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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Nov 15. 2022

나의 첫 원내생 일기

학생과 치과의사 그 사이에서

치과대학에 입학하고 5년이 지났다. 본과 3학년. 1년 반만 더 버티면 국가고시를 볼 자격이 주어지고 국가고시를 통과하면 20살, 아니면 더 오래전부터 바라던 치과의사 면허를 얻게 된다. 이 시기에, 나는 원내생이 되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학교의 원내생은 1년 동안 진행한다.

‘원내생’이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원내생이라는 것은 그 말 그대로 ‘병원 안에서 일하는 학생’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실습의 연장선상이라고 보면 된다. 병원 안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데, 술식 시 레지던트 선생님, 교수님 옆에서 어시스트를 하고, 석고 모형이나 인상을 뜨고, 초진을 하기도 한다. 사실상 나중에 졸업하고 치과의사로서는 자주 하지 않는 일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시간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이 제도는 ‘도제식 교육’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본과 2학년 때 병원에서 선생님, 어시스트 옆에서 술식 observation(우리는 흔히들 줄여서 '옵져'라고 한다)도 해본 입장으로 생각하면, 작은 입 속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는 치과라는 특성상, 멀리서 떨어져서 보면 술식을 제대로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입 안에서 기구가 돌아가고 그 작은 기공물을 만지는 것을 잘 볼 수 있는 사람은 어시스트이다. 그래서 일종의 ‘보면서 배우는’ 개념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원내생 후반부에는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student case도 진행하기 때문에 보면서 교과서와 실습실에서 배운 내용을 직접 피부로 느껴볼 수 있는, 그야말로 학생이자 의사인 것이다.


사실 처음 원내생이 된다고 했을 때 정말 떨리고 신났다. 일단 병원 유니폼을 입을 수 있고, 병원 신분증도 나오고, 거기다가 환자에게 줄 수 있는 명함까지 나오니까! 내가 이제 단순한 학생이 아닌 뭔가가 된 느낌이었다. 무언가 ‘자격’이 주어진 느낌?


하지만 병원에서 처음 들어가서 실상은 달랐다. 처음이다 보니 멍청한 실수는 예삿일이었다. ‘이런 걸 누가 틀려’에서 ‘누가’가 바로 나였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지적하시면 ‘죄송합니다’ 밖에 할 말이 없었고, 남한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거니와, 나는 선생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되려 방해가 되었다는 생각이 정말 속상했다.

또 8시에 강의를 듣고 끝나면 병원으로 달려가 9시부터 어시스트를 하고, 의자가 없으면 허리를 굽힌 자세로 서 있고, 기구가 부족하면 뛰어다니면서 저녁 6시까지 일하고, 퇴근 후 다시 강의를 듣는 생활은,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점심과 함께 홍삼과 영양제를 먹어도, 오후 2-3시가 되면 뻗어서 휴게실에서 누워서 大자로 뻗어서 자다가 이름이 불리면 머리를 묶고 정신없이 뛰어가는 것이 요즘 내 일상이다.

무엇보다 제일 힘든 것은 ‘사람들’이었다. 원내생 일을 하면서 몇 번이나 들었던 생각이 이거다. ‘나 멘털이 왜 이렇게 약하지? 나 이래서 나중에 개원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학생이라고 무시하고 교수님 앞에서는 깍듯하게 태도를 바꾸는 환자들은 너무 스트레스였고, 병원 스태프가 나에게 소리 지르며 혼냈던 날에는, 화장실에 가서 목놓아 펑펑 울기도 했다(사실 그날 조기퇴근을 하고 소주를 먹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일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그래도 나 전공 참 잘 골랐다.’ 그 이유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게 나에게 원내생 생활을 하면서 정말 큰 재미였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평생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대된다. 위에서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지만, 사실 사람들 때문에 즐거운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고. 사실 환자들 때문에 힘들고 운 적도 있지만, 신나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오늘 있던 얘기를 한 적이 훨씬 많다. 그래서 한 달쯤 후에는 엄마가 전화하면 먼저 얘기하시더라.

“오늘은 무슨 재밌는 일 있었어?”

나에게 힘들지 않냐며 따뜻한 말을 건네주시던 할머님, 딸 같다며 챙겨주시던 분들, 해맑게 웃고 인사해주는 아이들,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던 부부, 그런 추억들을 모으고 있다. 나중에 내가 치과의사가 되어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면 그때 내가 병원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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