방식을 구경하기도 하고, 유튜브를 통해 처음 보는 재료들을 구경하다 보니, 가끔은 스스로 프라이팬이라도 들고 부엌에 서고 싶어진 것이다.



목표를 정하고 레시피대로 요리 하나라도 해 본 날은 그 맛의 결과와 무관하게 굉장히 뿌듯해진다. 이제껏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의 폭을 넓혔기 때문일까. 세상에 어떤 황금 레시피라도 내 손으로 해 보지 않으면, 그 맛은 절대로 알 길이 없다.


다시, 지금 계절에 어울리는 요리책들을 뒤져볼 때가 되었다. 이제 곧 올해의 첫 열매들이 쏟아지면, 놓칠 수 없는 계절의 맛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부지런히 누군가의 레시피로 처음 경험하는 맛들을 만들고 즐길 준비가 된 것도 같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레시피를 읽고, 만들어보리라 다짐해 본다. 가끔 넘치게 만드는 날엔, 연남동 주방으로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 circus '어디에도 없는 파운드케이크'의

하귤 마멀레이드 로즈마리 파운드케이크


일본 출장만 가면 그렇게 요리책들을 사모으던 시기가 있었다. 요즘엔 우리나라도 마카롱이나 스콘처럼 개별 아이템에 대한 전문 책들이 많아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사정은 많이 달랐다. 어깨너머로 떠듬떠듬 읽는 수준의 일본어에 의지한다 해도, 글보다 사진이 10배쯤 많은 요리책은 충분히 사는 보람이 있었다. 이 책은 마침 제주에서 하귤이라는 작물을 처음 소개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발견한 책이었다. 우리나라보다 감귤류 과일이 다양한 일본에서 하귤은 나츠미깡(夏橘)또는 아마나츠(甘夏)라고 부른다. 여름 귤 또는 달콤한 여름이라니, 제법 달콤하고 시원한 과일의 맛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처음 하귤청을 담그고, 마멀레이드를 만들어 보았지만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를 고민하던 바로 그 타이밍에 신기하게 찾아낸 레시피여서 더 소중했다.



이 책은 circus라는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셰프가 만드는 '어디에도 없는 파운드케이크'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묵직한 파운드케이크의 상큼한 향을 위해 레몬부터 시트러스 열매들을 활용하다 보니 각종 감귤계 열매들을 가지고 제각각 다른 레시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차이가 섬세하기 짝이 없다. 화려한 기술이 필요한 양과자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필자가 집중한 부분은 식재료 특유의 맛의 궁합이다. 예를 들면 하귤은 달콤하고 시원한 첫맛 뒤에 쌉쌀한 뒷맛이 조금 남는데, 덕분에 향기로운 처음 대신 씁쓸한 뒷맛을 가진 로즈마리와 잘 어울리는 것처럼. 그렇게 세상에 없는 자신만의 파운드케이크 레시피 수십 개로 4계절을 따라 책 한 권을 가득 채워두었다.



하귤 레시피에 목말랐던 우리는 어쩌면 이 책 덕분에 하귤 마멀레이드로 만드는 베이커리 들을 용기 내어 시작해 볼 수 있었다. 지금이야 몇 년의 세월이 쌓이다 보니, 스콘도 굽고 여러 가지로 요리 속에서 쉽게 활용하지만, 처음 만든 하귤 마멀레이드로 파운드케이크를 굽던 날은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정말, 잘 구워낼 수 있을까. 책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귤 마멀레이드를 조려 내고, 파운드케이크의 반죽에 건 로즈마리를 섞으면서도 손이 떨렸다. 반죽의 표면에 색이 과하게 난 걸까? 다시 꺼내 호일을 덮어주고 불을 낮춰 다시 오븐에 넣었다. 그렇게 한 번 구워서 먹어보니 저자가 말하는 '술에 잘 어울리는 쌉쌀한 맛의 어른스러운 조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레시피만큼은 직접 구웠기 때문에 검증 완료. 어른스러운 맛을 즐기는 누구에게나 적극적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맛이 궁금하다면, 인시즌의 5월 제주 하귤 워크숍에서 직접 맛볼 수 있다.




하귤 로즈마리 파운드

Summer Citrus Rosemary Pound Cake

 

처음이 달콤하면 달콤할수록 끝난 뒤 짙어지는 쓰디쓴 여운. 이 쓴 맛을 고요히 즐길 수 있는 때가 되면,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귤의 껍질에서 느껴지는 달콤함과 쌉쌀함이 달콤한 향기와 씁쓸한 맛을 가진 로즈마리와 하나가 되면, 비로소 어른의 케익 완성. 하귤 로즈마리 파운드. 굽고 하루 지나면 더 맛이 깊어지는 것은 모두가 아는 비밀.

 

Ingredients (24.5cm 파운드 케익 1개 분량)

무염버터 150g

계란 3개

설탕 100g

박력분 200g

베이킹파우더 1 tsp

하귤 마멀레이드 150g

드라이 로즈마리 (반죽용) 1/2 큰술

드라이 로즈마리 (장식용) 1/4 큰술

하귤 제스트 약간

 

Method

1) 사전 준비

- 버터와 계란은 실온으로 준비합니다.

- 볼에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거품기로 잘 섞어줍니다.

- 오븐은 160도로 예열해 둡니다.

2) 큰 볼에 준비한 실온 버터를 넣고, 거품기로 잘 섞어 부드럽게 풀어준 뒤, 설탕을 넣고 잘 섞어줍니다.

3) 2)에 계란을 하나씩 넣어 잘 섞어줍니다.

4) 3)에 가루를 전부 넣고 고무 스패출라로 잘 섞어줍니다.

5) 약간의 가루가 남아있을 때 하귤 마멀레이드와 반죽용 드라이 로즈마리를 넣어 스패출라로 잘 섞어줍니다.

6) 준비한 파운드 틀에 베이킹 시트를 깔고 반죽을 넣은 뒤 가운데가 낮아지도록 모양을 잡아주고 1cm 정도의 두께로 세로로 가운데를 갈라줍니다..

7) 장식용 드라이 로즈마리를 표면에 가볍게 뿌린 뒤, 16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25분을 구워줍니다.

8) 다시 오븐의 온도를 140도로 내려 케익의 표면에 알루미늄 호일을 덮어준 뒤 45분을 더 굽습니다. 그리고 오븐 안에 두고 천천히 식혀냅니다.

9) 다 구워진 파운드의 표면에 하귤 제스트를 살짝 뿌려 내면 완성입니다.


* 파운드 케익 보관요령

1. 파운드 케익은 원래 상온에서 5일 정도 보관하며 먹기에 좋습니다.

2. 오래 보관하고 먹으려면 구워진 그대로 자르지 말고 표면을 랩으로 감싸 공기와의 접촉을 막은 뒤, 냉장 또는 냉동고에 넣어 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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